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 세계(가제)-2화

“창천, 무슨 짓이야. 내가 모르겠다고 했잖아. 바쁘니까 괜히 아는 척 말고 꺼져.”

“그러게 왜 쓸데없이 모르는 척이야. 귀찮게. 어차피 역자의 낙인이 남아있을 거면서.”

역자의 낙인. 모든 것의 정점, 그 정점에 서있는 자가 다스리는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을 이끌어나갈 신계의 이로써, 그의 뜻을 배반하거나, 이 세상에 해악이 되는 일이 되는 이에게 주어지는, 무슨 수를 써도 지울 수 없는 것.

“누누이 말하지만 난 그를 배신하지 않았어. 그가 내 뜻을 오해했을 뿐.”

난 짜증스레 미간을 구기며 말을 짓씹듯 뱉어내고는 다시 발을 놀렸다. 6시 10분. 이미 목표 시간은 넘어있었으나, 다행히도 교문이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넌 재판의 날에도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날 조롱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꺼지도록 해, 창천. 말했다시피 바쁘거든. 네 덕에 또다시 거주지를 옮겨야 할 테니 그 또한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고.”

나는 거의 뛰듯이 걸어 교문을 통과했다. 등교하는 이가 몇몇인가 있었고, 경비 아저씨도 있는데도 내 바로 옆의 검푸른 남자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창천, 몸을 숨길 생각이라면 내가 말을 걸지도 마. 혼자 이야기하는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저런,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서. 그리고 거주지를 옮길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는 이미 알고 계시거든.”

“그걸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나이도 됐을 텐데. 나보다 나이도 많이 먹은 영감탱이가.”

“그럼 존중이라도 좀 하지 그래. 나이도 많은 영감탱이한테 찍찍 반말이나 하는 꼬라지 하고는.”

“날 친우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은 너야.”

“그야 기꺼해야 한 세기 차이인데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까. 괜히 그런 걸로 토 달지 말고, 꺼져.”

“용건을 이야기할 틈을 안 주는군.”

“들을 필요 없는 얘기일 게 뻔하잖아.”

“네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의 말에 교실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뚝 그쳤다. 내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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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14 18:32 | 조회 : 822 목록
작가의 말
SSIqkf

시험공부를 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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