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질척질척한 빗속에서
맨발로 흙탕물을 밟으며 뛰는 소녀의 발걸음은 빨라져 간다.

흙과 섞인 빗물의 알싸한 냄새가 검게 변한 저녁하늘을 가득히 뒤덮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골목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빗물의 냄새가 섞여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쓰레기통 위엔 검은 고양이들이 마치 제자리인냥
그 커다랗고 냄새나는 통을 하나씩 꿰어 차고 있었다.

소녀의 본디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든 원피스가
흙탕물이 튀어 이상한 색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대상이 아니라고 친다면 꽤나 많은 고양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잔뜩 겁에 질린 작고 여린 소녀는
이마에서 흐르는 따뜻하지만 붉은 어느 액체 때문에 흐릿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길에 서서 뛰고 또 뛰었다.

소녀는 아무라도 좋으니 누군가가 나타나주길 바랬다.

살려달라고 구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좋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리 좋은 꼴도 아니었기에 모두 겁을 먹고 도망갈 터였으니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멀리 도망갈 수 있도록 대신 죽어주는 일,
시간을 더 벌어주는 일.

그 뿐이었다.

누군가 말한다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 하겠지만
소녀는 본디 어여쁘고 예의바른,
누구에게나 착하고 예쁨을 받을 만한 아이였다.

허나 불과 몇십 분전의 일이
소녀의 뇌를 지극히 이기적이게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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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16 22:48 | 조회 : 1,895 목록
작가의 말
nic35019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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