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 없음

강당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서 있다.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남자, 민속촌에서나 쓸 법한 탈을 쓴 남자. 아이들이나 쓸 파워레인져 가면을 쓴 여자. 학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 성별을 알 수 없게 검은 칠 한 사람... 숱하디 숱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강당에 서 있었다. 이들 모두가 특별해 보였다. 아니, 특이해 보였다. 그 누구도 이들이 특이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신기했다.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모이니 군중이 되었다. 여느 군중과 다를 바가 없는 군중이 되었다.

"반갑다. 제군들."

음산한 목소리가 그들을 반긴다. 강당에 홀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대리석 바닥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이건 간에 굉장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강당의 정면에 한 남자가 소리없이 나타나 있다.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은 생각보다 왜소하다. 남자는검은 맨투맨에 트레이닝 바지와 슬리퍼를 착용하고 있다. 가면은 턱을 가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부분은 살짝 얽어 있다. 남자는 머리카락을 곧게 세워 왔다.

"아마 내 별명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내가 더블건맨이다."

강당이 술렁였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 이름은 악몽이다. 그는 참혹한 살인자요. 원칙이라고는 없는 영웅이며, 악의 없는 악당이었다. 그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그의 무질서함이었다. 그는 원한다면 시민도 죽였고, 악당을 살렸다. 악당의 편을 들기도 하고, 외국을 뒤집어엎기도 했다. 그는 가장 강한 사람이다. 모두가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반대로 의구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더블건맨은 미국과의 일대 격전을 막아낸 가장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저렇게 왜소할 리가 있는가.

"알고 있다시피 난 이 이름이 정말 싫다. 창피하거든. 유치하기도 하고."

더블건맨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모두가 긴장한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제군들은 모두 그런 이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블건맨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단발머리의 여성에게서 멈췄다. 여자는 짧은 치마와 달라붙는 윗도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무언가의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 총알을 막아냈다.

"쉐도우 마그넷."

더블건맨이 총을 집어넣으며 별명을 불렀다. 그는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염력 능력자."

다시 한 번 강당이 술렁였다.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한바탕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더블건맨은 그에 상관없이 말을 계속했다.

"...지만 챌린지 보고서에는 그 내용은 쏙 빼고 넣었더군."

여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뒤틀린다. 그러나 그녀는 더블건맨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애시당초 그의 무기는 총이다. 물건에 접촉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믿은 탓이었다. 더블건맨은 그 사실을 안다. 그는 총을 다시 들었다.

"쉐도우 마그넷. 30세. S사 회사원 정민지. 성추행을 시도하는 과장을 능력으로 막은 횟수 3회. 아무도 안 볼 때 편법으로 염력을 사용한 횟수 14,867회. 그리고..."

더블건맨이 총을 들고는 다시 그녀를 향해 쏘았다.

"염력으로 무고한 시민을 죽인 횟수. 17회."

총알은 쉐도우 마그넷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언도될 수 있는 죄목. 사형."

총알의 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불은 그대로 쉐도우 마그넷의 얼굴을 집어삼킨다. 향년 30세의 나이다. 다른 군중들은 겁에 질렸다. 상대는 초능력자였다. 그런데 초능력자를 그대로 죽여 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응용으로.

애초 총알에는 휘발성 화약 대신 촉매재가 들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충격을 받으면서 화력을 점화시킨 것이고, 그대로 불을 뿜었을 것이다. 그러나 쉐도우마그넷을 비롯한 모두가 그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블건맨이라는 남자는 이름에 비해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죽일 이유야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제군들은 비교적 정당하다. 나는 여기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회원을 죽였다. 본보기다. 약간의 강함을 토대로 내게 덤비지 마라. 병아리가 독수리를 보고 날아드는 꼴이다."

군중이 수군거린다. 그렇지만 순간 모두 더블건맨을 쳐다보더니, 다시 조용해진다.

"좋아. 챌린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

더블건맨은 두 팔을 벌렸다.

"이곳은 일종의 회사다. 정확히 말하면 공사지. 우린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고 여기에 서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국민의 안녕에 기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의 공무원과는 다르다. 보통의 공무원들은 그냥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주게 되어 있지. 그렇지만 여긴 기본이 성과급이다. 어떠한 성과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준다. 기본적으로 등록된 악당을 잡으면 성과를 받지만, 등록되지 않더라도 증명될 수 있는 악당을 잡으면 포인트를 준다. 이 포인트가 가장 높은 사람은 달의 챌린저가 되고. 그때부터 종신 연금을 받게 된다. 연간 억대의 종신 연봉이지."

군중은 잠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더블건맨이 손을 내리자마자 다시 침묵한다.

"그리고 이 억대의 연봉은 중첩이 된다. 6개월 간 챌린저의 위치에 있으면 그 두 배의 연금을 받게 된다. 12개월 간 챌린저에 있으면 네 배의 연금을 받는다. 그렇게 계속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고. 또 은퇴 시에는 최고의 경호를 보장받는다."

더블건맨은 잠깐 마이크 옆으로 비킨다.

"챌린저가 되기 위한 규칙은 간단하다. 살인하지 않은 상태로, 국민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선사하면 된다. 그것만 지키면 된다. 제군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한 시간씩. 챌린지에서 주최하는 교육을 듣도록. 별로 쓸모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가끔 중요한 규칙이나 공지사항. 새로운 악당에 대한 정보와 그에 상응하는 포인트가 올라갈 때가 있다."

더블건맨은 잠깐 손을 기울여 물을 마신다.

"그리고, 챌린지는 범국가적 단체다. 주최는 대한민국이지만, UN산하국에서는 모두 활동이 가능하다. 그래서 여러분의 옆에 국적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 대한 추가 배려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주최국 위주로 돌아간다. 그러나 포인트는 공정하니 이의 없길 바란다. 그럼. 여러분의 숙소가 옆 건물에 배치되어 있다. 밖에 나가면 죽음날개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모두 그에게서 자신의 방 번호를 받아가도록. 이상."

군중은 뿔뿔히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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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06 00:10 | 조회 : 1,377 목록
작가의 말
제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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