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목소리

지긋지긋한 목소리

그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까지 가라앉게 만들어

알아

당신이 전화를 끊고싶어 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

그게 싫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지

빠르게 얘기들을 꺼내고

이어나가고

당신이 전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선해도

어떻게든 당신의 전화를 붙잡으려고

그래봤자 더 상처받을 뿐인데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라니 웃기지도 않아

당신의 목소리 덕에 간신히 괜찮아지려던게 안 좋아진지 오래인데

눈치도 빠르다는 사람이 왜 그건 모를까

이러니까 내가 당신께 전화를 자주 안 하지

저번에

아주 짧은 통화 때

당신이 회의 중이라 바로 끊어야했던 그 통화 때

오랜만의 전화라 하고 싶은데 끊어야한다고 말해준 게 기뻤어

고작 그게 기뻐서

전화를 걸었고

나는 또 다쳤네

차라리 기뻐하지 말 걸

당신이

내가 무언가를 바라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상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걸까

혈연

그놈의 혈연 때문인가

인연따위 만들고 싶다고 한 적 없어

그런데 왜

날 이렇게 괴롭혀

내가 연을 맺는 순간

나는 그 얇은 실 하나로 안절부절 못 하는데

상대에겐 그게 아니지

있어도

없어도

큰 차이가 없는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새 옆에 있고

같이 걸으며 다른 이와 얘기를 하면 금새 사라지는

공기와 별 다를 것 없는 존재

차라리

차라리

차라리

아무 연도 맺지 말 것을

그냥 혼자 살 것을

왜 나는

멍청하게 연을, 정을 바라고

상처받고

냉소하는지

그냥 포기하는 게 빠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그게 네가 지금

모든 사람과의 대화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잖아

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거야?

왜?

그냥 포기해

그 아둔함으로 날 더 아프게 만들지 마

놓아버리면 편하잖아

기대하지 않으면 편하잖아

기대하지 않는 삶에 즐거움이란 없다고

혹자는 말하지

나는 기대하는 삶을 살기에

상처투성이야

그러니까

이 지긋지긋한 상처들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즐거움 따윈 필요 없어

그냥 무채색의 세상에서 살아갈테니

제발

내가 또다시 기대를 하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지 않기를

그냥 그렇게

어느날 스러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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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08 13:40 | 조회 : 683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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