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깨다.





마인은 리안의 몸을 끌어 안았다. 추욱 쳐져서 그대로 그의 팔뚝에 몸을 기댄 리안은, 희미한 정신을 붙들어가며 흐릿한 시선으로 허공을 배회하다 그를 바라보았다.



"마인-."


"눈을 떴나. 몸은 어때."


"하핫, 좋지는 않네요.."




리안의 금방이라도 각혈할 듯한 쉰 목소리에 마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카인은 뒤에서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 무엇을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했으나 꾸욱 다물고는 복도를 지나쳐 걸어갔다. 메리나는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듯 쪼르르 빠른 걸음으로 뒤쫒아갔다. 마인의 투박한 손이 리안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조금만 기다려. 널 살릴 테니까."


"ㅡ. 마인, 탄생일에 이렇게 걱정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신경쓸 것 없다. 이미 선물은 받았으니까."



리안은 당연하다는 듯 나긋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마인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기절하듯 잠에 빠져 들었다. 마인은 다시금 힘이 빠지는 리안의 몸을 침대에 뉘어주며, 에르아나에게 눈짓을 했다. 콘들은 자리를 비켜, 벽 귀퉁이에 팔짱을 끼고 기대었다. 에르아나의 손에서 점차 하얀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리안의 몸을 둥글게 감싼다.


빛이 닿는 육체 부분마다 검게 빠져나오던 독소가 말끔히 사라졌다. 빛의 아지랑이는 곧 살짝 벌려진 리안의 입으로 들어가 목을 타고 내부를 돌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푸른빛과 함께 섞여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과 동시에 리안의 몸에 비정상적인 힘줄이 돋아나며, 그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평소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마지막 자존심인 양 절대로 신음소리를 내지 않던 리안이었기에, 이 끔직한 선율의 비명은 마인의 표정을 굳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리안의 육체가 금방이라도 빵빵하게 부풀어 터질 것 처럼 솟아 올랐다. 곧이어 푸른빛의 뭉텅이가 하얀빛에 끌려 솟아오르더니 엄청난 크기의 구-그 크기에 눌려 천장에 금이 갈 정도였다-로 응집되었다.



"엄청난 크기다-.."


콘들이 왼쪽 눈에 씌여진 안경을 고쳐 쓰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통 신력의 크기를 이처럼 덩어리로 나타내자면, 대부분의 신녀의 것은 사람의 얼굴 정도의 크기가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리안의 것은 어떠한가. 충분히 응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넓고 높기로 소문난 가리어드의 궁 내부 방을 가득 메우지 않았는가. 이 정도 설명 만으로도 신력의 에너지의 양은 대부분 예상을 할 것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이게 많은 신력의 양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으니, 당연히 그것을 담는 육체에 무리가 갈 수 밖에."


마인은 신음을 내뱉듯 그것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에르아나는 손을 뻗어 하얀 빛을 날카롭게 모아 그 구의 밑 부분에 리안의 육체와 연결된 아지랑이 같은 푸른 줄을 끊어내었다. -이를테면 탯줄을 잘라내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랄까.-


그리고 리안의 육체와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졌을 때, 그녀가 구에 손을 집어넣었다. 에르아나의 고운 얼굴이 찡그려졌다. 구 안은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 그녀가 신력으로 손을 무장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피부가 찢겨나갔을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어디의 고유 언어인 지 알아듣기 어려운 것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과 함께 하얀 빛은 마치 철쇄처럼 구를 옥죄더니 곧이어 구를 완전히 봉하였다. 순간, 하얀 눈부신 빛이 방을 감쌌다. 모두가 눈을 질끈 감고, 곧 다시 빛이 사라졌을 땐 리안에게선 더 이상 푸른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















"뭐? 그래서 이드를 죽이지 못했다고?"

"죽이지 '못'한게 아니라 죽이지 '않'은 거다. 자신의 말로는 1대1의 싸움에서 졌으니 가리어드와 공식적으로 교류할 것과, 리안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항을 체결하겠다더군. 그래도 한 나라의 황제이니 그렇게까지 하는데 죽일 필요는 없었다."



콘들은 여유롭게 일전의 일을 설명하는 마인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재상인 저에게 지금껏 이런 일을 말을 안하다니. 갑작스럽게 교역을 다루는 회의를 개최하자는 이드의 제안에 깜작 놀라서 마인에게 달려온 콘들이었건만,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게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일년이 다 지나가는 때 말할 수가 있냐구?! 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시끄럽네. 반년이 이제 지나가는 데, 무슨 일년이야. 흥분하지 말고 가서 잡무나 봐라, 콘들."




콘들은 끄응 거리며 분노를 삭히기 위해 가슴을 탕탕 쳤다.


리안의 신력을 완전히 몸에서 제거해 빼낸 지,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리안은 깨지 못했다. 신력을 가졌던 이는, 육체가 그 자체의 힘이 아닌. 주로 신력의 힘을 받아 '인간 이상'의 힘을 끌어내고 있기에 온 전신이 신력에 맞추어 변화한다. 그 말인 즉, 육체의 하나의 구성을 한다는 소리이다. 그런데 리안의 육체의 힘을 담당하는 그 막대한 양의 신력을 아예 한순간에 소멸시켜 버렸으니, 육체에 또 다른 의미로 심각한 영향이 갔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손가락부터 괴멸되어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그 이후로 계속 식물인간 상태로 리안은 마인의 침대에 눕혀져 있다. 처음엔 그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어 하던 마인 또한, 어느덧 여유롭게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조바심 내어 봤자, 리안은 깨지 않는다. 그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깨달은 그였기에 평소보다 더욱 다른 잡무에 집중했다.


탄생일은 결국 그냥저냥 마무리가 되었다. 애초에 그런 행사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마인이었기에, 귀찮다는 명목으로 귀족들은 대충 내보냈다. 그에 따른 뒷 영향은 결국 콘들이 다 담당하게 되었다.



메리나는 어느덧 시녀 중에서도 전담 시녀에 승급되어 리안 뿐 아닌, 마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직위로 되었으며 카인 또한 기사단장의 눈에 들어 제 주인을 정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될 이를 대공작가 8명의 자제 중에서 선택하지 않았고, 현재는 후임들을 가르치는 코치와도 같은 역할로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에르아나는 신궁에서 리안의 신력을 소멸시키느라 많은 기력을 쇠진했기에 회복에 열임하고 있었다. 미차드는 정신을 잃은 리안 대신, 카인과 함께 훈련을 했으며 제 스스로가 훈륭한 신력을 구축했느니라 자신있게 말하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재능이 있었던 탓도 크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힘들어하는 리안을 보고, 이드를 1대1의 결투로 이긴 마인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아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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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님, 리안님이랑 어울리는 꽃을 화단에서 꺾어왔어요-."



메리나가 싱글벙글하며 검은 드레스 자락 한구석에 조그맣게 넣어둔 꽃 3송이를 꺼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꽃을 늘 하던 것처럼 리안의 머리맡에 두지 못했다.



꽃잎이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황제 폐하ㅡ! 리안님이,




눈을 떴어요..!!"




메리나는 서둘러 방문을 닫지도 않은 채 밖으로 뛰쳐 나갔다.







이것이 그들의 이야기에 마지막을 향하는 또 다른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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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19 02:11 | 조회 : 3,097 목록
작가의 말
렌테

원래는 마인이 해독제 대신의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스토리가 급박한 관계로(소곤 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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