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 세계(가제)-3화

“창천, 말은 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낙인을 찍고 날 추방한 건 그야. 그리고 난 지금까지 모든 하늘인에게서 몸을 숨기며 살아왔지. 그런 나를, 복귀시킨다고? 농담도 정도껏이지.”

“청해, 벌써 만년 전 이야기잖아. 그도 마음이 변한 것이겠지. 그리고 신계에 문제가 생겼어. 뭐, 내 꼴을 보면 알겠지만.”

“창천, 내 나이가 십오만-148500살-이 조금 안 돼. 그 중 만 년을 오해 하나로 도망자에 반역자로 살았어. 네 꼬라지를 보기 전에 고개만 들어도 천계에 문제가 생긴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하지만, 돌아가지 않아. 절대로.”

“청해, 언제나 그랬듯 네게 선택권은 없어.”

그의 말에 나는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깐,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표정을 펴야만 했다.

“해미르! 넌 오늘도 일 등이냐?”

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뭐, 그렇지. 유현이 너도 일찍 왔네?”

‘해미르라, 바다의 용인가. 바다 그 자체이던 네게 붙기에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군.’

‘닥쳐.’

“오늘 1교시 과학 수행이잖아. 그거 엄청 빡세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준비 좀 해야지. 뭐, 보아하니 넌 준비를 마치고 정리나 하려는 것 같지만.”

그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꺼내 책상에 늘어놓은 것들을 눈으로 훑고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나는 어설프게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감추고 나를 구경하는 창천을 쏘아보았다.

‘빨리 꺼져.’

‘흥미롭군.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한 네가 착한 척이라도 하는 건가.’

‘성격 안 좋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가 말도 많지.’

내 비꼼에 그는 짧게 웃음을 흘렸고 나는 그에 눈을 더욱 부라릴 뿐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째려봐? 거기 누구 있어?”

내 시선에 의문을 느낀 유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창천이 보일 리가 없었다.

“아니. 그냥 모기가 있는 것 같아서. 안 잡으면 우리 반 애들 하루 종일 고생할 텐데.”
순식간에 모기로 취급 받은 그가 사납게 표정을 구겼지만 나는 태연했다.

“아, 그건 그렇네. 빨리 잡아야겠는데.”

“아냐 근데, 잘못 본 것 같아.”

“그럼 다행이고. 나도 슬슬 수행 준비나 해야겠다. 이따 보자.”

유현이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고, 나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꿋꿋이 수행준비를 이어나갔다.

‘청해, 바쁜 것은 이제 알겠다만 바다였던 자로써 그를 이해하고 천계로 돌아와줄 수는 없는 건가. 지금 상황이 많이 위급해.’

‘안 가. 꺼져. 날 하늘인 취급도 안 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필요하니까 나를 찾지.’

‘화가 난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닌데, 너와 내가 그의 곁을 오래 지켰던 것은 사실이잖아. 같은 이가 그토록 오래 하늘과 바다를 지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어. 넌 8만 년간 그의 바다였고, 나는 9만에 더해 아직까지도 하늘을 맡고 있지.’

‘오래 일한다고 자랑이라고 하려는 거라면 들을 생각 없어.’

말을 맺고 나는 그의 말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뭐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결국 포기한 것인지 8시가 다 되어서야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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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18 12:07 | 조회 : 861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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