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심해






칠흑같은 밤이였다. 붉은 달이 휘영청 빛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거려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해운이 얕게 한숨을 뱉어낸다.

“언제까지나 황궁에 매여 있을 수는 없어.”

물론, 아클레인이 클수록 나를 잘 따라서 좋긴 하지만, 가정교사직도 힘들고, 무엇보다 그리웠다, 원래 세계가.

그 푸른 하늘과, 우리 학교, 친구들, 동생들, 부모님. 손에 잡힐 듯 어른거리는 추억에 입술을 비스듬히 깨물었다.

“내가 스스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겠어. 황족을 배신하더라도. 나는 여기 있으면 안돼. 여기서 나는 신의 변수고, 무엇보다도...”

마왕의 마지막 말이 걸렸다. 내가 정말 황제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인가? 귀찮아서 미뤄두고 있었던 생각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것에 대해서도 좀더 알아봐야겠어.

해운이 나른한 눈빛으로 숨을 뱉었다. 그러고 보니 황제는 왜 이렇게 후한 보상을 주면서 나를 여기에 매이게 하는거지?

“수상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니야, 그래도 아무 증거없이 남을 의심하면 안되지.

해운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더 머리가 아파왔다.

“바깥 바람이라도 좀 쐴까.”

마력으로 손에 불을 캐스팅했다. 손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이 보였다.

“이세계에 정말 신이 있는 것이라면,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낸건가요. 나는 그저 변수인겁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위한 철저한 계획입니까?”

그 어떤 것이라도, 나는 당신 마음대로 놀아나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빨을 으득 갈고는 해운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어두운 복도에 불을 든 해운이 걸어나갔다. 정원까지 걸어내려간 해운이 숨을 길게 토해냈다.

산들거리는 식물들과 나무들이 눈에 보였다. 이 썩어빠진 황궁에 이리도 아름다운 정원이라니.

어릴때처럼 위에 드러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만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엉킨 실처럼 꼬여있는 기억들에 점점 더 머리에 중압감이 일었다.

휭-

그때 조금더 세찬 바람과 함께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나뭇잎은 해운의 볼을 스치고 날리다가 떨어졌다.

금발의 누군가가 정원에 서 있었다. 해운이 전혀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대단한 실력자일 것이다. 그래봤자, 쨉도 안되겠지만.

해운은 오른손에 불을 그대로 든 채 다른 한손에 트리플 캐스팅을 했다. 그럼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누..”

“거기 누구냐.”

해운이 말을 때자마자 상대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목소리가 뭔가 많이 익었는데. 누구더라?

“황태자 전하?”

“..해운?”

보통은 가정교사라고 불리다가 해운이라고 이름을 불리니 뭔가 느낌이 새롭다. 하지만 이럴게 아니지.

“이 야밤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면 외부인인 용사님은 무슨 일입니까?”

“외부인이라니 섭섭하네요. 그저 잠이 오질 않아 바람을 쐴 겸 나온 것 뿐입니다.”

해운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붉은 달에 비추어 위압감을 보였다. 다가갈 수조차 없는 느낌.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위압감에 심장발작이라도 일으켰을지 몰랐다.

잠깐 움찔한 황태자는 후, 하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달이네요.”

“그러게요. 왠지 느낌이 기묘합니다.”

“용사님, 아니 해운. 제가 충고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황태자는 마른 입술을 채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를 조심해. 되도록이면 황궁을 벗어나라. 그게 너에게도 좋을 것이야. 다른 세계에서 왔다며? 평화롭다고 했잖아. 싸움에 더 밀려들고 싶지 않다면 가라. 강요는 아니지만.”

갑자기 내뱉는 반말에 해운이 입을 살짝 벌렸다.

“음”

짧게 소리를 낸 해운이 다시 입술을 들어올렸다.

“루세프, 너는 신을 믿어?”

해운 또한 반말을 하며 곱게 두 눈을 접었다. 황태자, 루세프가 고개를 그를 향해 돌렸다.

“만약에 정말 신이 있다면. 나는 그의 뜻대로 하지 않을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말이지.”

중압감을 잔뜩 머금은 미소를 띈 채 해운이 말했다.

“완벽한 이 세계의 변수가 될 예정이거든.”

“뭐...”

“네가 한 말은 잘 생각해볼게. 충고 고마워.”

입을 벙긋거리는 루세프를 보고는 해운이 캐스팅한 마법을 집어넣었다.

“나는 루세프가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해치게 된다고 해도 절대로 네 목숨에는 손을 대지 않을 거야.”

해운이 한발짝 한발짝 루세프에게 다가갔다. 입고리가 굳은채 서있는 루세프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숨결이 느껴질만큼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해운이 손가락을 뻗어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 손은 목 부분에서 멈추었다.

“큭-”

“이런, 황족이 너무 무방비하구나.”

검푸른 해운의 마력이 발끝부터 루세프를 휘감아 올랐다. 마지막으로 마력은 그의 목을 감았다.

루세프가 연신 기침을 내뱉어냈지만 해운은 여전히 웃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여기는 관리하는 기사들조차 없나? 아니면 네가 다 물리고 온건가?”

“으..큿..”

“뭐, 상관없어.”

깨끗한 웃음을 지은 해운이 목을 그러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동시에 루세프를 감싸고 있던 마력이 스르르 풀려내려갔다.

“..감히 황족을..!”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루세프의 입을 얼른 막으며 해운은 새침하게 말했다.

“이번만 봐주시는 걸로 해요. 그쪽 목을 왜 잡았는지 알기나 해요? 마법을 하나 걸어뒀습니다.”

루세프가 해운의 손을 치우며 입술을 닦았다. 에잇, 기분 나쁘네. 내 손 깨끗한데.

“그쪽을 지켜줄 마법이죠.”

“나를? 왜지? 나도 너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제국에서 나름 이름 날리는 마검사다. 내몸 하나 간수하고 지킬 정도는 된다.”

“그렇죠, 마검사. 본인보다 나이 어린 사람한테 제대로 죽을 뻔한 마검사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해운이 말하자 루세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내 목에 이딴 장난질을 해뒀으니 나도 보답을 하나 해야겠지?”

그말에 해운의 표정이 헤벌쭉해지더니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루세프를 바라보았다. 순간 루세프는 그의 눈이 골드라도 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에이 그래도, 형님. 골드 몇십개 정도는 주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내가 손가락으로 동그란 골드 모양을 보이며 웃자 루세프가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가 웃었다.

“내일 아침 일어나보면 바뀐게 제법 많을 것이다.”

아, 왜죠? 궁금하게 실이. 막 골드로 방을 채워놓으셨거나 그러면, 존경합니다 형님..! 기대할게요!!!





3
이번 화 신고 2020-01-18 16:42 | 조회 : 1,191 목록
작가의 말
하젤

골드로 가득 찬 방이라면 나도 좀 나눠주면 좋겠다....으흑....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