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남자의 오른손이 볼을 감쌌고 그의 왼손이 허리를 둘러왔다. 마주 선 사이에 공간이 좁아지고 노골적으로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몸짓을 보냈다.

"아, 별로 안 즐거워보이네?"

"그다지 제가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요."

"저런 불쌍한 중생이었구나. 인간은 생물 중 유일하게 목적이 번식이 아니더라도 섹스를 하는 존재인데 말이지. 내가 알려줄까, 왜 그런지?"

틀어져있던 노래가 다음 곡으로 바뀌었다. 느린 박자에 낮게 유혹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더 가까이 붙어왔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료 넘기시죠."

"강제로 안는 취미는 없으니까 걱정마. 그렇지만 우리 소중한 고객정보는 함부러 보여줄 수 없는데?"

생각보다 남자는 쉽게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심심하던차에 굴러온 여흥거리정도였으니 질척하게 굴지않았다. 남자의 이런 성격은 문제해결에 상당히 도움이되었다. 만약 그가 눈치없이 계속 붙어왔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것이다.

남자를 제압하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그 후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자료를 찾아 이 방을 뒤지는 것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방에 처음 들어선 순간 받았던 느낌으로는 남자가 그런 자료를 곱게 두었을 것 같지 않았다. 남자가 책상 위에 올려둔 담뱃갑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마르코랑 같은 담배 냄새..'

"어쩔거야? 거기 그러고 있어봤자 내가 줄 수 있는게없어. 너도 눈치챈것 같은데? 여기 그런 자료는 없다는걸."

"하.. 그 여자 자료만 넘기면 되는데. 그럼 얌전히 돌아가지."

"내가 이득보는 것도 없는데 굳이 왜? 네가 모비딕의 2번 대장이라서? 그게 무서워서넘겨야하나?"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런거야 이런 세계에서 모르는게 멍청한거지."

"그럼 내가 그 여자를 찾는 이유도 알텐데 안 보여주는건가?"

"쿡쿡쿡 아, 아, 티치.. 던가? 너네 간부를 죽이고 달아난 녀석 이름이? 뉴게이트 그 영감도 이제 한물 갔군. 부하관리가 이렇게 안되서야. 워~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진말라고. 그래도 난 그 영감팬이거든."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 여자, 여기 손님 맞지?"

"맞았어. 잘 찾았네. 후후"

남자는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는마냥 웃으며 여유넘치는 몸짓을 했다.

"자료는 줄 수 없어. 그건 영업관리의 한 부분이라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대신 일은 하게 해주지."

"나보고 직접 그 여잘 만날 기회를 주겠다는건가?"

"따지자면 그렇지. 난 네 아버지의 팬이기도 하거든."

비릿한 웃음. 저 자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로져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그 남자에 대해 건 더 이상 내게 무의미했다. 지금은 당장에 중요한 일을 해야했다.

"젊은 사람이 취향 한 번 독특하군."

"그래서 널 안고싶기도 하지.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의 아들이라, 어떨까.. 멋지지않나?"

"말했지만 그건 사양이야."

"사디양이 언제 다시 부를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 보다야 이쪽 제안이 더 편할텐데?"

"안타깝지만 네가 만지는게 꼭 뱀이 지나가는 느낌이라 소름돋아. 그런 상대에게 안길 수는 없잖아?"

사무실 중앙에 있는 깨끗한 갈색 가죽 쇼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미 남자가 재떨이에 비벼끈 담배였지만 방안 가득 채운 매캐한 담배냄새가 계속해서 코를 찌르며 후각을 자극했다.

결국 전화는 오지 않았고 마르코의 집을 나올때 가져온 오토바이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주인 영감은 이미 잠들었는지 방에 불이 꺼져있었다. 씻기위해 수도꼭지를 돌리자 여름 열기에 미지근해진 물이 흘러나왔다. 땀으로 찐득해진 몸 위로 물이 떨어졌다. 젖어가는 머리카락이 눈 앞으로 내려오며 시야를 가렸다.

방 역시 한낮동안 달궈진 열기가 그대로 갇힌채 있었던 탓에 후끈한 공기가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창문을 열자 조금이나마 숨이 틔였다. 밖에서는 술에 취한 남자가 전봇대와 씨름 중인지 큰 소리가 들려왔다. 방바닥에는 펼쳐두었던 종이가 그대로 있었다.

"후.."

종이를 다시 접어 들고나온 작은 가방에 넣고 누웠다. 낯선곳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처음보는 이들과 마주치는 현실이었다. 문뜩 마르코의 얼굴이 떠올랐다. 밥은 먹었을지, 집에는 들어갔는지, 잠은 자는지.. 그의 아주 사소한 생활이 걱정되었다. 적어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고 나왔어야했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곳에 있지 못 했을것이다.

티치를 쫓아 집을 나서기전 마르코의 잠든 모습을 보았다. 나를 안고있는 단단한 육체와 강인한 정신력과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끔은 아이같았고 내가 위험할까 전전긍긍하기 일수일만큼 나를 사랑했다. 호흡과 함께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싶다는 생각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아버지도 덮으라하신 사건이었다. 모두가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조용히 지냈다. 나 역시 그러면 마르코의 옆에서 동료들과 함께 평온하고 활기찬 일상을 보낼것이었다.

'그러면 삿치는? 삿치의 죽음은 이렇게 흐르듯 지나가겠지..'

눈을 감은채 조용히 잠든 마르코의 얼굴에 밤새자란 수염이 유독 턱주변으로 거뭇거뭇했다. 병아리같은 노란머리카락을 쓰다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난 티치를 용서할수없어. 빨리 처리하고 올테니까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건강하게 있어야돼.'

잠든 마르코를 향해 차마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인사를 전했다.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직 어스름이 깔린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자 센서가 작동하며 밝은 불이 켜졌다.

"잘 지내고, 기다려줘."

그날의 새벽은 여름의 상쾌함을 품었으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났다.

마르코에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를 좋아하고 원하고 바라고 어느덧 그와 모든것을 함께하고 그와 같은 길을 걷고있었다. 한편으로는 바보같으면서도 행복했다.

"화 많이 났으려나?"

'돌아가거든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줄까? 한동안은 삐져서 말도 안 하겠지만.'

마리코는 자신보다 어린 연인인 나를 어떻게 해야할줄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화를 내면 상처받을까 늘 혼자 꽁하니 삐졌다. 그렇다고 오래 삐져있으면 내가 질려할까 눈치보기 바빴다.

"쿡쿡쿡"

상황에 맞지않게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세어나왔다.

"빨리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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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6-30 20:53 | 조회 : 1,653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겨우 한 화 완성했네요.. 저 16강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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