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카오루, 행방불명 되다.

나를 잊지 말아요

잔잔한 바닷가에
작게 핀 꽃 한송이
바람속에 흩날리며
기억 저편에 날 데려가요
함께 있진 못한대도
그대의 모든게 떠올라요
환한 웃음소리
슬픈 눈물까지
곁에 없다고 울진 마요
때론 그립겠죠
때론 서럽겠죠
우리 언젠가 만나겠지만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기억 해줘요
내가 그리울 땐
저 하늘을 봐요
나는 별이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를 맘 속에 새겨주오
당신이 지쳐서
저 하늘 바라볼 때
내가 지켜줄거예요

-조선 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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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카오루. 또 밤 샌거냐? 아, 타카스기는 순찰, 즈라는 보급 물품 들어온다길래 거기..."

아직은 이른 아침, 타카스기, 카츠라와 유곽에서 돌아와, 순찰과 보급 부대를 살폈고, 나는 일단 또 밤을 새었을 카오루가 있는 곳으로 먼저 향했다.

"... 카오루?"

헌데, 카오루가 보이질 않았다.
찻물이 묻어 살짝 얼룩진 겉옷. 그리고 한 쪽으로 치워져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급히 다가가 찻물에 손가락을 담가보았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카오루!"

이미 텅 비어버린 신사를 나오자, 바로 문 앞에서 흙이 쓸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태를 보니 끌려간 것은 아니고 도망친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신사 앞이 끝이었다. 그 뒤로는 흔적이 이어져있지 않았다. 증발이라도 한 것 처럼 딱 끊겨져있었다.

순간, 적이라도 들이닥쳐 끌고 간 건가 하고 신사 안을 살폈지만, 상태가 너무 깔끔했다. 도망은 쳤지만, 반항한 흔적은 일체 없었다.

신사 안에는 카오루 혼자 밖에 없었다.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귀신이라도 본 건가... 뭐야,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부정하고는 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 표정이 굳어진다.

이를 악 물고 카오루가 두고 간 책을 내가 갖고 있는 책과 함께 품 속에 넣었다.

찻물의 온도를 짐작컨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찻물에 얼룩진 애꿎은 겉옷을 꽈악 그러쥐었다.

그리고 신사를 나와 빠르게 달려 병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병사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이봐, 너. 카오루 본 적 있어?"

"... 하얀 검귀님 말입니까? 신사에 들어가신 이후론 보지 못했는데..."

"넌 나가는 것 못봤어?"

"네, 밤에 제가 병영 보초를 섰는데, 보지 못했습니다."

"넌?"

"저도..."

대부분 아니, 모든 대답들이 보지 못했다는 소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암담함만 다시 맛봤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카츠라가 간다던 보급 부대로 향했다.

"즈라! 근처에서 카오루 봤다던 녀석 있냐?"

"카츠라다!... 긴토키? 무슨 일 있는 겐가?"

"... 카오루가 사라졌다."

"사라지다니... 지나친 생각 아닌가? 잠깐 어디 나갔을 수도..."

"아냐. 항상 품에 두던 책이 그대로 놓여있었어. 차도 마시다 만 상태로 차갑게 식어있었고. 무엇보다 신사 앞 흙이 쓸려있었어. 도망을 간 것 처럼."

"......!"

급하게 말하는 긴토키의 말에 카츠라가 심각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네. 이쪽은 내가 물어볼 테니, 다른 곳을 찾아보게."

"맡기고 타카스기 쪽으로 간다. 그 녀석은 순찰을 돌고 있다고 했으니 좀 낫겠지. 방금 도착해서 순찰한지 얼마 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병영 내 순찰을 조금이라도 돌았으면 이상한 낌새라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녀석이 이끌고 있는 귀병대도 일당백이라 할 정도로 쓸만한 애들이 많으니까 뭐라도 알고있지 않을 듯 싶었다.

카오루는 일반병사도 아니고 거기다 인상깊은 어린애 모습이니 전쟁터에서 기억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카오루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타카스기."

"긴토키? 꼴보기 싫은 네놈 얼굴 좀 안보려고 나왔더니..."

"피차 일반이니 그건 관두고, 카오루 못봤냐? 흔적이라도 좋으니까."

"카오루? 그런 건 없는데. 무슨 일 생긴거냐."

"사라졌어."

".....!"

"흔적은 신사 앞에서 끊겼고, 적이라도 와서 끌려갔나 싶었는데 너무 깔끔해. 반항한 흔적은 없고, 신사 앞 흙이 쓸린 형태로 봐선 도망쳤는데......"

"신사 앞에서 끊겼다?"

"그래. 즈라한테도 알리고 온 길이다."

"우리쪽 애들은 내가 물어보지."

"어."

최대한 짧게 대화를 끝내고 병영을 한 바퀴 더 돌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카오루의 행방을 들을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던 것 같다. 입술을 혀로 축이자 입 안에서 평소 자주 맡던 혈향이 베어나왔다.

씁쓸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발이 가는대로 걷다가 문득 정신이 퍼뜩 들었을 땐, 그나마 카오루의 흔적이 남아있던 빈 신사 안이었다.

카오루는 도대체 무엇을 봤을까.

혹시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나.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유곽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헤어지게 될 줄 알았더라면, 유곽같은 건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카오루는... 유곽에 간 날이면 밤을 새서라도 올 때까지 기다렸다. 불안해서였나?

언제나 유곽에 간 날에만...

"잠깐만..."

그렇다면 카오루는 유곽에 간 날에는 자신이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나?

"카오루."

분명... 그 사카모토 녀석이 치근대는 바람에 자신의 이름을 얘기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려 가물가물했지만, 잊지는 않고 있었다.

"분명...... 카오루. 이노우에 카오루."

그리고 저번 유곽에 갔을 때 지명한 기녀가...

"...... 이노우에 아야메."

이노우에라는 성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 성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꽤 흔한 성일 수 있지만, 유곽에 간 날이면 자신이 헤어질 걸 알고 있던 카오루.

그리고 열흘 전 저번 유곽에서 지명한 기녀의 이름은 이노우에 아야메.

왠지 둘이 관계가 있을 듯 했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아예 관계가 없을 것 같진 않았다.

암담함만 가득하던 와중 한 줄기 빛이 느껴지는 듯 했다.


* * *


알 수 없는 공간의 일렁거림에 빨려 들어갔던 직후, 나는 필사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돌아가기 싫다고 간절히 빌었다.

온 몸으로 거부했고, 마음 속으로도 빌고 또 빌었다.

몸이 두 개로 찢어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내가, 내 몸이 생겨났다.
아직 태어나진 않았지만, 같은 시간축 안에서 내가 둘이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거부했다. 이렇게 헤어질 순 없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한 참 후에 의식을 차렸을 땐, 몸이 가벼웠다. 정신도 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신사 앞에 쓰러져있었다.

"다행이야... 아직 돌아가지 않았구나. 하지만...... 어떻게?"

내가 생겨났다. 내 몸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어떻게 난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거지?

"뭐, 일단은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됐나...... 벌써 아침이야?! 신사 앞에... 그것도 길바닥에서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거야?!"

정신이 번쩍 듦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아니, 털려고 했다.
이상하게도 옷에는 흙는 커녕 먼지 한 톨 앉아있지 않았다.

흙바닥에 꽤 오래 엎어져 있었는데 깔끔했다.

"뭐야... 이거? 뭐, 안 묻었으면 됐고."

나는 무심히 지나치고 신사 안으로 들어섰다. 겉옷이 나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 맞아. 겉옷 얼룩 빨리 지워야 할 텐데..."

나는 작게 투덜거리며 겉옷을 집었다.
하지만 겉옷은 집히지 않았다.

"어...?"

순간 내가 손을 잘못 놀렸나 하고 옷을 다시 집어들었다.

하지만, 역시 옷은 집히지 않았다.
아니, 내 손이 옷을 통과했다... 가 정확했다.

"뭐야... 이게....?"

나는 당황하며 그 옆에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책 역시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옆에 찻잔도 잡는 것이 아닌 그저 찻잔을 날려버릴 심정으로 손을 휘둘러 쳐냈다.

찻잔 역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물도 고요하게 담겨져 있었다.

"뭐야.... 이게 뭐야아아아!"

아무것도 집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건드릴 수 없었다.

이 이상한 현상 때문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덜덜 떠는 와중에도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게 이리라 신사가 잘못되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해버린 나는 신사 안을 뛰쳐나와 병영으로 갔다.

그리고 떠들고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밤에 보초를 서던 이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얘기 중입니까?"

그들은 내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당했다.

"... 제 말 안 들려요?"

끝까지 눈길조차 받질 못했다. 그들은 무심히 날 스쳐지나갔다. 너무 가까이 지나가기에 부딪힐 것 같아 피하려는 찰나, 그들이 내 몸을 통과해 지나쳐갔다.

온 몸이 불안함에 바들바들 떨렸다. 다리가 맥없이 풀려,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후우.... 후우.... 이게 뭐야... 거짓말이지? 이런 게 어딨어..."

심호흡을 하자 어느정도 가라 앉았지만 이 상황의 충격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일단 신사로 돌아왔다.

긴토키라면 내가 또 밤을 샐 거라 예상하고 여기로 올 것이다. 그리고, 긴토키는 날 무시하지 않을거다.

거기다 내 물건들이 일단 신사 안에 있었다.

신사에는 금방 도착했고, 나는 평소처럼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옆에 놓여있는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넘겨지지 않으니 시늉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해서 넘겨지지 않는 페이지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옷을 집는 시늉도 해보고 찻잔을 향해 다시 손을 휘둘렀다.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해서 멍하니 반복했다.

하염없이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토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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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카오루. 또 밤 샌거냐? 그리고 타카스기는 순찰, 즈라는 보급 물품 들어온다길래..."

긴토키 그가 신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긴상! 저 여기 있습니다!]

그가 신사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 카오루?"

[저 여깄습니다. 늦었습니다, 긴상.]


하지만 카오루를 부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는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그는 방안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날 찾았다.

그러더니 찻물에 손가락을 빼어넣더니 온도를 재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카오루!"

그는 신사 안에 있는 날 부르며, 신사 바깥으로 나갔다. 내 책을 품에 챙겨 넣으며.

어째서 기대한 걸까. 다른 사람 역시 날 보지 못했는데...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이건, 헤어지는 것만도 못하잖아... 아니, 오히려 이 편이 더 괴로워.

[나... 귀신이 된 걸까. 내 몸은 어디간거지? 내가 있던 미래에 돌아갔나? 내 정신, 혼도 없이?]

나는 만질 수 없는 옷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공기를 훑고 있는 느낌이다.

상황이 어이가 없어 멍하니 찻잔을 쳐다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긴토키가 다시 신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도 멍해져 있었다. 아마 발길이 닿는 대로 온 것 같았다.

혹시 날 느껴서 온 게 아닐까.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깐만, 카오루.... 분명...... 이노우에 카오루."

그는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사카모토가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을 대충 넘기려고 변명한 것을, 나도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 이노우에 아야메."

저 이름을 긴토키에게서 듣게 될 줄이야. 저번에 지명한 기녀, 아야메겠지. 그러니 내 몸이 생겼을 테고.

오랜만에 남에게서 듣는 이름이었다.

성이 똑같은 사람은 많지만, 뭐... 유곽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긴토키는 내가 유곽의 식구였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지금 긴토키가 하는 행동은 아무리 봐도 아야메를 만나러 가려고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매치를 시킨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 흘러가 긴토키가 아야메를 만나는 것이 옳은 미래로 흘러가는 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내가 끼어들지는 않았다. 거기다, 이것이 옳은 미래인지, 옳지 않은 미래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알아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뭐, 일단 내가 직접 껴들진 않았으니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믿을 수밖엔 없다.

[그래. 그럼 긴토키가 아야메를 만나는 것이 바뀐 미래가 아닌 올바른 미래라고 치고, 내 몸은? 내 몸은 어디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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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5 00:47 | 조회 : 2,03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그러게 어디어디 갔을까? 알아맞춰보세요~딩동댕동 보너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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