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탄생일(8)




"아, 비루 사용법 말씀하시는 거군요."



카인은 막 훈련을 끝내고 왔는 지 땀에 젖어 피부에 붙은 짙은 보랏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하나로 정리해 묶으며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에 비해 지친 기색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장소, 상황에서나 신력을 주입한다고 발현되는 게 아닙니다. 검을 쓰는 이들 중 꽤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은 검기를 쓸 수 있죠? 황제폐하나 재상님도 그렇고요."



카인은 비루의 정중앙에 새겨진 돌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설명을 이었다.



"그것처럼 검무를 추실 때에도 검기, 검의 흐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에 정확히 신력을 주입해야 신력이 발현됩니다. 이 돌기를 그 순간에 동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양을 컨트롤 할 수 있죠."



리안은 뿌옇게 흐리던 기억 속에서 카인이 말한 요점이 선명히 떠오르는 것을 느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검기가 나올 정도로 강한 에너지가 있을 때만 신력이 발현된다 이거구나."



카인은 곧잘 이해하는 리안을 바라보며 작게 웃음 짓고는 돌기를 가장 편하게 돌릴 수 있는 손가락의 중심으로 비루를 당겨 주었다. 그리고 반뼘 즈음 리안에게서 떨어져 미차드의 옆으로 가서 섰다.



"설명 한 번에 되겠어? 저 녀석이 천재도 아니고."



미차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음료를 얼음 소리가 울릴 정도로 들이켰다. 카인은 그에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 천재이실겁니다."



리안은 심호흡을 하곤 다시 검의 손잡이를 굳게 움켜 쥐었다. 확실히 아까보단 비루와 검을 동시에 잡고 있는 것이 편했다. 늘 같이 훈련했던 카인이기에 리안의 손잡이를 쥐는 특유의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미차드의 손에서 음료를 담아둔 유리잔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










그 날 저녁. 리안은 하루동안 꽤 많은 양의 신력을 소비한 터라, 발끝부터 힘이 빠짐을 느끼곤 거대한 욕조의 벽에 기대어 몸을 담구었다. 가슴팍까지 오는 따듯한 물이 차오르자 피로가 뭉실뭉실 몰려왔다.


그래도 성공했다. 그 이후부턴 감이 좋아져선지 몇 번을 해도 발현이 쉽게 되었다. 그것이 기뻐 더욱 무리하게 연습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마인이 좋아할 거라 믿는다.




"빨리 보고 싶네. 마인이 기뻐하는 얼굴을."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랄 수도 있다. 아니면 어색해하려나. 늘 짓던 차가운 무표정 대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듯하게 이름을 불러줄까. 절로 설레어 죄어오는 가슴을 어쩔 순 없었다.

자신과 이런 소녀같은 두근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를 억지로 없애진 않았다.




몇 분을 물 속에서 턱까지 잠그고 혼자 설레하다, 꽤 답답하다고 느껴질 즈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순간.










-쿵




리안은 급격히 찾아온 현기증에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넘어졌다. 언제부터 빛이 나고 있었는지 모를 목걸이에선 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던 푸른 빛이 아닌 경고를 알리는 듯한 붉은 빛이 퍼져 갔다.


갑자기 물 속이 붉게 물들어 피 속에 잠긴 듯한 착각까지 일으켜질 정도였다. 리안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늑했던 물속이 목을 죄어옴을 느끼고 욕조 벽을 잡곤 서둘러 상반신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온 몸이 터질 것 처럼 부풀어 오른 느낌에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심장을 옥죄며 신력이 몸 속을 무질서하게 맴돌았다.




"허억. 허억."



리안은 겨우 거친 숨을 토해내곤 욕실 바닥으로 널부러졌다. 잊고 있었다. 그동안은 잠잠했던터라, 간과없이 넘겼다. 바보처럼 신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상황에 들떠 마구잡이로 썼는데 결국 컨트롤을 잃고 몸을 잡아 먹어 가질 않나.


목걸이의 보석이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욕실을 잠식하던 붉은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봉인이 깨지며, 리안의 몸 속이 붕괴되려던 때에 에르아나가 나타났다.








에르아나는 욕실을 가득 매운 리안의 신력을 하나로 모았다. 그녀의 늘 미소를 짓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리안은 정신을 잃으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리안은 코를 찌를는 향긋한 꽃내음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허리를 일으켰다. 머리 속이 그저 멍했다.




"이제 아픈 건 어떠십니까."



옆에서 들리는 사근사근한 부드러운 목소리에 리안은 자연스럽게 '괜찮다-' 라 답하며, 물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르아나가 평소보단 지친 기색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언제부터 신력이 몸을 좀먹어 가기 시작했나요."



에르아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곧게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깊은 눈빛에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 리안은 그녀의 앞으로 가 앉았다.



"어렸을 때, 폭주를 했을 때부터 늘 예고없이 신력이 팽창하곤 했습니다만..최근 괜찮다가 왜 갑자기."



리안은 당연히 목에 있어야 할 목걸이의 여부를 찾듯 목 얹저리에 손을 올려 놓다가 내렸다. 에르아나가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신도 너무하다. 그녀는 그녀의 신력으로 다른 이의 운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안타까웠다. 신력을 거두어 다시금 리안의 몸 속에 가두려 했을 때야 알아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잠시 고통이 멎었을 때가 있었죠. 그리고 오늘 신력을 무리해서 썼구요. 그때 신력이 조금이나마 빠져나왔을 때 봉인을 했었어야 했습니다. 이젠 스스로 봉인을 깰 정도로 에너지가 커졌어요."




리안은 뻣뻣해진 손길을 멈추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거짓이길.





"이대로 가면, 당신은 죽습니다. 신력이 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 압력으로 내부가 제 힘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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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5 23:01 | 조회 : 3,014 목록
작가의 말
렌테

흐어어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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