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마다 들리는 야릇한 소리





불타는 토요일 밤, 시끌벅적한 거리 사이로 한 여자가 쪼르르 걸어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동그란 얼굴에 약간 살집이 있어 보이는 이 여자의 얼굴은 화장기도 없을뿐더러 눈 밑도 새까만 것이 몹시 초췌해 보였다. 그녀는 택시를 잡아탄 후 얼마 안 있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끼이익-



“아이, 저 튀겨먹을 놈 같으니! 딱 보니까 술 먹고 운전하는구먼. 대리나 부를 것이지, 쯧쯧쯧.”



택시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끼어들며 위험하게 운전하는 자동차에 욕설을 퍼부으며 혀를 찼다.



그 소리에 여자가 화들짝 놀라 깼다.



“네네, 홍보팀 대리 서래은입니다. 팀장님, 메일 보냈고요. 나머지 파일은 곧 검토하겠습니다.”



울리지도 않은 전화를 거꾸로 잡고 기계적으로 모노톤의 말을 내뱉는 래은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기사 아저씨는 그녀가 잠든 줄도 모르고 계속 구시렁거렸다.



“거, 대리비 얼마나 한다고. 손님도 술 조금이라도 먹으면 꼭 대리 불러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다가 사고 나는 거라니까. 저러다 큰일 나.”



“네, 팀장님. 시정하겠습니다.”



여자는 다시 부스스 일어나더니 이번엔 핸드폰을 뒤집어 잡고 말했다. 가만 보니 대리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택시 기사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한 마디 건넸다.



“여기서 자지 말고 집에 가서 자요.”



“아, 예예.”



래은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애써 부릅뜨며 대답했다. 그래도 졸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번 주는 너무 힘들었다. 과중한 업무 탓에 밤 10시 전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뺨을 세차게 때렸다.



“요즘 애엄마들 참 대단해. 많이 힘들죠? 살림도 하고, 일도 하고. 손님 보니까 우리 딸 생각나네. 그래 애가 몇 살이나 됐수?”



“아, 예?”



애엄마라는 말에 당황한 래은은 잠이 퍼뜩 깨버렸다. 애엄마? 꽃다운 제가 애엄마라니요!



아저씨한테 한바탕 따지려는 찰나 문득 택시 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봐도 애가 두 셋 있을 것 같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아저씨는 죄가 없었다. 그녀는 거의 울먹이며 대답했다.



“저 아직 미혼인데요.”



“그랬어? 아이쿠, 미안해요. 그래 올해 나이는 몇이나 됐어?”



“서... 서른둘이요.”



“서른하고도 둘? 아이고, 꽉 찼네 꽉 찼어. 우리 딸이랑 동갑이구먼. 우리 딸은 벌써 애가 둘이여. 여태 뭐하고 있었어? 아가씨도 곧 시집가야겠네? 애인은 있고?”



이 아저씨 좀 봐라. 애인이 있었으면 황금 같은 토요일에 이런 몰골로 집구석에 가겠는가.



“하하, 아... 니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답한 그녀는 이내 자신의 대답에 후회했다. 그냥 있다고 대답할 걸. 없다고 하면 그 뒤에 나올 말들은 뻔했다.



“안되지, 안 돼. 얼른 좋은 사람 찾아서 시집가요. 혼기 놓치면 힘들어.”



또 시작되었다. 어른들이 래은을 붙들고 늘 하는 레퍼토리. 그녀는 한쪽 귀를 열었다. 아저씨의 염려를 가장한 잔소리가 한 귀에서 다른 한 귀로 잘 흘려보내고 있었다.



매일 매일 잔소리하는 김 부장 때문에 터득한 테크닉이다. 더 늦으면 노산입네 뭐네 하는 아저씨의 말에 적당히 리액션을 하며 1초라도 빨리 집 앞으로 도착하기를 바랐다.



아저씨의 걱정 어린 잔소리는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려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김 부장이 똑같은 말을 해서 짜증이 났었는데.



래은은 단축번호 1을 눌렀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유일한 친구를 영접하기 위해서.



두근두근-



언제나 주말마다 찾곤 하는 소울 메이트. 경쾌한 연결음이 들리고 한 남자가 밝게 전화를 받는다.



[네, 통통치킨입니다.]



“여기 휴블루빌 601호인데요, 반반 하나 갖다 주세요. 무 많이요!”



[네, 반반에 무 많이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래은은 욕실로 가서 간단히 씻고 온다. 옷도 파자마로 갈아입은 후 TV 앞에 상을 펴고 그릇을 세팅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치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TV 볼륨을 작게 틀어놓고 귀를 쫑긋 세워 배달원 아저씨만을 기다린다.



쿵쿵



쿵쿵



세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기척이 들린다.



“아, 도착했나?”



주말 저녁치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치킨에 금방 화색이 돈다. 지갑을 꺼내고 아저씨가 벨을 누르기만을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아무 소식이 없다.



‘잘못 들었나?’



다시 눈은 TV로 향했지만 사실 귀의 모든 신경은 현관에 가 있다. 치느님은 언제 오시나.



그런데 순간 어디선가 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악. 흣]



래은은 귀를 막았다. 아무래도 옆집이 또 시작인가 보다.



‘오늘도 뜨겁구만, 뜨거워.’



[앗... 흐윽. 거기]



[어디? 여기?]



또 그 소리다. 최근 며칠간 잠 못 들게 했던 굉장히 야릇한 바로 그 소리.



'이게 며칠째야 도대체.'



사실 래은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밝기로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소머즈였던 만큼 작은 소리며 멀리 있는 소리도 남들보다 유난히 잘 듣곤 했는데 요즘만큼 자신의 귀가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아악, 살살해]



소리는 계속 들렸다. 실제로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전혀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소리였는데, 며칠 전부터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니까 유독 그 소리만 따로 떼서 귀에 갖다 댄 것처럼 더 잘 들리는 것이었다.



‘미치겠네. 어쩌지?’



래은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띵동-



드디어 기다리던 벨소리가 울렸다. 래은은 허겁지겁 달려가 치킨을 받고 먹기 시작했다. 먹는 도중에도 자꾸 이상한 장면이 상상되어 그렇게 기다리던 치느님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텔레비전 볼륨을 아주 크게 높였다.







오늘도 역시 야릇한 소리는 한 시간 가량이 지나야 멈췄다.



‘오래도 하네.’



그날 밤도 래은은 또 잠을 설쳤다.



***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화장을 하려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있을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고민이었던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제 치킨을 먹지 말걸.’



다크서클은 요새 잠을 못자서 그렇다고 쳐도 치킨의 유혹은 굳은 의지로 이겨냈어야 하는 건데.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더 이상 꾸물거리다간 늦을 것 같아 적당히 메이크업을 하고 적당한 옷을 골라 입고 밖을 나선다. 현관을 닫고 나오려는데 동시에 옆집의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드디어 보는 건가, 옆집 인간.'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밤마다 야릇한 소음을 흘리는 민폐남 같으니! 그동안 소리만 들었지 직접 마주칠 일은 없었다.



어떻게 따끔하게 말해야 알아들을까. 적당히 좀 하세요? 소리 좀 낮춰주세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사실 아직은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뭐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놈의 옆집 변강쇠, 얼굴이나 보자.'



도대체 몇 살이나 먹었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호기심이 생겨 상대방이 나올 때까지 고개를 내밀고 기다려 본다. 차마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옆집을 바라본 래은은 두 번 당황했다.



첫 번째 이유는 옆집 남자가 생각 외로 정말 준수한 외모였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 더욱 더 놀란 이유는 문을 열고 나오는 두 사람 모두 성별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둘 다 남자? 설마?’



생각해보니 그동안 여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설마 어제 그 야릇한 소리의 주인공들이 남자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적잖이 당황했다.



언뜻 보기에도 둘 다 수려한 외모에 키는 무척 큰 편이었다. 한 사람은 구릿빛 피부에 굉장히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약간 흰 피부에 진한 갈색머리였다.



두 사람은 차림새부터도 상반된 느낌이었다.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트레이닝복에 스포티한 분위기인 반면, 흰 피부의 남자는 단정한 셔츠와 바지로 댄디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였다. 두 사람이 정말로 풍겨오는 느낌이 달랐다.



너무 오랫동안 빤히 쳐다봐서일까. 래은의 너무도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두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엇 안녕하세요? 옆집 분인가 봐요?”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처음 보는 이웃을 보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 네...”



예상치 못한 인사에 래은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는 강현석이라고 하고 이쪽은 류재익. 전 잠깐 놀러온 거고 이 녀석이 집주인이에요."



며칠 전 이사 오는 소리, 심지어 야릇했던 사적인 소리까지도 들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 안녕... 하세요."



래은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재익과 눈이 마주쳤다.



'와, 진짜 잘생겼다.'



재익의 피부는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흰 편은 아니었지만 구릿빛 피부의 현석과 같이 있으니 무척 하얘보였다. 머리카락은 염색한 건지 짙은 갈색을 띄고 있었는데, 무표정이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세련되고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쩝... 아깝다. 저런 남자가 게이라니...’



저런 남자랑 한 번쯤 사귀어 보면 어떨까란 생각과 동시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선이 느껴져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 남자의 얼굴을 굉장히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망함에 황급히 시선을 돌려보지만 재익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그리고는 불쑥 손수건을 내민다.



웬 손수건이지 싶어서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자 답답해진 재익이 뭔가 말하려 입술을 움직인다.



"저기..."



“네?”



“입가에 침...”



재익이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킨다.



“닦으라고요.”



래은이 깜짝 놀라며 소매로 살짝쿵 입 밖으로 나와 있는 액체를 훔쳤다. 아이고, 너 왜 하필 지금 흘러 나왔니. 이놈의 몸뚱이는 반응이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저... 저는 바빠서 이만.”



래은은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거의 도망가다시피 뛰어 쏜살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 래은의 뒷모습을 보며 현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보고 얼굴 붉힌 거야? 귀엽다 쟤.”



현석은 쿡쿡 웃으며 재익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별로... 흔한 얼굴에 옷 입는 센스도 없고. 칠칠맞아 보이기도 하고. 별로 내 스타일은 아냐.”



자신의 예상과 토씨하나도 다르지 않는 재익의 시니컬한 대답에 현석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었다.



“내 트레이너 경력을 걸고 말하는데 쟤는 살만 조금 빼도 예쁠 얼굴이야. 본판은 좋은데 별로 꾸미지 않는 타입이군. 아깝다. 연예인 전문 트레이너로서 도전 욕구가 샘솟아.”



현석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신다.



"얌마, 일 간다며! 안 가?"



재익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현석의 등을 떠민다.



“우쒸, 매정한 녀석. 어제는 좀만 더 해달라고 조를 때는 언제고. 그새 애정이 식었어."



현석이 입술을 내밀며 쀼루퉁한 표정을 짓자 재익의 손바닥이 현석의 등짝을 철썩 후려친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가, 인마.”



“후후 그래 갈게. 또 잠 안 오면 불러라. 봉사하러 올 테니.”



현석은 뒤돌아 몇 발자국 옮긴 다음 재익을 향해 손을 쓰윽 들고 두어 번 흔들더니 쏙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진다.



혼자 남은 재익은 집안 곳곳을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비록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약간 결벽증이 있는 그의 성격상, 청소는 늘 중요하다.



제일 먼저 방금 현석이 다녀간 욕실을 청소한다. 화장실 사방으로 물이 튀어있을 것이 뻔하다. 미국에서 생활했던 탓에 건식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놈 때문에 매일매일 청소하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녀석, 조심히 좀 쓰라니까.'



재익은 구시렁거리며 마른 걸레로 바닥을 박박 닦아낸다.



화장실 바닥에서 아까 그 여자가 떠오른다.



재익이 걸레로 더 힘차게 닦아냈다. 다시 또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멍한 얼굴로 자신을 뚫어지게 보더니 갑자기 침을 흘린 그 여자. 이상한 여자였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그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 쿡쿡 웃어댔다. 실로 오랜만에 보이는 그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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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22:54 | 조회 : 1,709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