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 세계(가제)-5화

“확실히 약해졌군. 초대의 물이 고작 이 정도라니.”

초대의 물. 신이 다른 이를 초대할 때 상대에게 건네주는 물로, 건네주는 것은 선택이지만, 만약 건네주게 되면 자신의 힘 일부가 상대에게 흘러 들어간다. 그렇기에 서로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힘은 전부 봉인 당한지 오래이니 어쩔 수 없지. 사실 네가 받아간 것도 봉인에서 아주 조금 새어나오는 것을 거의 다 받아간 거야.”

“그것 참 유감이군. 당분간 반역은 꿈도 못 꾸겠어.”

“또다시 역자의 낙인을 받을 생각은 없어. 신계로 돌아갈 생각은 더더욱 없고.”

내 말에 그는 아리다는 듯, 그러나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겠지. 그는 내가 레스, 나의 세계이던 이를 배반한 줄로만 알고 있으니.

“청해, 오랜 시간이 지났잖아. 그는 약해졌어. 아주 확연하게. 그가 무너지면 이 세계는 끝이야. 알고 있잖아. 네가, 그 누구보다 그를 소중히 여겼으니까.”

그래. 그랬으니 내가 반역이라고 몰릴만한 일을 치고 이러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당연한 것을. 그는 내 전부였어.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의 바다가 되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수많은 형제들을 두고 굳이 그 힘든 자리에 올라갈 리가 없잖아.”

그래. 그의 바다가 되기 위해, 형제들을 협박하고, 억누르고, 다스렸다. 오로지 그의 바다가 되기 위해서. 바다로 있으면서 처리해야 했던 수많은 일들에 짓눌려갈 때도, 오로지 그의 바다라는 사실만을 보고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래. 그렇게 그를 중히 여긴 너이니, 돌아와.”

“창천, 나를 내친 것은 그야. 그가 이 역자의 낙인을 거두지 않는 한 난 돌아가지 않고, 그는 낙인을 거두지 않겠지. 자신이 늘 옳은 선택만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이니.”

내 말을 부정할 수 없는지 그는 입을 다물고 표정을 굳혔다. 기실 그가 아직까지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감사해야 했다. 아직 하늘인 그가, 신계에서 쫓겨난 내게 화를 낸다면, 다시 생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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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31 20:17 | 조회 : 882 목록
작가의 말
SSIqkf

(사실 제 노트북에는 지금까지 올린 거의 배는 되는 양이 썩어있답니다. 원제는 바다의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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