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번째 수사







“후...”

루세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형님?”

제 2 황자인 이트가 그를 툭툭 쳤다. 루세프는 고개를 슬쩍 들어올려 그를 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미어스 저택 사건 때문에 그래?”

“아니.”

그는 이트의 물음에 짤막하게 답하고는 마른 세수를 했다. 냉정했던 평소와 다르게 푹 늘어진 모습이였다.

“그럼 왜 그러는데?”

“너는.. 하..”

루세프가 얼굴을 구기며 그를 바라봤다.

“아직도 모르겠어?”

“모르지! 형님이 아무 말도 안해주는 걸?”

“에휴...”

너한테 말하려던 내가 문제야, 문제. 시녀들도 아는 걸 네가 모르냐.

루세프는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다시 엎드려버렸다. 이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해야 할 말을 전했다.

“아버지가 요즘 조금 이상해.”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다.”

“아니 진짜로. 요즘 자꾸 왠 하얀 가루를 모으신단 말이지. 설탕 같기도 하고.. 몰래 모으시는 걸 보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야.”

“흰 가루..?”

루세프가 벌떡 일어났다. 금발이 살짝 흔들리며 가르마가 엎어졌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더욱 불안한 표정이였다.

“이트, 그 가루를 어디서 봤지?”

“그건...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어.”

“누구에게?!”

“왠 수레를 끌고 황궁 안에 들어가던 사람들이 있었어....음, 사실은 자정 쯤에 빠져나가려다가 마주쳤는데, 말을 엿들어 보니 황제 폐하의 물건이다, 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수레를 끌고 가던 사람들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지?”

“요즘 들어 계속 봤어.”

이트는 웬일로 밤에 빠져나간다는 소리를 듣고도 무어라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우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 아버지는 어디계시지?”

“어.. 그건 잘..”

“카를로스! 당장 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안내해줘.”

책을 정리하던 카를로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루세프의 심각한 표정에 그는 뭔가 심상찮음을 느꼈다.

“..예.”

뭔가 이상한 일에 같이 연루되는 것 보다는 그냥 조용히, 빠르게 안내하자는 생각에 그는 간단히 답하고는 루세프를 밖으로 모셨다.

결국 방안에 혼자 남겨진 이트는 고개를 으쓱, 하고는 루세프를 따라 나섰다.

-

“출발합시다! 약 5시간 정도만 더 가면 미어스 저택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제와 다름 없이 냉철한 카리스마를 빛내며 란슬롯이 소리쳤다. 나 역시 그의 지시에 맞춰 흑마에 올라탔다.

간단하게 아침을 때워서인지 조금 배고팠지만 5시간 정도 가는 것에는 별 무리 없었다. 새삼, 황궁에 얽매어 있는 동안 나도 참 약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작게 먹었다고 배고프다니, 하핫.”

작게 혼자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란슬롯이 고개를 뒤로 돌리며 물었다.

“배고프십니까?”

“아, 아닙니다. 5시간 가는 것은 거뜬해요!”

내가 살짝 미소지어 보이자 란슬롯도 화사하게 웃어보였다.

“그럼 저택 주변의 시내에서 먹을 거리를 좀 찾아 볼까요?”

“그건 안될 것 같습니다, 마테스 경. 미어스 저택은 시내의 가장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시내까지 들어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에게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옆에서 또다른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이리저리 뻗친 붉은 머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뭡니까.”

“아.. 아닙니다.”

그를 바라보자 그는 고양이 마냥 경계하며 나를 노려봤다. 평소에 받던 대접과 조금 달라서 당황했지만 뭐,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그냥 불만 많은 새끼라고 생각하자.

나는 고개를 내리 휘휘 저으며 흑마에 살짝 기대었다. 흑마는 작게 울부짖더니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비비었다.

상냥한 녀석. 아무 생각 없이 기대어 있자니, 다시 잠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말을 탄 채로 잠을 자고 일어났다.

내가 눈을 뜬 건 이미 미어스 저택에 도착해서 였다. 란슬롯이 나를 슬쩍 쳐서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어우, 너무 졸리다. 그냥 좀 자게 놔둬 주지. 라고 한다면 민폐겠지?

그래서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말에서 내려왔다. 흑마도 역시 늙어서인지 지친 듯 했다. 조심스레 말 안장을 쓸어주고는 수사관들과 함께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저택 안은 아수라장이였다.

차마 볼 수 없는 광경. 사건이 발생한지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저택 안의 모습은 사건이 일어난 그 시점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머릿속이 댕, 울리는 느낌이였다. 숨조차도 잘 쉬어지지 않는 역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 영지쪽에서는 시체를 치우지도 않은 모양인지, 피가 튄 방향대로 시체가 널부러져 썩어가고 있었고, 파리가 날렸으며 구더기가 기어다녔다.

폐에 무언가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저 시체들이 며칠 전만 해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사람들이였다는 점이였다.

내 얼굴이 상당히 안 좋은 것을 알아챈 어느 한명의 수사관이 괜찮냐고 물어왔다. 그러나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도대체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걸리적 거리지 말고 비키십쇼.”

내가 패닉에 빠져 할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치고 나왔다. 아까 그 빨강머리였다.

“아..”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릴 정도로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정신차려, 해운.

아무리 황태자에 의해 반강제로 온 것이라도 나는 여기서 용사가 아닌 수사관 중 한명이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을 밝히는게 여기서의 나의 일.

내가 빨강머리를 뒤따라 나아가자 머뭇거리던 수사관들도 하나둘 발을 뗐다.

나는 마법을 사용해 수사인원들에게는 파리와 구더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막을 둘렀다. 그리고는 시체들의 상흔을 뜯어보았다.

짧고 굵게 난 상처들. 그냥 검으로 날 수 있는 상처는 아니다. 작은 나이프나, 단도 등으로만 가능한 상처들이였다.

확실히 엄청난 실력자야.

과연 혀를 내두룰 정도의 실력이였다. 이정도면 황태자, 루세프랑도 비슷한 검술 솜씨 아닐까.

나는 조심조심 시체를 밟지 않도록 피해 미어스 자작이 죽어 있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시체 역시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는데, 표정은 뭔가 애통해보였다.

“왤까..”

그중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상흔들이 전부 하반신 쪽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였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부터 묶었던 것일까?’

또 이상한 것은 아무리 그래도 미어스 자작은 검사로 들었어. 기사였다고 했지. 그런데도 미어스 자작이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당했다고? 대체 왜? 어째서? 쌍둥이는 왜 사라진 거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다가 뭔가가 뇌리를 스쳤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하반신의 상흔, 나이프나 단검을 사용한 상처, 자작이 의심하지 않을 만한 사람, 사라진 쌍둥이.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연결고리였다. 그러나 감히 생각할 수가 없는 생각. 하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그렇다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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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2-24 18:49 | 조회 : 1,077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내이름은 해난! (해운+코난) 탐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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