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얼마전 나는 나의 생물학적 모친에 해당하는 이를 죽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의 생물학적 모친은 나를 끔찍하게 생각했다. 끔찍하게 아꼈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나를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끔찍한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못이 아니라고 답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끔찍한 걸 죽이려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끔찍한 게 벌레같은 것이였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벌레 좀 죽였다고 뭐라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나는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었고 사람을 죽이는 건 문제가 아주 많다. 이렇게 말하는 것 치곤 나도 많은 사람을 죽였고, 또 나의 생물학적 모친을 죽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간을 죽이는 건 문제가 아주 많은 일이다.

어쨌든 나는 죽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물학적 모친을 고이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천사들과 손잡고 눈누난나 노실 수 있게 말이다.

아무튼 지금 이 곳은 나의 생물학적 모친의 장례식장이다. 아무리 그래도 장례식은 치뤄줘야 되지 않겠는가.

날 죽이려 했어도 그녀는 나의 어머니..이기는 개뿔. 그녀는 공작이었다. 이 나라에 하나뿐인 공작. 그런 이의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둘째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부하들에게는 좋은 상사였고, 사용인들에게는 좋은 고용주였으며, 또 그녀의 친우들에게 역시 그녀는 좋은 친우였다. 나에겐 아니였지만 프로키온에게는 좋은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이곳은 그녀의 장례식장이다.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싶다면 그 사람의 장례식을 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없다고? 그럼 지금부터 생겼다.

뭐 어쨌든 그녀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는 지금 이곳은 통곡소리로 가득했다. 평소 그녀와 친분이 있었던 귀족들 뿐만 아니라 영지민들과 사용인들의 울음소리도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만약 내가 좋은 공작이, 좋은 영주가 된다면 나의 장례식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울어줄까.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절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테니까. 안 그러면 부모라는 작자가 날 이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았겠지.

나는 존나게 끔찍한 놈이다.

지금의 나는 그나마 유능하기라도 하지 어린땐 끔찍하고 불길하기 짝이없는데다 무능하기까지 했다. 몬스터들도 새끼 때에는 귀엽다던데 나는 귀엽지도 않았다.

나는 어릴 때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끔찍한 놈이라서 대부분이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밥 같은 것도 나 혼자 챙겨야 했고 빨래나 그런 것도 내가 했다. 또 손님이 올 때가 아니면 품에 맞지도 않는 옷을 대충 껴입고 다녀야 했다.

내 생물학적 모친, 그러니까 공작은 나만 보면 미친듯이 날뛰었고 그래서 난 공작의 눈에 띄지 않게끔 내 방이나 도서관, 연무장 구석같은 곳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느는 건 잡지식과 검술 실력뿐이었다.

내가 검을 쓴다는 것을 알게된 공작이 내가 15살이 되자 마자 전쟁터로 보내버리긴 했지만 그때는 버틸만 했다. 나름 공작의 아들이라고 대우는 꽤 해줬으니까.

세간의 기준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좋은 대우였다. 옷도 제대로된 걸 입었고 먹을 것도 내가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잠자리도 푹신한 침대였고 말이다.

우습게도 전쟁터에서 있는 게 공작저에 있는 것 보다 더 편했다.

당시 전쟁터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였지만 15살짜리를 최전방으로 내몰만큼 안 좋은 것은 아니였다. 나는 그나마 안전한 후방에서 있었다.

가끔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내가 있는 곳 근처까지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 주위에 있던 기사들이 금방 처리를 했다. 사람이 죽는 걸 눈앞에서 보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버틸만 했다.

내 첫 살인은 내가 전쟁터에 온지 1개월 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였다. 본대가 서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별동대를 보내 후방을 친 것이다. 전형적인 양동작전이며 빈집털이였다.

정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온 기습이였던 탓에 기사 두어명이 별 대응도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뜨거운 피가 내 전신을 적시고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 병사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검을 뽑아 들어 그 병사의 목을 베었다. 검이 목에 박혔다. 사람 목은 은근히 단단하고 또 질겨서 한번에 목을 벤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계적으로 목을 내리찍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별동대가 다 처리 되었는지 사람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시선을 내려 내가 죽인 병사를 쳐다봤다. 끔찍하게 난도질 되어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손에 아까 느꼈던 끔찍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

어떤 사람이 죽은 병사의 시체에서 투구를 벗겨냈다. 아직 앳된 얼굴이었다. 나보다 한두살은 더 먹었을까한.

그 사람을 죽인 것은 나였다. 내가 그 사람을 죽였다.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날 밤 꿈에는 그 병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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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05 15:00 | 조회 : 66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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