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전설의 여장퀸, 박하윤

※ 2년전, 효중고등학교 1학년

부드럽지만 불편한 브러쉬가 하윤의 눈두덩이를 간지럽혔다. 하윤은 이리저리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윤아! 움직이지 말라니깐."

"아아, 다시 해야 되잖아."

"얘, 수정아, 저거보다 덜 간지러운 브러쉬 없어?"

"11반 애들꺼 빌려올까?"

하윤의 앞을 막아선 여자애들의 날카로운 호통이 들렸다. 하윤은 애써 간지러움을 참으며 호된 시간을 견뎠다. 여자애들은 저마다 이래저래 떠들며 하윤의 얼굴을 스케치북 마냥 장식했다.

***

하윤이 이 꼴을 당하게 된 것은 학급 축제 회의 때문이었다. 하윤의 반에는 오메가가 없었고, 여장대회에 자진해서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하윤이네 담임선생은 잔인하게도 다수결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뽑힌 사람은 당연히도 하윤이었다. 하윤이 오메가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은 하윤이 여장대회에서 우승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게 하윤은 다른 반 오메가들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다들 하윤이 오메가가 아닌 베타인 것을 아쉬워했다.

"1학년 10반 화이팅!"

"단체 아이스크림을 향해 달리자!"

그들은 급기야 멍하니 앉은 하윤을 위해 구령까지 만든다. 여장대회 우승반이 아이스크림을 차지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하윤은 망할 아이스크림 상품을 원망하며 고개만 끄덕였었다.

***

"야! 박하윤이 진짜!"

성환이 10반의 문을 크게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박하윤이 여장대회 나가는 거 진짜야?"

준이 이어서 쪼르르 달려왔다. 성환은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인 하윤을 볼 수 없었다. 낮게 욕을 짓씹으며 성환이 발만 동동 굴렀다.

"윤성환 너 1반 아니었어? 여기까지 달려오냐?"

"지 마누라 지키고 싶었나보지."

한 여자아이의 말에 하윤과 성환이 동시에 소리쳤다.

"마누라라니!"

"그럼 왜 여기까지 뛰어오는데?"

"열렬한 사랑이다, 야."

성환은 몇번이고 여자애들을 설득하며 말리다가, 결국 준과 함께 10반에서 쫒겨났다. 준이 걷어차인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저앉았고, 성환이 툴툴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쳐들어가서 말릴거야?"

"말리긴 뭘 말려. 다 끝났구만."

성환이 마른 입술을 여러차례 침으로 축였다. 하윤의 여장을 보고 싶기는 했다. 허나, 남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더 제지했다간 자신과 하윤이 그대로 그렇고 저런 관계로 인식될 것이 뻔했다.

성환은 얼굴을 붉혔다. 그렇고 저런 관계라니,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하윤의 의견이 걱정될 뿐이었다.

***

"기대하시라!"

여자애가 손발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0반 남자아이들은 벌써부터 침을 꼴깍 꼴깍 삼켜대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 사이에 낀 1반의 성환만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본래 탈의실용으로 쓰이던 커튼이 이제는 무대처럼 쓰였다. 저 커튼만 열리면 수많은 여자애들 손을 거친 하윤의 모습이 나올 것이었다.

남자애들 중 흥분한 몇몇은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휴대폰 플래쉬를 무대 조명마냥 깜박거리기까지 했다. 3반의 준은 우습게도 그 사이에 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짜자- 안!"

드디어 커튼이 드르륵 열리며 하윤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아이처럼 보이기에 전혀 위화감이 없는 모습으로.

"이야-."

"헐, 미친, 존나, 대박."

"거 봐. 아이스크림은 우리 꺼 라고 했잖아."

"하윤아, 너 진짜 까놓고 말해봐. 오메가 아니야?"

"딴반 오메가들은 다 발라버려라. 1등은 레알로 우리 꺼야."

저마다 남자애들은 말을 꺼내며 하윤을 둘러쌓았다. 하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속이 약간 비치는 흰티에 치마는 붉은 색으로 허벅지 윗부분만 겨우 가렸다. 하윤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치마가 찰랑거리며 희다 못해 창백한 속살을 내보였다.

휴대폰을 들어 그걸 또 찍어대는 남자애들도 있었다. 성환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준은 눈치없이 저 사이에 껴서 하윤을 칭찬하기만 했다.

"야, 니네 안 갈꺼야? 축제 늦겠는데?"

보다못해, 성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10반 애들은 그제서야 시간을 자각한 듯 '아 맞다' 거리며 저들마다 무언가를 준비했다. 효중고 축제는 공연 후에 바로 부스운영을 시작하기 때문에 저마다 미리 준비해두느라 바빴다

하윤도 토스트 가게를 열기로 했는지, 동업하기로 한 준과 상의를 했다. 성환은 마른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치마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얼굴은 이미 터질 듯 빨게진 상태였다.

"야, 윤성환! 나 좀 도와ㅈ... 너 어디 아파?"

성환을 부르던 여자애가 말을 멈추며 걱정스런 물음으로 물었다.

"왜?"

"얼굴이 빨게."

성환은 한 쪽 손으로 부채질을 해대며 여자애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아픈 건 아니고.... 근데 너 그거 쓸거야?"

"이거? 담요?"

"어 그거 잠만 빌려줘. 이따 부스운영 전에 돌려줄게."

성환의 말에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요를 내밀었다.

"여기."

"땡큐. 이따 뭐 사줄게, 보답으로."

"올, 돈 많이 챙겼나봐? 비싼거 시켜도 돼?"

성환은 대강 끄덕이며 물러섰다. 부드러운 담요에서는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났다. 성환은 얼굴을 찌푸리며 하윤에게로 달려갔다.

아직 준과 회의하고 있는 하윤의 몸을 억지로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어, 왜..."

성환은 하윤의 허리에 담요를 감아주었다. 긴 담요가 하윤의 종아리 아랫부근까지 감쌌다.

"아, 고마워."

하윤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좀 신경쓰였는데 잘됐다."

성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잠재우며 물러섰다. 준과 계속 대화하는 하윤을 와락- 안으며 대회에 나가지 말아달라고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 모든 생각들을 꾹꾹 가슴 깊이 묻어두기만 하며 진혁은 고개를 돌렸다.

***

축제 공연 1부가 끝날때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윤은 성환이 하나 더 챙겨온 담요로 상의를 감싸고, 처음에 받은 걸로 아래를 감쌌다.

공연 2부 전 쉬는 시간에 작은 일이 터졌다. 아이스크림 상품을 받기 전까지 참지 못한 한 명이 직접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것이다. 거기서 끝내다못해, 하윤이 감싼 담요와 그의 손에 묻혀버렸다.

"헐, 야, 미안해. 어쩌지?"

"난 괜찮은데, 담요가 내꺼가 아니라서...."

하윤이 곤란해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하윤은 담요를 빌려주었던 성환을 불렀고, 결국 담요를 처음 빌려주었던 여자애가 괜찮다고 말하면서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하윤아, 손 먼저 씻고 와."

여자애가 하윤의 손을 가리켰다. 그제야 하윤은 아이스크림이 묻어 끈적거리는 제 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담요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여자애가 하윤의 등을 떠밀었다.

하윤은 아이스크림이 묻지 않은 한 쪽 손으로 치마를 가리고 나머지 한 쪽 손은 든 채로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여장대회가 2부 첫번째로 시작하는 것이라 빨리 끝내야만 했다.

허전한 아래가 불편하긴 했지만 최대한 빨리 도착했다. 다리가 달달 떨리며 어쩔 수 없는 페로몬이 조금 흘러나온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치마는 민망하고 익숙치도 않았다.

하윤은 급히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다행히도 남자애 한명밖에 없었다. 색다른 교복으로 봐서 같은 학교도 아닌 것 같았다.

급히 수돗꼭지를 돌려 손을 씻었다. 끈적함이 사라질 때까지 문지르고 난후, 하윤은 화장실을 급히 나왔다.

그 곳에서 느꼈던 위화감은 10반 자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런 여장한 치마를 입고 그대로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하윤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이 잔뜩 달아올랐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었다. 다른 학교 학생이라고 해도 수치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으아아...."

하윤이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 비슷한 것을 하자, 10반 애들이 와서 말렸다.

"긴장돼서 그래, 하윤아?"

"어디 아파?"

"가발 망가지니까 일단 말로 설명해 봐."

하윤은 그들에게 차마 자신이 이 꼴로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곳에 있었던 남자애는 하윤을 미친 사람, 또는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할게 뻔했다. 부끄럼에 미치며 하윤은 재차 고개를 흔들었다.

***

하윤의 근심과 걱정은 아무도 몰라준 채, 축제는 무사히 마쳤다. 당연히도 하윤과 준이 열었던 토스트 가게는 대박이 났다.

그리고, 여장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사람도 당연히 하윤이었다. 하윤이 블루데일리의 데뷔 노래에 따라 춤을 추는 영상은 한동안 SNS 여장퀸의 전설로 남았다.

효중고등학교 공식 계정에 오른 영상을, 보는 사람마다 좋아요를 눌렀다. 곧 이어, 그 영상은 효중고등학교가 그 동안 올린 내용 중 최고의 좋아요 수와 공유 수를 자랑했다.

유일하게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사람은 성환과 하윤, 본인 뿐이었다.

※ 이 장면은 하윤과 진혁의 진정한 첫 만남이기도 하죠.

※ 6화 (진혁의 시점) , 38화를 보시면 내용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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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7 20:50 | 조회 : 3,535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외전 첫시작은 가볍게(?) 여장으로...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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