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땡땡이



“끄응...”

가정교사라는 건, 생각보다 만만한 직업이 아니였다.

아클레인의 온갖 공부를 전부 도와줘야 했고, 새벽에 나가 저녁이 되어야지만 침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솔직히 황제한테 다시 사직을 부탁하려 했지만, 해운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금을 되내이며 참았다.

그래도 정말 좋은게 한 가지 있다면,

“해운님은 어쩜 황실 학자보다도 똑똑하신 건지요...”

이곳의 공부는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였다.

‘그래도 너무하다, 어떻게 루트 하나 모를 수가 있지..? 여기 학자들은 연구를 하긴 하는거야?’

해운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구구단표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아클레인을 보면서 그는 얕게 웃었다.

저기 있는 구구단표도 내가 직접 만들었지... 마나와 오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드니 이런 과가 전혀 발전하지 않은 거야.

5살이 된 아클레인은 이제 온갖 수업을 다 들었다. 서사, 시등과 같은 문학부문에서부터 검술, 마나에 관한 논문까지 공부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가 지금 외우는 구구단표는 원래 세계 아이들보다 고작 1~2년 빠른 편이였다.

확실한 건 여긴 순수학문이 제대로 적립되지 않았다는 거지.

수업이 끝나자 아클레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해운은 비교되게 쌩쌩했다.

용사라는 게 그렇지 뭐. 체력이랑 기술만 무지하게 세 아주.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학술 자료들을 집어들었다.

“조금만 쉬세요. 힘드시겠다. 다음 일정은 검술 수업입니다.”

“..해운. 나 땡땡이 치면 안되겠지..?”

아클레인이 책상에 엎어지면서 작게 말했다. 저 작은 머리로 모든걸 습득하고 있었다니.. 여기 황족 교육은 다 이런가.

땡땡이라..

쳐진 어깨를 겨우겨우 들며 아클레인이 허탈한 듯 웃었다.

“역시, 될 리가 없...”

“그러죠.”

“...응?”

해운이 씨익 웃으며 아클레인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들어올렸다. 당황한 아클레인이 보랏빛 두 눈을 깜빡였다.

“땡땡이, 치자고요. 어디로 가실래요? 시내에 나가 보실래요? 아님 황실 기사단 훈련이라도 구경 할래요?”

아클레인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반짝반짝한 눈빛을 본 해운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눈으로 공부하면 올백은 그냥 맞겠다.’

아클레인이 눈을 또르르 굴리더니 웃었다.

“시내에 나가 보고 싶어!”

“그럴까요? 아직 2시이니 나가서 좀 놀다와도 괜찮겠네요.”

“그런데 해운, 황궁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황실에서 결계를 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황실 마법사들을 무시하면 안될건데..”

아, 그 얼렝이들? 마왕의 쪼무래기만하던 놈들?

“괜찮아요. 고작 7서클 밖에 안되는 것들인걸요?”

“고작이라니?! 그럼 넌 몇 서클인데!”

아클레인이 두눈을 왕방울만하게 떴다. 어이구 귀여워라, 우쮸쮸

“저요? 17서클이요.”

환하게 웃으며 해운이 말하고는 놀란 아클레인을 두고 마나를 움직였다. 아주 세밀하게, 결계를 유지하는 마법사들이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이세계에서 나를 이어 두 번째로 강한 마도사인 황태자조차도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

아클레인의 방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함께 사라졌다.

-

“우..우아아아...”

아클레인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내에 눈을 때지 못했다.

“잠시만요, 저하. 실례하겠습니다.”

해운이 그에게 자신의 마나를 주입하여 눈동자 색을 자신과 같은 검정색으로 바꾸었다.

“저하, 이제부터 저희는 사촌지간이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아, 알겠어.”

“그래, 아크.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자연스럽게 묻자 아클레인이 움찔했다. 아클레인은 아크, 라는 부름에 놀랐던건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나는 시내 음식이 뭐가 유명한지 모르니까 형아가 좋아하는거 알려줘.”

형아라, 형아.. 원래 세계에서 지우가 나를 불렀던 말.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떨렸다.

“그럼, 저기 닭꼬치부터 먹어볼까?”

“좋아!!”

달콤한 향기가 나는 닭꼬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아클레인은 눈을 빛내며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닭꼬치부터 레스토랑까지 휩쓴 우리가 거리 카페에 주저앉았다. 벌써부터 마나가로등이 켜졌다.

그때, 황실 기사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멀리 떨어진 시내로 왔는데 벌써 여기까지 뒤지다니..

우리가 사라짐을 깨달은 즉시 수색이 시작된 모양이다. 여기서 마나를 써 피하면 조금 번거로워 질텐데, 이쯤 할까.

“아크,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날이 어두워졌잖니.”

그리고는 아클레인에 귀에 대고 말했다.

“황실 기사단이 벌써 여기까지 수색을 왔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크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없을 만한 황궁의 장소로 이동했다. 그 장소로 말하자면, 등잔 밑이 어둡다 작전, 바로 아클레인의 방이였다.

딱 들키기 좋은 방이지만,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테니까 다른 곳을 뒤지고 있겠지.

라고 생각한게 문제였다.

“오셨군요.”

이동한 우리를 맞이한 건 차갑게 식은 표정의 황태자, 루세프였다.

“형..아..?”

아클레인이 그를 바라보고는 날 보고 울상을 지었다. 어떡하냐는 표정으로 그는 작은 손으로 내 옷가지를 꽉 잡았다.

그런데 어쩌죠.. 저도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대책이 없네요.. 아하하..

“황태자 전하.”

내가 고개를 숙이자 아클레인이 따라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하는 짓이군. 가정교사라는 놈이 황자를 데리고 땡땡이?”

“아하하.. 그러니까 저는 가정교사로서 무리한 공부는 저하께 독이 될거라고 판단하여서 바깥 공기를 좀 쐬어주려고..”

나름 변명했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은 매서운 찬 바람만 휘휘 날렸다. 음, 그러니까..

망했다.

-

“블러드 문이군.”

“응, 붉은 달이야.”

“붉은 초승달. 새빨갛게 물든 달”

달만큼이나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쌍둥이였다.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반대편 손에는 작은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달이 기울기 시작했어”

“기세가 기울거야”

어린 쌍둥이는 피로 질척거리는 발을 떼었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내뿜듯 흘리는 자는 두 쌍둥이의 부모, 미어스 자작과 그의 부인이였다.

그리고 복도는, 그 저택의 모든 사용인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모든 것은, 그 분을 위해서.”

뜻 모를 붉은 두 눈동자가 붉은 달을 향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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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28 15:03 | 조회 : 1,272 목록
작가의 말
하젤

아아 이건 분명 판타지 일상물이였는데 왜 심각해졌지.. 아하하ㅏ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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