차게 빛나는 푸른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슬럼가의 골목길에서 두 남자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좀더 유리해 보이는 남자는 얼굴을 반절 이상 가리고 있는 가면을 쓰고 있어 한쪽눈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미미하게 떨리는 눈살은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른 한 남자는 어두운 골목길과는 다른, 이질적으로 새 하얀 가운과 후광이 비치는 듯 한 백금발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백금발의 남자는 가면을 쓴 남자의 뒤쪽으로가 그의 팔을 등쪽으로 잡아 당겨 힘을 주었다.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꺽인 어깨와 붙잡힌 손목에서 부터 저릿한 고통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기어 올라왔지만 그 고통을 무시한 남자는 다른쪽 팔꿈치로 금발 남자의 명치를 강하게 찍었다.

"크윽..."

명치를 맞은 백금발의 남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두 손으로 자신의 명치를 감싸며 주저 앉았다. 컥컥대는 그를 보며 가면을 쓴 남자는 눈을 싸늘히 빛내며 재빨리 리볼버를 꺼내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하도 컥컥대어 입가는 침으로 범벅된 채 남자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총구를 보며 두려움과 공포로 얼굴을 일그려 뜨렸다.

탕-

커다란 소음과 함께 발사된 총알은 백금발 남자의 미간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 미간을 관통했다. 몇 방울 튄 피는 총과 가면에 새빨간 꽃을 만들어 냈다. 새하얀 가면에 흐트러지게 핀 꽃을 꺽으며 생각했다. 이정도면 괜찮을 것 같군요. 요즘 왜 이렇게 쓰레기들이 많이 보이게 된 것일까요. 빨간 액체와 뇌수, 살점, 총에 맞은 여파로 부숴진 뇌들로 더럽혀진 골목길을 유유히 빠저나가며 가면의 남자는 헐렁해 진 가면을 고쳐쓰며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열락에 휩싸인 신음소리가 공존하는 슬럼가는 정부의 묵인으로 유지되어 올 수 있었다. 정부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범죄자들을 슬럼가로 보내고, 연구시설에선 그 범죄자 들을 대려다 인체실험을 한다. 또 슬럼가에서 파는 마약을 정부의 개가 사는 경우도 있다. 이곳은 무법지대 였다. 능력의 유무에 따라 형성되는 계급.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완벽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이상하리만치 어두운 날이였다. 달빛이 구름 뒤에 숨어 그 자태를 감추었던 날,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에 장사를 위해 밖에 나와있던 스페르디아는 가면 위에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에 잠시 하늘을 처다보았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모든 빛을 먹어 치울 듯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한창 쏟아지겠군요. 소나기가 올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하며 스페르디아는 해야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의 가게의 문 앞에 도착할때 쯤 미약한 신음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 또 누군가가 죽으면 그 뒷처리는 자신이 될 것임을 알고 있는 스페르디아는 사후경직이 시작되면 옮기기 힘들 뿐 아니라 벌레가 꼬이기 시작하여 뒷처리가 더 귀찮아 지기 때문에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에 처리하자고 생각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윽...."

그곳에는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한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팔과 옆구리, 다리등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친 아이의 옷은 찢겨지고 아이의 피에 물들어 마치 넝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페르디아는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상자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문득 아이의 뒷목에 시선이 닿았다. 선명하게 찍혀있는 알파벳과 숫자에 스페르디아는 조금, 아주 조금 놀랐다. 그 문자가 찍혀있다는 것은 아이 역시 정부의 지도하에 있는 연구실의 실험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게 한숨을 쉰 스페르디아는 생각을 바꾸어 아이를 치료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페르디아의 능력은 '조작'으로 생물의 몸 안에 있는 피를 소비하여 여러가지 것을 조작할 수 있다. 예를들면, 그래. 다른 생물의 상처를 없었던 것으로 만든다던가. 꽤나 많은 피를 소모하여 상처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

스페르디아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 'bad apple'의 지하에는 스페르디아의 거주 공간이 있었다. 창고로 쓰이는 방 하나와 침실, 화장실로 이루어진 방은
심플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있는 가구가 별로 없어 설핏 보면 휑해 보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꽤나 실용적인 방이였다.
어두운 푸른빛이 감도는 초록색의 이불이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침대 위에 있던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다 생각에 잠긴 스페르디아를 보았는지 잠시 움찔하더니 침대의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언제 상념에서 벗어났는지 스페르디아의 눈은 침대위의 작은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깨어났으면, 제 침대에서 내려오세요."

불쾌감이 잔뜩 서린 목소리에 겁이나 더더욱 침대의 구석을 파고드는 아이를 보며 솟아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잘부탁 드립니다.

0
이번 화 신고 2017-12-01 22:23 | 조회 : 1,443 목록
작가의 말
모르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