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다
모든 것에 힘이 부친다
원래 가족과 말 한마디 섞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이렇게 힘든 일인가요
그들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난 그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드라마 속 망가진 가족을 보며 그게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요
내 주변에는
나는
그 망가진 가족의 일원이고
그 망가진 가족의 일원인 사람이 넘쳐나니
죽여달라 하면 죽여줄래요
살려달라 하면 살려줄래요
왜 난 내 일도 아닌 것에 이렇게 힘들어야 하고
왜 난 내 일도 아닌 것에 이렇게 아파야 하고
왜 난 내 일도 아닌 것에 이렇게 상처받아야 하나요
답을 알려주세요
답이 없다면 차라리 죽여주세요
지쳤어요
역겨운 에탄올
맛없는 약들
이것들을 입에 털어넣고 싶어져요
에탄올은 생각보다 먹을만 하고
약들은 눈 감고 삼켜버리면 그만이니
그걸로 이 지루하고도 지친 생을 끝낼 수 있다면
꽤 싸게 먹히는 거 아닌가요
나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나요
들어주는 이는 있나요
아무리 여기서 떠들어도
내가 원하는 이들에게서 원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인데.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위로를 받고
누구보다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입고
이럴 거였다면,
가족 같은 건 없어도 좋았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하겠지
하지만 몰라서 하는 소리가 맞는걸
난 가족이 없는 고통을 모르지만
가족이 있기에 내가 죽어가는 건 알아
그런 가족이라면
딸을,
누나를,
죽이고,
죽이는 가족이라면,
없는 게 나았다고
나는 감히 말할래.
비웃을 사람은 비웃으렴
고아인 사람은 개소리라고 치부할 거야
그럼 난 기꺼이 개새끼가 되겠어
매일같이 개소리를 지껄이고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벽에 대고 살려달라 외치는 것도
이젠 지쳤어
결국 내가 외친 말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네
그렇게 내 목을 옭죄고
나를 죽이네
얼마나 우스울까
얼마나 한심할까
눈물이 맺힐 듯한 눈으로
건조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며
언제보다도 감정적이게
언제보다도 무감정하게
제 감정을 써내리는 내 모습은,
얼마나 비참할까.
이제 약통만 보이면 입안에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들어
커터칼에 시선이 닿으면 팔을 그어버리고 싶고
에탄올에 시선이 닿으면 마셔버리고 싶고
내게 시선이 닿으면 죽여버리고 싶어
그렇게 흔적조차 남지 않기를
언젠가 내가 죽었을 때
원망보다는 슬픔이 함께하기를
슬픔보다는 애도가 함께하기를
애도보다는 아무것도 함께하지 않기를
그렇게 내 존재가 지워지기를
아아 유안님,
분명 당신은 내 자살을 막았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나는 죽음을 꿈꾸고 있나요
오늘을 불태워 내일을 살 나에게
내일을 불태워 모레를.
모레를 불태워 글피를 살 나에게,
나는 감히 전한다.
하루를 태우는 짓은 그만하고
이제 그만 너 자신을 태우도록 해
어차피 불타는 하루 속 너는 고통받겠지
어차피 불타는 하루 속 나는 고통받겠지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나자신을 태우리
그렇게 이 지옥보다 지옥같은 곳을 벗어나리
그렇게 오늘도 언제나의 다짐을 하고
겁에 질려 내일도 살아있을 나를 비웃는다
뜨거운 열기 속에,
기침을 계속하며 연기를 헤집고 살아나갈 나를 비웃는다
결국 너자신을 태울 자신은 없는 거겠지
너는 그것뿐인 존재니까
현재를 태워 오는 찬란한 미래가 아니라
미래를 태워 오는 어두운 끝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를
나는 오늘도 부질없는 소원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