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노아 아렌트

주의: 수위X(ㅠ), 잔인O

<트리스 시점>

처음부터 노예였던건 아니었다. 그 애완샵에서 늑인이 했던 말들은 전부 뻥이다.

나는, 마족들이 부르길 ''야생 인간''이었다. 이름도 ''트리스'' 따위가 아니라 ''노아 아렌트''라는 제대로 된 이름과 성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그 년 때문이다. 섀넌 알리네스.

아니, 그게 그녀의 진짜 이름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속으로는 진짜였으면 빌고 있다. 그래야 찾아서 죽이기 쉬울테니까.

우리 가족은 도적이었다. 다른 인간들한테서 빼앗고, 죽이고, 살아남는 도적. 물론 처음부터 도적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른 도적을 만나 전부 빼앗겨서 다른 가족의 음식을 조금 훔치다가, 어쩌다 죽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일부러 죽인 것도 아니었다.

물론 부모님은 싫어하셨다. 아버지는 계속 은신처에 고개를 숙이고 계시고,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채 굶주린 배만을 움켜쥐고 있었다. 의외로 먼저 결심하신건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밖에 나가 계속해서 음식을 가져오셨다. 음식, 옷, 생필품.... 어머니가 도적질을 하고 계셨다는건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을거다. 어머니는 항상 칼을 들고 나가서 피범벅이 되어 돌아오셨으니까.

그런 생활이 계속되고, 결국 아빠와 나도 도적질에 합류했다. 물론 나는 자주 나가진 않았다. 동생이 아무것도 모르도록 지켜봐야 하니까. 하지만 큰 가족을 털 때나, 인간이 아닌 마족을 털 때면 나를 데려가셨다. 자랑스럽진 않지만, 몰래 다가가 사람 하나 죽이는 건 내가 제일....




....잘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살인만 했고, 최소한의 살인만 했다. 살려달라고 한 사람들은 최대한 살려줬다. 우리도 이렇게까지 인간성을 상실하고 싶지 않았다. 식사는 항상 침묵속에 이루어져 단체로 우울증에 걸릴 기세였다.

섀넌 알리네스는 우리 가족에게 접근해 자신을 받아달라고 말했다. 자신은 마녀 릴리스 때문에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자매도 없다며, 제발 같이 살게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거절했다. 아무것도 몰라 보이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까지 이 도적질에 가담하게 할 수는 없었고, 우리 또한 최소한으로 도적질을 했기에 그녀까지 먹여 살릴 형편은 안 되었다.

거절하자, 그녀는 말했다.

"그럼 오늘 하루만 재워주기라도 해주세요, 제발요..."

우리 가족은 망설이다 알겠다고 했고, 그녀는 저녁 시간때 사라졌다가 밤에 다시 나타나 우리 가족의 이불을 함께 썼다.

모두가 잠들었을 무렵,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옆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어머니는 피가 바싹 마른채로 싸늘한, 쭈글쭈글해진 주검이 되어계셨다. 어머니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꽤 빨리 정신을 차리고 근처의 나무에 올라가 숨을 죽였다.

아버지, 다음 동생의 비명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나는 너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밤이라 나무 위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쩝쩝 소리와 함께, 분명 시체 뜯는 소리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드득. 찌이이익.

마치 돼지갈비 뜯어먹듯,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그 혐오스러운 뱀파이어는 내 가족의 시체를 빨아먹은 것도 모자라 씹어먹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이 다가왔고, 해가 뜨기 시작하며 나무 밑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뼈투성이이지만 피는 없는, 마치 오래된 무덤이 파헤쳐진 듯한 장면 한가운데에는 그녀가 서있었다.

섀넌 알리네스.

그녀는 해가 뜨자 하늘을 잠깐 보더니 고개를 무서운 속도로 휙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이 집 네 명이었지?"

그녀는 미친년처럼 머리를 뒤로 제껴가며 폭소하더니, 웃음 때문에 나온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그 12글자를 생생히 기억한다. 콕 박히듯이 내 귀를 찌른 그 글자들.

"재워주고 먹여준거, 참 고맙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부모님과 동생의 뼈를 나무 위에서 바라만 보던 나는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다. 굶어 죽을지, 떨어져 죽을지. 그런데 갑자기, 그 섀넌이라는 뱀파이어가 신고했는지 늑인들과 악마들이 현장에 들이닥치더니 나무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있는 나무는 단번에 발견당했고, 그대로 잡혀서 노예 시장에 끌려갔다.

노예 시장에 끌려가고 난 후, 나는 곧바로 노예 훈련장에 던져졌다. 그곳은 노예들이 성노예, 노동용 노예, 애완인간 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보면 전인교육을 받고 있었다. 역겨웠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필사적으로 주인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배웠고, 노동을 어떻게 하면 오래 할 수 있는지 배웠으며, 애완인간으로서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벌은 상처가 나지 않는 종류의 벌만 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리벤 레저네트. 그는 연금술을 연구하는 악마에게 팔려갔다가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영구 염색당하는 일을 겪은 뒤 탈출했다가 잡혀온 인간이었다. 그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리벤이 더 빨리) 그곳으로 던져진거였고, 그는 내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며 친구가 되어주었다.

노예 훈련이 먼저 끝난 그는 당연히 먼저 끌려갔고, 나는 나중에 끌려가 ''노예 시장의 별미''라 불리는 노예 경매장에서 다른 늑인에게 팔렸다. 그가 바로 애완샵 주인이었다.

그 애완샵에서는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대신 수치스러웠다. 24시간 중 19시간은 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그 작은 케이지 안에서 지냈다. 나머지 5시간 중 3시간동안은 쳇바퀴 굴리듯 런닝머신을 뛰어야했고, 2시간은 1시간씩 아침,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앉아서 사료를 먹었다. 저녁은 없었다. 아, 참고로 사료는 말그대로 영양분만 넣어놓은 갈색 개사료였다.

그렇게 4개월을 있다 보니 별의별 미친놈을 다 봤지만 날 사가는 정신병자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신병자가 5개월을 더 있다 보니 나타났다. 로미니티 델 바이드.

사실 난, 애완샵의 케이지에서 생활하면서 말도 못하고, 정말 말 그대로 애완용인 인간들이 과반수인 인간들과 지내면서 내 인생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애완샵으로 팔려올 때 했던 "날 사가는 놈은 정신병자 취급 하면서 ㅈㄴ 개겨야지"라는 다짐을 묻어두고 로미니티에게 순순히 복종했던 것이다. 내가 말해주기 싫어서 이름을 말해주지 않자 그가 나에게 ''트리스''라는 이름을 줬을 때도, 나를 트렁크에 처넣었을때도, 날 범했을때도 날 예속으로 삼지 않는 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섹스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건 사실이었다.

내가 태어난 세상은 인간이 야동보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 뱀파이어 밑에서 적당히 비위나 맞춰주다가, 내 피 다 빨아서 죽일 것 같으면, 섀넌 새끼가 내 가족에게 그랬듯이 날 죽이려 한다면, 그 때 자살할거라고.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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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25 02:16 | 조회 : 9,152 목록
작가의 말
Xe

저도 야한거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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