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주 언니를 보려고 살아왔다!





내가 소설 속에 빙의된지, 어언 2달째. 이곳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눈을 뜨면 평소와 다른 웅장한 방과 영화에나 나올만한 드레스가 무척이나 불편했지만, 이제는 드레스를 입고도 편하게 활동 할 수 있었다.

“메리, 나 어디 좀 나가볼까 한데.”

메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 네! 하며 빙긋 웃었다. 우와, 너무하네. 내가 아무리 밖에 나가기 귀찮아 했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니?

그래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어떻게 코디할지 고민하는 게 귀여워서 봐준다.

“우선 목욕을-”

“목욕은 나 혼자 할게.”

“네엡..”

풀이 죽은 메리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목욕은 나 혼자 하는 게 낫다. 덜 불편하기 때문이다.

메리가 먼저 총총거리며 걸어가 따뜻한 물에 향유를 섞었다. 그녀가 나가고, 넓은 욕실에 나 혼자 남게 되자 그제야 나는 옷을 벗어 개켜두고 몸을 담궜다.

“휴우..”

따뜻한 물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교복을 맞추러 가자!

왠 교복이냐, 싶겠지만 우리 여주 언니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여주를 만날 생각이니까.

역시 소설에서 구사해 놓은 대로 여주언니는 예쁘겠지...? 아아, 어서 보고 싶어요! 이 다짐으로 2달을 참아왔단 말입니다!

“아가씨!”

“어어, 그래. 슬슬 나갈게.”

마음속으로 열심히 덕질을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흐르긴 했는지 밖에서 메리가 불렀다.

대충 목욕 가운을 두르고 나오는데 메리가 드레스룸에 있던 드레스를 10벌을 넘게 끌고 나와서는 낑낑대고 있었다.

“메리..?”

“아, 아가씨! 그럼 아가씨가 골라보세요..! 어떤 드레스가 나을까요?”

그..러니까 나한테 골라 라는 건가? 천하의 결정장애인 나에게?

첫 번째 드레스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나는 보자마자 아웃시켜버렸다. 교복 맞추러 가는데 저런 무도회 드레스는 왜 꺼내둔거야..

두 번째 드레스는 어깨가 너무 깊이 파여서 탈락. 세 번째는 내가 무슨 어린애인지, 프릴을 얼마나 많이 박아 넣은 거야?

네 번째 드레스는 그나마 봐줄만 했다. 녹차색 드레스는 소소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를 풍기고 있었다. 갈색 리본이 가운데에 포인트를 찍고 있었다.

“네 번째 걸로 하자.”

내가 고르자 메리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드레스들을 옷걸이에 걸었다. 따뜻한 느낌의 드레스였기에, 메리는 코르셋을 적당히 조절했다. 덕분에 저번 가족 식사 때처럼 숨 막히지는 않았다.

메리는 프로 정신을 발휘해 진주가 촘촘히 박힌 목걸이를 걸고, 머리도 잘 땋아서 갈색 리본으로 묶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나를 전신 거울 앞에 세우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요?”

“좋아, 마음에 들어.”

정말이지 이 예쁘장한 얼굴은 내 얼굴이지만 익숙해지질 않는다. 환경에는 나름 익숙해졌지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는 내 눈이 작용하지를 않았다.

“메리, 같이 나가지 않을래? 기사님이랑 단 둘이 가기에는 조금 눈치 보여서.”

메리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좋지. 같이 나가자.”

“레이던 오라버니..?”

이런 젠장, 앞을 보면 아름답고 뒤를 돌아보면 잘생겼어..! 코피 터진다, 조심!

“응, 율리아.”

..오라버니, 그 얼굴은 반칙입니다. 은발에 나처럼 사파이어를 빼다박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나의 오라버니는 얼굴 하나는 정말 최고다.

“같이.. 가시게요?”

그런데, 오라버니. 이때까지 내 일에는 아무 관심 없었으면서 갑자기? 나의 조그만 물음에 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때까지 너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가 조금 울적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같이 가줄래?”

쓰읍, 얼굴에 넘어가면 안된다. 정말 이상한 일이 다름없다. 원작에서 율리아의 오라버니인 레이던은 율리아에게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율리아가 죽을 위험에 처하자 더욱 방관한 쓰레기.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무슨 생각이세요?”

“아가씨!”

“...”

내가 팔장을 끼며 그를 쏘아보았다. 메리가 깜짝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외쳤다.

“메리, 잠깐만 나가 있어줘.”

“네, 아가씨..”

메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을 나갔다. 미안, 메리. 그런데 난 이 놈한테서 이유를 좀 들어야겠어.

“율리아.”

“지금까지 저에게 신경쓰신 적 없으셨잖아요. 아버님이 시키시던가요, 저에게 좀 더 잘해달라고?”

“율리아!”

“저는 아직 못 믿어요.”

가슴이 찌릿 하고 아파왔다. 원작 여주를 대신에 내가 항변하는 말들이였다. 당신은 원래의 율리아에게 사죄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내가 대신해서 받는 사과라도 있어야, 원래는 죽은 원작의 율리아의 한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후.. 미안하다, 율리아.”

그가 눈꼬리를 내렸다. 황실 기사단장으로서 항상 냉철하던 캐릭터가 여동생에게 무너지는 순간이였다.

늦었다, 라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레이던은 곧 울 것이라도 같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잘 해주신다면.”

나의 뭘 보고 이렇게 나오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에게 잘해주세요. 죽은 당신의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물론이지, 나의 하나뿐인 동생.”

그가 다가와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같이 나가자. 허락.

-

영지 안은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쳤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갑자기 잘해주시는 이유가 뭐에요? 아,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으음, 그게 우리 율리아가 요즘 들어서 조금 변한 것 같아서.”

움찔.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평범한 이 소설속의 사람인 그가 눈치챘을 리는 없다.

“하하, 그런가요?”

“그래. 원래는 예민해서인지, 시녀들한테도 자주 신경질을 내고, 가족 식사에서는 상을 엎은 적도 있었잖아. 그런데 요즘은 신경질은 무슨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변했잖아. 그래서일까, 조금씩 죄책감이 생기더라고.”

“아아.. 그냥요. 제가 너무 잘못 살아왔다 싶어서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웃었다.

“...그래, 못난아.”

“못난이 아니에요!”

거울 못 보셨나? 얼마나 예뻤는데! 여자가 설렐 정도였다고, 이 눈 삔 오라버니야.

투닥거리며 걷다보니 벌써 샵의 코앞이였다. 처음으로 세상에 저렇게 예쁘고도 아름다운 교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리창 안에 전시된 교복은, 그냥 예술 작품이였다.

“안녕하십니까, 레이어드 공녀님, 공자님. 어느 아카데미의 교복을 찾으십니까?”

샵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그러엄, 우리가 여기 영지 주인인걸. 아무리 수수하게 차려입어도 레이어드 가문 특징의 푸른 벽안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노블 아카데미의 교복을 찾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레이던이 먼저 말했다. 오, 내가 어느 아카데미 다닐지 알고는 있었구나! 장하다, 장해, 우리 오라버니!

“그게.. 노블 아카데미의 교복은 여기서 팔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이 우물쭈물 얘기하자 레이던이 눈썹을 슥 치켜세웠다.

“그럼 반입하면 되잖아.”

“노블 아카데미의 교복은 오직 중앙 시내에서만 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차가워진 레이던의 눈빛에 주인이 벌벌 떨면서 입을 땠다.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괜찮아. 그럼 오랜만에 시내 구경이나 하지, 뭐. 그렇지 오라버니?”

내가 대답 제대로 안하면 죽는다? 라는 표정으로 그를 향해 웃어보이자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제야 주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그래, 뭐! 오랜만에 시내나 돌아다녀 볼까나! 가다가 여주언니 만나면 더 좋고..!

시내 주변에는 여주언니가 사니까!



3
이번 화 신고 2020-01-29 10:59 | 조회 : 1,156 목록
작가의 말
사탕×하젤

이번엔 하젤입니당^^ 글솜씨가 해도해도 안느네요.. 슬프구나...어흑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