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건 반강제 아니냐고!






“끄아아악!!”

뭐야!! 이게 뭐냐고!! 야, 황태자 새끼 너 이리와! 이거 뭐야!

방안이 골드로 채워져 있어?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참 멍청했지. 방을 가득 매우고 있는 건 내 목을 향한 검들이였다. 그것도 국보급의 검들.

조금만 움직여도 베일 것 같은 예리한 검들이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젠장, 황태자 새끼, 왠지 불안하다 했더니! 나는 도와줬는데!

“억울해!!”

-

“풋”

루세프가 비웃음을 흘렸다. 해운의 비명이 그의 귀에까지 들리는 모양이였다. 하긴, 마검사인데, 청력 하나는 참 좋다.

어차피 마법과 검술, 정령술이고 뭐고 다 가지고 있는 해운을 해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일찍이 접고 있었다.

그저 그의 목적은 해운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 웃겨라.

“킄..”

웃음을 참기 위해서 한손으로 입술을 꾹 눌렀지만 자꾸만 귀에 들리는 고함소리에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핫, 재밌는 녀석.

루세프의 보좌관인 카를로스 마테스는 드디어 그가 미친건가, 하는 표정으로 배를 잡고 웃는 루세프를 봤지만, 루세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전하, 체통을...”

“하하핫, 그래. 크흠.. 큼...크흨크크..”

결국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루세프에 카를로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보시더니, 드디어 미치신 모양이다.

‘황제 폐하께 보고 해야 할까’

잠깐 생각한 카를로스는 한숨을 뱉었다. 보고 해봤자 황제는 황태자의 일에 눈꼽 만큼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 뻔했다. 요즘에 ‘그 일’ 때문에 바쁘실테니까.

바로 미어스 저택의 살인사건. 일개 보좌관인 카를로스가 보기에도 그 사건은 무척 기묘했다.

미어스 자작과 자작부인 뿐만 아니라, 그 저택의 모든 하인들이 죽어 있었던 사건이다. 신기한 건 시체로 산을 이룬 저택 안에 자작부인의 자녀인 쌍둥이 남매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국민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즉 이 일을 뒤늦게 수습하기 시작한 황궁은 여전히 진범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소문은 더 불고 불어 황궁 쪽의 암살자들이다, 암흑 길드의 소행이다, 등 좋지 않은 민심을 만들었다.

그래서 황제 역시 더 바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그 민심을 잠재워야 할테니까. 그러니까 황태자도 바쁘시다. 그런데 얼마나 바빴으면 이렇게 제대로 미쳤대?

겨우 웃음을 끅끅거리며 멈추는 루세프를 보며 카를로스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그나저나 전하, 그래서 조사단은 어떻게 선발하실 겁니까?”

큼, 하고 한 번 헛기침을 한 루세프가 그를 응시했다. 조사단이라, 이 기묘한 일에 적합한 실력자들...

“일단 카를, 네 동생이 아마 제 1기사단원이였지?”

“예!”

제 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뿌듯한 표정으로 카를로스가 답했다. 그런데, 뭔가 루세프의 표정이 이상했다. 조금 한기가..

“그럼 네 동생인.. 란슬롯 마테스를 호위기사로 세워서 보내도록 하지. 그리고.. 용사님도 갈거야.”

“예..?”

카를로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야, 수사현장이니 나쁠 건 없지만 고귀하신 용사님을 그런 곳에 왜...?

“용..사님을 직접 그곳에 행차시게 하시려는 이유가..”

“아? 그냥. 한 번 당해보라, 이런 거지?”

“예에?”

카를로스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루세프를 응시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였다.

“뭐, 나머지는 대충 수사관들 파견 시켜.”

“예...”

루세프의 대충이란 그냥 대충이 아닌 잘 거르고 걸러라는 뜻이니 또 고생이나 하겠구나 싶어 울상을 짓는데, 루세프가 말을 덧붙였다.

“정말 대충이야. 쓰레기들 거를 필요 없어.”

저..저기요? 용사님이 가시는데?

“에이,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카를. 쓰레기들은 용사님이 자알 쓰레기통에 버려 주시겠지.”

..루세프는 정말 그냥 용사님이 싫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악랄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리가 없어..

-

“해운님!”

“아, 또 왜?!”

검들의 충격에서 겨우 헤어나온 해운이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망할, 황태자... 마법을 걸어주는 게 아닌데!

달려왔는지 숨을 고르던 쿠크다스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운님이 미어스 저택에 수사관으로 동행하신다고 합니다!”

...뭐야?

“미어스 저택? 미어스 자작 말하는 거야? 거기 무슨 일 있었어?”

“아이참,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쿠크다스가 에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을 내쉬는 꼴이 무슨 내가 뭣도 모르는 꼬맹이라는 모양새야? 뒤질래?

“요즘 얼마나 유명한데요, 미어스 저택 살인사건!”

“미어스 저택 살인사건? 전부다 죽기라도 했길래, 그렇게 거창한 말을 붙여?”

“예, 바로 그겁니다. 자작의 아이인 쌍둥이의 시체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채로 발견 되었다죠!”

왓더? 미어스 자작을 단 한번, 황실 무도회에서 본 적이 있다. 날카로운 인상이였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허물 없이 친한 모습이였다. 귀족 놈들, 상심이 크겠는데? 좋은 친구 하나가 하늘로 갔겠어.

나 역시 그와 말을 섞어 본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수상한 점은 없었다. 단 한가지, 나에게 무언가를 하나 말해주려고 하다가 내가 아클레인의 손에 끌려나가는 바람에 못 말해 주었다는 것.

그것 때문에? 그래도 이상했다. 나름 좋은 사람이였고. 그런데 그런 그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고? 정말 이상한 일이군.

아니, 잠깐만.

“동행해달라고 지시한 사람이 누구야?”

“제가 알기로는 황태자 전하인뎁쇼.”

...아, 젠장. 망할 황태자 새끼! 딱 봐도 골치 아픈 사건에 나를 연루시키다니. 이 녀석은 그냥 날 싫어하는게 아닐까 싶다. 뒤끝 긴 녀석..

“후우.. 그래서 미어스 저택에 가는 날은 언제인데?”

“내일 오시 경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작의 영지까지 가는데에는 하루 정도가 걸린다고 하네요. 용사님께는 마차를 지원하겠다고 해셨습니다.”

엥? 마차를? 왜 난 그것마저 수상해보이냐.

“필요 없어. 말타고 갈거라고 전해.”

“옙”

“그래서.. 그쪽 영지에서는 얼마나 머물렀다가 오는 건데?”

“일주일입니다.”

아, 잠깐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일주일?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면서 일을 해라고? 싫어!

“하아...”

망할, 내 인생... 신은 대체 왜 나를 이딴 곳으로 불러와서! 그냥 날 골리고 싶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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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1-23 16:26 | 조회 : 1,172 목록
작가의 말
하젤

응 미안하다.. 골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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