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topped time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에렌의 앞에 있는 레이첼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마치 그린 듯한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과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푸른 머리카락. 그리고 마치 밤하늘에 외롭게 떠있는 별을 품은 하늘을 담은 듯한 보랏빛의 눈동자는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레이첼 포레스트를 플레타 제국의 기사단장으로 임한다."

레이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제 목숨을 전하께 바칩니다."

그 말을 듣고 실로 오랜만에 미소를 띄운 에렌은 레이첼에게 일어나라는 듯한 신호를 보낸 후 앞을 보았다.

"이제 모두들 물러가도록."

기사들이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머지 대신들이 밖으로 나가 우리 둘만 남자 에렌은 내 손을 꼭 잡았다.

"누나아.."

말 끝을 늘리며 물기젖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에렌을 보자 절로 웃음이 터졌다.

"무슨 일이야? 이젠 루시아가 밀린 업무를 해주지 않을거래?"

내 말에 에렌은 고갤 저었다.

"에렌은 누나가 이딴 기사단장 같은거 말고 내 옆에 있는게 좋은데 안돼?"

에 그니까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어릴때로 돌아가야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

5년전

정확히 내가 14살, 에렌이 11살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평소처럼 검을 들고 검술을 연습하던 도중, 정원 어딘가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공작가는 외부인이 쉽게 잠입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시가 삼엄했기에 어린아이여도 들어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걷다보니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애가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웃음이 나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딱 봐도 멍이든 손목에 내가 빤히 쳐다보자 아이는 손을 홱하고 숨겼다.

하지만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렴, 마침 메리엔다 시간이거든. 가서 차 마실까?"

내 말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사슴같은 눈망울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몇분간 눈을 맞추자 아이는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러나 어린아이라 그런지 역시 걸음이 느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등에 업고 살짝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

이미 파티셰가 준비해둔 다과상을 본 아이가 의자에 앉았다.

딱히 단걸 좋아하지 않는 나여서 굳이 메리엔다를 챙기지 않았지만 왠지 오늘따라 챙기고 싶더라니.

엄마처럼 미소를 짓고 아이가 먹는걸 보았다.

능숙하게 찻잔을 들어 우아하게 마시는 아이를 보자 더욱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얜 누구고 어떻게 우리 저택에 들어온거람..

옷을 한번 쉭 훑어보자 분명 평민가 아이는 아니였다.

대공가의 아이인가? 아니면 자작가?

그렇게 의문을 품고 사과를 한입 배어 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를 먹다가 시선이 느껴져 그 시선의 주인인 아이를 보자 아이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저기 여기, 혹시... 포레스트 공작가...인가요...?"

그 말에 내가 대충 고갤 끄덕이자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 그... 저... 그럼 포레스트 공작가의 후계자이신 레이첼 포레스트 영애셨어요?"

아이는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응. 근데?"

내가 뭐가 문제냐는 듯 쳐다보자 아이가 말했다.

"늦었지만 정식으로 인사 드릴게요. 저는 에렌 디 에리카르. 플레타 제국의 2황자 입니다."

그 말에 먹던 사과를 떨어트려 버렸다.

"ㅁ, 뭐?!"

내가 당황해서 자세를 고쳐잡자 에렌이 말했다.

"그게 원래는 형님이랑 같이 궁 밖으로 몰래 나왔었는데 저는 길을 잃었는데.. 뭔가 아는 저택이 보여서 앞에 섰더니 들여보내 주더라고요.. 근데 뛰다가 형님이랑 떨어져버려서 울고 있었는데 영애가 이리로 데려와 주셨달까요..?"

그 말에 내가 지금까지 2황자한테 반말은 기본이고 손까지 댔다 이 말이야..?

오늘 내 목 날아가는 날인가..

플레타 제국은 2황자의 안전을 무척 신경 쓰는데다 차기 황제 후보라는 이유로 털끝 하나라도 건들였다가는 목이 날아가는게 기본이었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하자 에렌이 말했다.

"그 저는 좋았어요. 반말 하시고.. 그러시던거.."

볼이 붉어져서는 시선을 못 맞추는 에렌의 모습에 미소가 띄워졌다.

"하지만 저는 그냥 공작가의 여식일 뿐이에요. 반말을 해야 하는건 오히려 황자님이시고요."

내 말에 에렌이 손을 만지작 거리다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럼 제 앞에서만 그러시면 안될까요?"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거절하기 힘들어져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에렌이 말했다.

"그럼 우리 친해진거 맞죠?"

그 순수한 모습에 웃음이 나와 내가 말했다.

"그럼. 우린 친해진거 맞아."

내 말에 환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내려와 내게 폴짝 폴짝 뛰어온 에렌은 그대로 내 앞에 섰다.

"친구인거죠?"

내가 그 말에 머릴 쓰담으며 말했다.

"응."

****

그렇게 에렌과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쭉 친하게 지내는 중이다.

내 앞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마냥 순하고 착한 에렌이지만 오히려 공석에서는 그야 말로 냉정하다 못해 공기가 차가운 동굴에 있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 말과 지금 이 상황이 매치가 되지 않아 피식 웃자 에렌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누구 생각했어?"

그 말에 내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글쎄, 비밀이랄까."

내 말에 에렌은 내 손을 쥐고 손에 있던 힘을 주며 말한다.

"혹시 연인이라도 생긴거야? 그런거야? 내가 있는데?"

그렇다.

에렌은 내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 별로 신경을 안 쓰지만 내가 남자와 교제를 한다고 짚으면 그게 누군지, 아니면 자신이 잘못 안건지 끝까지 알아내려 한다.

자신도 추한 소유욕인 걸 안다면서 자제하려 노력한다곤 하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문제 중에 하나였다.

"네 생각 했었어, 네 생각."

내가 자신을 생각했다고 2번정도 강조해서 말하자 그제서야 손에 힘을 풀며 말했다.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어. 걱정했잖아."

이 상황만 미루어 보면 내가 에렌과 교제하는 줄 알겠다.

하지만 절대로 난 에렌과 교제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렌이 멋대로 내게 좋아한다 말해 오는건데 왜인지 사교계에선 에렌과 내가 교제 중이여서 같이 붙어다닌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대한 공석에선 거리를 둔다지만 이 막무가내 황자는 내 말을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정말 순수해서 공석에서도 내게 미소를 지으며 오는건진 알 수가 없다.

****

집무실로 가겠다며 가버린 에렌.

시간이 남아 황궁 안에 있는 정원을 산책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루시아?"

내가 이름을 부르고 다가가자 루시아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이내 살풋 웃으며 내게 말한다.

"아, 레이."

루시아 디 에리카르.

1황자였지만 2황자인 에렌에게 밀려 에렌의 재상이 된 에렌의 형이다.

"기사단장이 됬다며? 축하해."

생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루시아.

"아 고마워. 역시 너랑 검술 연습해서 이 자리까지 온 걸지도."

내 말에 쑥스러운듯 고갤 돌리는 루시아는 멋쩍게 웃었다.

"아냐 네게 재능이 있었던거지."

그리고는 보라색의 꽃다발을 건네고는 말한다.

"앞으로도 에렌을 잘 지켜줘."

0
이번 화 신고 2020-06-21 09:55 | 조회 : 663 목록
작가의 말
이든씨

네이버에서 그냥 취미로 쓰는걸 그대로 옮겨 온거에요 :D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