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오랜만이야

오늘 외부 강사와 상담을 받았어

원인이라면

쓸데없이 솔직하게 대답한 인터넷 설문조사일까

거짓에 둘러쌓여 지내는 나지만

거짓과 위선으로 뭉친 나이지만

역시나 거짓말을 하는 건 썩 좋지 않아서

쓸데없이 솔직하게 굴었더니

귀찮은 일이 생겼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내 이야기를 밝고

유쾌하고

활발하게 이끌어나갔어

자조 어린 말들까지 농담 던지듯 섞어가며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내 감정이랑 표면적인 모습을 분리한 것 같다고 하더라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내게 뭘 바라는 거야

우울한 아이는 다가가기 꺼려지잖아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잖아

사회가

당신들이 원하지 않잖아

그래서

고작 그런 이유로

내성적인 성격을 뜯어 고치고

자해 얘기를 웃으면서 말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부분을 지적해버리면

난 어쩌라고

침울한 연기라도 하라는 거야?

고작 5번 보고 말 사이에

속에 들어있는 모든 걸 드러내기라도 하라는 거야?

어차피 당신은 금방 나를 잊겠지

그리고 당신의 태도에 상처받는 것은 나야

내가 내 이야기를 가볍게 꺼내는 것은 그런 이유

내가 나를 가볍게 여겨야

남이 내 얘기를 가볍게 여겼을 때

상처가 덜 하니까

당신들이 만든 거잖아

너희들이 원한 결과가 이게 아니었어?

뭘 바래?

그냥 인형처럼

우울한 얘기를 할 땐 침울을 연기하고

그렇지 않은 얘기를 할 땐 활발하게 얘기를 이어나가고

그러길 바래?

도대체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 거야?

웃기가 힘들더라

이걸 보는 그대들은 나를 안 봐서 모르지만

난 생각보다 많이 웃는 사람이야

아니 정확히는

항상을 웃으며 보내는 사람이지

표정이 굳으면

무표정해지면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기 힘들어하니까

나를 불편해하니까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거의 항상 무표정으로 있어서

애들이 내가 무서운 애인줄 알았대

그래서 뜯어 고쳤어

웃고

웃고

웃고

웃고

또 웃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웃어보이니까

그런 걸 지적하고 앉으면

나보고 뭘 어쩌라고

선생님이 내가 설문조사한 걸 눈으로 훑는데

자동적으로 표정이 굳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어

언제나

웃어야지

그래야 내가 덜 불편한 사람이 되잖아

그래야 내가 쉬운 사람이 되잖아

그래야 겉으로만 상담하고

아, 얘는 괜찮구나

쓸데 없이 안심하고

다시 나를 잊을 거잖아

괜찮지 않아보이면 안되잖아

괜찮아야 하잖아

그래야

그래야

그래야,

내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남고

나도 그들을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기지

그렇지 않아서

그들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안심하고 있다가

그들이 떠났을 때 빈공간을 메우는

그 공허함은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난 모든 걸 얘기할 거야

묻는 것에 대해 전부 사실로 답하겠지

처참한 가정사를 가감 없이 털어놓을 거야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을 내게 바라지 마

먼저 나서서 진심을 말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 선을 넘어도 되리라 멋대로 판단하지 마

나와 상담을 하는 몇 몇 선생님들께 하는 이야기

나는 언제나 사실을 말하고

나는 언제나 웃고 있을 테지만

그 이상을 내게 바라지 마

그랬다가

내가 또 멋대로 상담을 그만둬 버리면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거잖아?

그러니까

이대로 머무르자

표면적인 관계에

'괜찮아 보이는' 관계에

웃으면서 사실을 거침없이 내뱉고

상대의 말이 내 속을 헤집어도 웃고 넘길 수 있는

그런 관계에

내가

당신들을 의지하게 만들지 마

내가

나약해지게 만들지 마

내가

기대하게 만들지 마

그냥 이대로

곪아가게 내버려 둬

어차피 당신들은

나를 완치시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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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06 20:49 | 조회 : 66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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