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렇게 뜬금없이?











망할 저택 안에 갇히고, 황궁에 연락을 취한지 2시간째.

아수라장이었던 저택 내는 이제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쓰레기들만 모인 것은 아닌 모양이었는지 슬슬 침착해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꼬르르륵-

“윽..”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릴 시간이라는 사실.

냉장 창고에는 식량이 가득 차 있었지만 유일하게 요리사로서 일행에 합류했던 놈팽이가 실신해버렸다. 그래서 생으로 먹자니 다들 직위가 있어서인지 품행에 맞지 않다며 식사를 거부했다.

결국 나도 그들에 휩쓸려 식사도 못하고 쭈그러져 있다.

하지만 대단하신 우리의 한스 공자님은 여전히 빠르게 볼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시체 주변을 돌아다니는 그를 보면 정말이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꼬르르륵- 꼬륵-

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자, 잠깐만. 내 배에서 난 소리는 아닌데..

사람들의 눈이 집중된 것은 어느새 내 뒤에서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는 한스였다.

“왜? 뭘 봐?”

한스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지레 주변을 둘러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요리사, 아직도 안 깨어났군.”

“그러게 말이에요.”

넋 놓은 그의 목소리에 나 역시 맞장구를 치며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란슬롯이 놀라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다들 그렇게나 배고파요? 다 드러누워 뻗을 정도로?”

“배 안고플 리가 없지.”

“빵이라도 한입 먹어보면 좋을텐데.”

“차라리 부스러기라도..”

한스의 물음에 일행은 말도 안되는 불평을 내뱉었다. 아 왜 그래, 몇날 며칠은 굶은 사람들처럼... 그러다가 좀 있으면 서로 잡아먹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다들 귀하게 자랐을 텐데 이런 고생은 처음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 보였다.

그 꼴볼견들을 보다 못한 한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내게 수첩을 던지듯이 줬다. 반사신경으로 받아내자 그는 나에게 읽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냉장 창고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어라..? 어디 가나요, 한스..공?”

“한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당신이라면 그다지 상관 없을 것 같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한스.”

“요리를 하러갑니다.”

“예, 예에..?”

내가 잘못들었나? 누가봐도 엄청나게 아득하고 계획적에다가 철저한 한스가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주방.. 다 태워먹지만 마세요.”

“죽으실래요?”

“아, 목숨은 소중하니까. 하하..”

순간 굉장히 진지해보이는 낯이였기에 나는 곧바로 목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란슬롯이 제법 웃긴지 키득거리며 보았다.

“두 분, 굉장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전부터 연이 있으셨던건..?”

“아니에요!”

“아닙니다.”

동시에 튀어나온 대답에 란슬롯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사이가 좋은 거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니, 끔찍 정도는 아니려나..

담담하게 창고로 걸어가는 한스의 구두소리가 점점 사라지자 나는 슬쩍 몸을 일으켰다. 제법 오래되 보이는 그의 수첩을 열자 빽빽하고 단정한 글씨가 드러났다.

“같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란슬롯이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와 물었다. 세상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약간 그런 느낌 말이다, 산책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대형견이 나타나는 그런 느낌.

아니지, 아니야. 무슨 생각하는거야, 해운. 정신차리고 읽어보기나 해야지.

‘전체 시체는 약 60구 이상으로 추정됨. 명부 제외해서 살아있는 자는 아마 쌍둥이뿐. 시체에 난 상처는 대부분 깊고 짧음. 나이프와 같은 식기 사용. 하반신에 대부분의 공격이 가해져 있음. 저택 내의 범인. 그러나 명부에 따라서는 범인이 될 수 있는 건 쌍둥이 뿐. 쌍둥이는 3살. 가능한가? 누군가의 조종? 세뇌 마법? 4서클 이상의 마법사? 또는...’

‘쌍둥이의 자력?’

하지만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세뇌였다면 분명 시체의 상흔에 고유 마나의 잔여가 남아 있는 것이 정상. 하지만 시체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 말도 안돼! 세뇌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만으로 몰살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런데 대체 그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경악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란슬롯이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한스님은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최고 궁정 마법사 출신이시죠.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이를 그만두시고 마탑에 틀어박히셨습니다. 아시다시피 마탑은 황궁과 사이가 그닥 좋지 않습니다. 이를 노려서 황궁으로부터 도망치신 건지도 모르겠네요.”

“불미스러운 일이라니? 그리고 어째서 황궁에서 도망친거지? 게다가 수사관으로 있다는 건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잖아. 왜야?”

“그러니까, 6년 전 한스님은 마수가 출현했을 때 토벌대에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북쪽 끝의 마을에서 마수와 대항해 싸우셨죠. 그 토벌에는 한스님의 여동생이신 스티아님도 참가하셨습니다. 머리가 좋으셔서 작전을 잘 짜셨거든요. 그런데..”

“란슬롯님.”

란슬롯이 말을 이으려는데 차게 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말은 그쯤 해두시고, 간단하게 배 좀 채우시죠.”

말한다고 정신없어서 못 맡고 있었던 고소하고도 먹음직스러운 향이 코 끝에 맴돌았다. 향만 맡아도 감칠맛이 입안에 느껴지는 기분이였다.

“마, 맛있는 냄새..!”

“으아, 냄새가..”

“황궁에서 맛본 최고급 만찬의 향이..!”

사람들이 하나둘 한스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그릇을 여러개 들고 있었다. 그릇 덮개 위에 쌓고, 쌓는 형식으로.

덮개 때문에 무슨 음식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냄새 자체로는 황홀 그자체였다.

“자, 자. 하나씩 가져가시죠.”

한스는 그릇을 각각 나눠주며 말했다. 여전히 무표정이였지만 제법 뿌듯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란슬롯이 방긋 웃었다.

“냄새가 좋아요. 우리도 한접시씩 받을까요?”

“그러죠.”

한스는 내민 우리 둘의 손을 보고 뚱한 표정으로 잠시 응시하더니 작게 피식 웃고는 란슬롯의 손에 그릇을 주었다. 그릇에는 먹음직스럽게 담긴 크림 파스타가 들어있었다.

“자, 잠시만, 저도..!”

“아아아아, 안들려요.”

한스는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주제에 장난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결국 모두에게 그릇을 나눠주고 나서도 내 손은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줄까요?”

한스는 장난기가 충만하게 물었다. 젠장, 이자식이..!

“...아뇨”

“네?”

“내놔요.”

나는 마나를 이용해 남은 그릇을 끌어당겼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스는 그대로 뺏겨주었다.

어..라..?

“아, 아아앗..!”

내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한 순간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쓸 게 아니였다.

“여기서 나갈 방법이 떠올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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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31 16:31 | 조회 : 1,044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뜬금없이 음식그릇 뺏다가 생각난 방법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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