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그대의 길에 내가 있으니

신이 아닌 듯한 신이라.

아흐레만이 레이크를 보며 손톱을 잘근거렸다. 그는 육감이 좋았다. 그리고 그 육감은 그의 앞에 쓰러진 인간이 신좌 자리는 그냥 먹을 거라는 것을 가리켰다.

‘미안, 리안. 신도 줄은 서야할 거 같네.’

“그래서, 아흐레만, 치료는 가능하다는 건가?”

리안의 물음에 아흐레만은 당당한 표정으로 자아자찬 하듯 내뱉었다.

“물론이지. 내가 누군데? 치료계에는 세손가락 안에 드는 몸이야.”

리안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뱉었다. 그래그래, 몇 백년 전만해도 코흘리개 애기였는데, 신으로서 나름 나이를 먹더니 애가 이렇게 자랄 줄이야.
귀여운 건 그대로군.

피식 웃은 리안이 아흐레만에게 손짓하여 치료를 명령했다.

음, 이것도 어느 정도 평화로운 일상인 것 같아. 피가 튀는 신좌에 앉아있는 것도 피 묻은 채로 답답하게 버티는 것도 일상이였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신의 아이가 하나 쓰러지기는 했지만 평화롭군. 평화라.. 쓸데없이 오래가길 빌게 만드는 단어란 말이지.

-

“당장 멈추어라. 지금 그대가 하는 짓이 스펠 아카데미의 공식적인 죄인이자, 이곳 이프렐 영지의 죄인을 구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라, 아쉬워라. 자각하고 있네요.”

유유히 세피아를 품에 안아들고 지하감옥 앞을 떡하니 지나가려는 이 남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두 남자의 눈이 마주치며 스파크가 튀었다.

“..장난 아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교수가 작게 입을 열자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나타냈다. 눈빛만 보아도 온몸이 다 따가울 정도이니.

“제 이름은, 라파엘 디프입니다. 그리고 그쪽은 이 쬐그만 아카데미의 교장이라죠? 반가워요, 교장선생. 나도 옛날에 이런 아카데미는 다녔었는데.”

라파엘은 유유히 말을 이어갔다.

“최악이였죠.”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 속에 아카데미에 관한 분노와 짜증이 담겨 있었다. 그에 관해 트라우마라도 있는걸까.

“정말로요. 교수놈들은 하등하다는 인간들을 배척했어요. 웃기지 않아요? 같은 국적의 같은 인간이라는 본질을 가졌으면서요. 나는 평민이였고, 실력이 뛰어났지만 신으로 계승되기 전까지 A급은 꿈도 꿀 수 없었죠.”

묵묵히 듣고 있던 리크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텐데.”

“뭐, 물론 명령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썩어빠진 흉물 아카데미가 적어도 좋은 기억이 아니였다는 점이죠.”

“우린 그런 아카데미가 아니다. 교수와 학생이 화합해서 수업해가는 아카데미이며, 평민과 귀족, 황족은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그대의 말에 따라, 그들은 같은 인간의 본질을 가졌으니까 말이지.”

“말을 다들 그렇게 하죠. 그래도 뭐, 지금까지 본 아카데미 교장의 말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어쩌랴, 그렇다고 요 아가씨를 놔두고 갈 수는 없단 말이죠. 좀 귀하신 몸이시라.”

빠직

그냥 좀 순순히 가주면 뭐라도 되나. 리크는 또 싸워야하나 귀찮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한 판 붙자고?”

“아뇨, 게임을 하자는 겁니다. 분명 교장선생인 당신도 만족할 수 있을만한 게임 말이죠.”

“흠.. 설명해봐.”

“이 게임은 조금 특별합니다. 바로 이 아카데미의 학생 목숨을 걸어야 하거든요. 제가 구현할 수 있는 마력 최대치는 이곳의 학생들을 모두 즉살시킬 수 있죠. 바로, 저와 이곳의 학생들이 대련을 펼치는 겁니다. 저를 단 한명이라도 이긴다면 세피아는 물론이고 나 또한 저 우중충한 감옥 속에 얌전히 들어가주죠.”

나쁘지 않은 조건이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목숨은 중요했다. 이 아카데미는 메리아에게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리크의 일자리였다. 그만큼 의미 있는 공간이고 의미 있는 학생들이였다.

“만약 거절한다면?”

“미리 말씀드렸던 즉살 마법. 주로 SS급 이상의, 즉 6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구현할 수 있는 고위 마법 중 하나죠.”

서클

1서클부터, 인간의 경지를 떠난 신의 경지인 8서클. 리크는 7서클에 해당했고, 그의 앞의 남자 역시 비슷한 마력을 풍겨왔다.

“어느 쪽이든 학생들이 위험하군.”

특히 레이크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스펠 아카데미의 유일한 SSS급 보유 학생이니만큼 남자와 대등한, 아니 어쩌면 더 월등한 실력으로 맞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셈이죠.”

세피아를 감옥 문틀의 사각지대에 잘 기대어 눞혀 놓은 라파엘은 녹색빛 머리칼을 흔들며 팔짱을 꼈다.

‘애초에 이 아카데미를 부수려고 했고, 신의 아이가 지금 없는 이상 S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꼬맹이들이 날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지.’

노린 것.. 이라고 밖에 설명 되지 않았다. 리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였던가.

다른 때에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신들이, 짜증난다고만 생각했던 신들이 왠지 모르게 그리워지는 리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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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8 01:10 | 조회 : 1,148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늦었어요.. 중학생은 참으로 바쁜((퍽.. 죄송해요..나태한 작가라...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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