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안 X 레냐 X 데니스 ] 004


“그럴 리가 없잖아, 이안은 날 사랑해. 이안은, 날... 날 버릴 수 없어.”
“현실을 직시해야지, 레냐. 언제까지고 네 꿈 속에서만 살 생각이야?”

자,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해. 아무도 없는 네 모습을 마주해. 그리고 증오해, 이안을. 유감스럽지만 그 새끼는 널 사랑하지 않았어. 나라고 너를 받고 싶었을까. 다른 알파의 향이 나는 널, 내가 왜 데리고 있어야 할까.

“데니스, 거짓말은 거기까지 해. 제발... 이안을, 이안을 불러 줘.”

어딘가 찢어지는 소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였다. 붉은 빛이 돌며, 아리는 듯한 느낌이 레냐의 정신을 붙잡는다. 쓰라린 볼을 붙잡고 데니스를 바라보면, 데니스는 웃었다. 미친 것처럼.

“이제야 좀, 현실이 보여? 네 앞에 있는 건 나야. 네가 사랑해야 하는 것도 나고. 이안은 없어, 널 버렸어.”

레냐는 순간, 말을 잃었다. 너무 가득히, 아주 가득히 떠오르는 바람에 어떤 단어를 뱉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깔끔한 옷차림을 한 데니스의 발목을 붙잡고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 레냐. 살고 싶으면 나한테 붙어. 진작에 이랬으면 좀 좋아? 내가 그 새끼를 마주할 일도 없었을 거고.”

***

“허윽, 살려, 살려, 읍! 데니, 스, 데니스, 제발.”

정신을 차리면 늘 악몽이었다. 이유도 없이 데니스를 받았다. 목적도 없이 몸을 대줬고, 감정도 없이 사랑을 고했다. 그래야 데니스가 예뻐했으니까. 이안에게는 들을 수조차 없던 말로 찬양했으니까.

“레냐, 내가 누구라고?”
“데니스, 으응, 데니, 스, 흐읍, 살살, 아으...”

그리고 늘 짓궂게 굴었다. 사랑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굴다가도 순간, 돌변한 데니스는 늘 레냐를 절벽 끝까지 밀어붙였다. 망가진 몸이 결국 이성을 놓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도 데니스는 끝까지 레냐를 놓지 않았다. 누구와 비교라도 하라는 것처럼.

“레냐, 넌 이런 쪽이 어울려. 좆이면 좋다고 무는 이 꼴이, 너한테는 제일이야.”
“말도, 안 돼, 흐윽, 제발, 그만, 읍, 그만해.”

절벽 끝으로 밀어붙인다, 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레냐가 관계 중 정신을 잃어도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데니스를 받던 레냐가 정신을 잃고 하릴없이 흔들리면 데니스는 더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 끝에는 결국 사랑 고백이었으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레냐, 사랑해. 그 새끼보다 더. 내가 더 오래 좋아했어, 알잖아. 나랑, 행복했잖아. 그 새끼 오기 전까지. 확 죽일까, 죽여버릴까?”

곱게 눈을 감은 레냐의 입술에 데니스의 입술을 대며 그렇게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다. 아프고, 쓰라리지만 작은 불꽃이 될 그런 사랑을.

“레냐, 나랑 결혼할래?”
“데니스, 그만해. 결혼은... 아니야.”
“왜, 너 아직도 이안을 기다려? 내가 아니고, 이안 그 자식을? 아직도 그 자식을, 사랑해?”

멀쩡하게 두는 날은 꼭 그랬다. 결혼에 대해 물었고, 레냐에게 이안과 관련한 증오를 바랐다. 끝내 레냐가 이안을 선택했을 때, 데니스의 표정은 웃음을 잃었다.

“네가 그렇게 바라는 이안, 보게 해 줄게.”

데니스의 명령 하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방을 걸어 나갔다. 곧이어 구둣발 소리에 문을 바라봤을 때,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서 레냐를 응시했다.

“어쩐 일로, 날 다 불러. 데니스?”
“레냐가, 널 찾아서. 곧 죽어도 너를 사랑하겠대.”

구둣발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레냐의 시선은 결국 눈물을 토해낸다. 깨끗한 구두가 눈물로 뒤덮이고 이안은 물러선다. 이게 우리의 결말일까. 레냐는 도저히 이안을 바라볼 수 없고, 이안은 아무 감정이 없다.

“레냐, 사랑하지 마. 귀찮게 굴지 마, 제발.”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 그리고 애정으로 가득했던 심장을 조각으로 찢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의 세상은 여기서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끔찍하고 역겨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결말.

“데니스를 사랑해, 나 말고. 난 이미, 약혼까지 했으니까.”

이안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반짝였다. 레냐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데니스를 응시했다. 두 팔을 벌리고 레냐를 반기는 그의 밝은 표정을. 레냐는 이안의 허리춤에 있던 총을 들어 본인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안의 얼굴을 마주했다.

“사랑해, 이안.”

본 말을 끝으로 아찔한 총성과 함께 레냐는 사라졌다. 그렇게 이안도, 레냐도, 데니스도 모두 무너져내렸다. 원인은 레냐의 부재였다. 그가 없음에 모두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레냐의 부재는 또 다른 시작이자, 한 세계의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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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2-01 00:54 | 조회 : 1,276 목록
작가의 말

마감 귀찮아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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