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잘 풀린다 싶으면 이래









그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저택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매우 큰 소리였다.

“뭐야!”

머리가 울리는 듯한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수사관들이 방을 뛰쳐나갔다.

나 또한 빠르게 1층 로비로 내려갔을 때 마주할 수 있던 것은, 굳게 닫힌 저택의 문이였다.

어떤 재질의 문인지 몰라도, 란슬롯이 열심히 내려쳤으나 흠집조차 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하니 무척 단단해보이는데...

아니면, 마법이 걸린건가?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힘의 강화 마법 술식을 머릿속으로 그려내서, 마력을 머금은 채,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마력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와 문을 격타했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력이 튕겨져 나와 내 쪽으로 향했다.

엄청난 마력이 이쪽을 향해 덤벼들었다.

“흐억..!”

“사..살려줘!”

사람들이 몇몇 바닥에 주저앉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나 역시 제법 놀랐지만 반사적으로 발동한 방어마법 덕에 나를 포함한 일행은 무사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는 거야?”

“집에 가고 싶다고!”

“저주야! 이건 저주라고!”

소수의 사람들은 저주라고 울부짖으며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저런 것들이 수사관으로 뽑혀서 왔다니, 어이가 없군.”

언제 도착했는지, 옆에서 태클 장인 빨강머리 수사관이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나도 동감이였다.

그나저나.. 뭐지..? 어떻게 이 마력을 견뎌내는 문이..

확실히 문에 강화마법을 걸어둔 것은 확실했지만, 내 마력을 그대로 튕겨내는 걸 보니 또 다른 술식을 쓴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창문을 깨고 나가야겠군요.”

란슬롯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안했다.

분명히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따사로웠지만, 저택 내부에 낭자한 피와, 시체들을 비추어 기묘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였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하는거지? 저택의 살인자들의 공범인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란슬롯은 긴 칼집을 그대로 들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봉쇄..했다라..”

“마테스 경! 창문을 깨지 마세요!”

내가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옆에 서있던 빨강머리가 크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란슬롯이 창문을 깨려다가 깜짝 놀라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문을 왜 봉했겠습니까? 문이 없다면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곳은 창문 밖에 없습니다! 창문에 무언가 해두었을 겁니다!”

아..!

그걸 놓쳤구나! 왜 굳이 수고스럽게도 문을 막았는지!

“시각적으로 봐서는 아무것도 없는 창문이니까, 다른 술식이나 마법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더니 빨강머리는 나를 쳐다보았다.

“확인 부탁합니다.”

수십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후우.. 다시 이 몸이 나서야 할땐가.

나는 일부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며 창문으로 다가가 눈을 감고 마나를 심장부근에서 눈으로 끌어올렸다.

내가 처음으로 개발한 마법인 마안이였다. 마안은 거의 모든 RPG게임이나 소설 속에 있던 스킬이였기에, 마나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스킬이였다.

마안을 사용할 때는 눈 흰자의 색이 검푸르게 변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용 시에는 시야가 흑백으로 보인다.

제법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일테니까.

그리고, 역시 빨강머리가 주장했듯이 창문의 건너편에는 붉은 마력이 창틀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깼다면, 란슬롯이 죽을 지도 모를 뻔한 사고였다.

내가 마안을 회수하고 뒤돌아서 고개를 젓자,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텔레포트.. 텔레포트는 안되는 겁니까?”

빨강머리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듯, 입술을 깨물며 물어왔지만, 나는 그저 연거푸 고개를 내저었다.

텔레포트는 공간을 비틀어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마법인데, 이 상태에서 공간을 비틀었다간, 창틀의 마력이 발동할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한마디로, 누군가가 바깥에서 저 문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이곳에 언제까지고 속박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였다.

“일단 황궁 내부와 연락이 가능하니까,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당장 황궁과 연락을 취해 주십시오..”

란슬롯 역시 당황했는지 말고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얼마나 대단한 기사님이라고 해도, 다치지 않고서는 행동불능 상태에 걸린 적은 없었을 테니까.

“여기가 저택이라서 다행이군요.”

뒤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던 빨강머리가 조리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이지 다행이였다. 대저택인 만큼 황궁에서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먹을 양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였다.

그냥 넋이 나간 사람, 그래도 먹을 게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한 사람, 울고불고 난리난 사람.. 아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도, 란슬롯과 나, 빨강머리를 포함한 몇 명은 침착하게 연락과, 나갈 방법을 토의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저 빨강머리는 정체가 뭐람? 아까는 당황한 듯 하더니 이젠 제법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체까지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니, 저 녀석이 원래 세계에 있었다면 뭔가 엄청난 인재가 됐을 것 같군.

“저기, 잠시만요.”

“뭡니까?”

“이름이..?”

“...그런 타입입니까?”

빨강머리가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만, 그거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란 말이다..

“아닙니다. 그저 이름이 궁금했을 뿐이에요.”

“아, 그렇다면야. 제 이름은 한스 클로디스. 클로디스 백작가의 차남입니다.”

“크..클로디스 백작가요?!”

백작가, 그것도 클로디스 백작가는 거물이였다. 특히 전 클로디스 백작은 5명의 개국공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일인데, 문제라도?”

“아..아뇨. 아닙니다.”

제 좋다는데 알게 뭐야. 그나저나 역시 대단한 사람이군. 내가 옆에서 계속 말을 시키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수첩은 빠른 속도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 말에 대답하면서 시체를 조사하고, 이를 전부 기록했다고 해야겠지.

“멀티군, 멀티야..”

“멀... 뭐요?”

“그러..니까 대단하신 분인 것 같다고요. 한스는 좋은 분이에요. 아하하..”

“...역시 그런 타입..”

“아니라고요!”

내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한스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음...

정말이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야.










2
이번 화 신고 2020-03-16 19:47 | 조회 : 1,059 목록
작가의 말
하젤

한스님 추가 완료..!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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