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죽을 거야. 넌 죽을 거야. 죽어서 지옥에 가자. 내가 있는 지옥에 가자..."

악마가 중얼거렸다. 악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벌써 며칠째인가. 흰 얼굴이 이제는 무섭다. 죽음이 다가온다. 미칠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아니. 악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소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악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작은 악마는 계속해서 그에게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 악마는 그 어떤 달콤한 말로도 자신을 유혹하지 않았다. 그저 악마는 이야기 했다.

"죽을 거야. 넌 죽을 거야. 그 어떤 일보다 끔찍하게 죽어갈 거야. 나와 살 거야. 나와 함께 영원히 살 거야. 극락보다 좋아. 극락보다 좋아. 죽자. 죽어야 해. 넌 죽을 거야..."

멈춰. 멈추라고. 아무리 빌어 봤자 악마의 속삭임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바뀌는 목소리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잠에 들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들어 주지 않는다. 왜. 대체 왜. 아무도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야. 이렇게 잘 들리는데...

"죽을 거야.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목을 메달아? 그럴 순 없지. 넌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야..."

"목을 메달아요?"
형사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아이가 어떻게 그런 죽음을 생각해 내었을까? 메듭짓는 법도 모를 나이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매듭은 단단했다. 성인이 해 준 올가미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가 도대체 목을 어떻게 맨 것인가? 또 왜 목을 멘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으나 형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 경우에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장 쉬운 표적이 되는 것은 가족이나, 그 집에 들어올 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집에는 그 날 들어온 사람이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없었다. 그들은 일하러 간 사이었고. 그들의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는 이곳에서 죽은 것이 맞는가, 아닌가.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형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에는 지문을 남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럼 누가 죽인 건가. 그것이 문제였다. 그 조그만 아이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그 아이가 혹시 뭔가 대단한 재산이라도 물려받았는가? 우발적으로 그 아이를 죽인다면, 이렇게나 깔끔하게 죽일 리가 있는가? 계획적으로 죽였다면, 아이를 왜 죽였나? 오만 가지 생각이 형사의 머리에서 맴돌았다.

"장 경사님. 지문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벌써 며칠째인가. 장 경사는 제대로 된 단서라고 나온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주변이 초토화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아이는 저항한 흔적 하나 없이 곱게 죽어 있었다. 형사는 조바심이 났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생긴 조바심이 아니다. 그는 끔찍한 살인마일지도 몰랐다. 연쇄살인마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었다. 무언가라도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그 살인마를 빠르게 죽여야만 했다.

"어떻다던가?"
"예. 그런데..."
"아, 빨리 말해!"

장 경사는 삼십 대 후반이다. 경찰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승진해 올라온 것이다. 그는 순경부터 시작했다. 따라서 경찰대학 출신들보다 아래 직급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베테랑 형사였다. 그만큼 많은 살인 사건을 누비고 있는 사람은 영화 속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에도 그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추리극은 영화에서처럼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주변을 조사하고 또 조사해야 무어라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지문 검사마저 며칠이 걸리다니. 이것은 매우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었다.

"예. 거기에 지문이 있었는데요... 그게..."

지문을 가져온 순경은 헛고생했다는 듯이 말했다.

"죽은 아이 본인의 지문입니다."

"죽을 거야. 넌 죽을 거야. 암. 죽고말고. 넌 사람을 죽였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넌 살인자야. 그렇지? 죽을 죄를 지었잖아. 죽자. 죽고 나서 나랑 같이 가자. 편할 거야. 편할 거야..."

"제발 꺼져. 꺼지란 말이야!"
아이는 고함을 질렀다. 아이의 눈에 맺힌 눈물은 모든 상황을 대변해 주었다. 그녀의 부모가 후다닥 달려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악마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대체 악마는 왜 그녀에게 이러는 것인가. 대체 왜 밤마다 이러는 것인가...

"흰 얼굴, 흰 얼굴... 그게... 눈만 시커멓고 흰 얼굴에... 날개...날개가 있었어요...
그건 악마예요."

물론 아이의 말이 그 부모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누군가 걸터앉아 있던 흔적조차도 없었으므로. 아이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흙이 좀 지저분하긴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누군가 있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악마였다.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죽음. 죽음을 주러 악마가 온 것이다. 그녀를 죄 주려. 악마가 온 것이다.

아이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한 일이 아닌데. 그래. 내가 한 일이 아닌데! 아이는 조금씩 자신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웃음에 미소가 일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누가 봐도 행복해서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악마가 뭔데. 난 잘못한 게 없어! 아이는 악마가 오면 그 악마를 공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밤이 무섭다. 도망도 가 봤지만 무쓸모였다. 부모님 옆에서 잘 때도 소리가 들렷다. 부모님은 잘만 주무셨으나 그녀는 잠들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언제 그 목소리가 자신을 헤치려 할 지 몰랐다. 나쁜 어린이는 벌을 받는다. 그 벌이 죽음인지도 몰랐다. 악마가 속삭인다. 악마가 속삭인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게. 악마가 속삭인다.

악마는 죄 지은 존재를 벌하는 존재가 아니잖아. 죄 짓게 만드는 존재잖아. 죄 짓게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에 못 가게 만드는 존재잖아...
소녀의 울림은 아쉽게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너...너...너!"
소녀는 장난감 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악마는 고개를 잠깐 갸우뚱하더니. 손으로 봉을 잡아 던졌다. 악마는 웃기 시작했다. 기괴한 웃음소리가 났다. 그러나 악마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나에게 무기를 휘둘러? 넌 나와 놀 수 없을 거야. 지옥의 지배자에게 밉보인 거야. 잘못을 했어. 잘못을 했다고. 잘못한 아이는 벌 받을 거야. 넌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소녀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부모는 굿도 해보고, 엑소시즘도 해 보고, 정 안 되자 정신병원에까지 데려갔다. 정신병원에서 소녀는 악마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음을 느끼고,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퇴원하는 그 날부터 다시 악마는 찾아오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바꾸어도 보았고 그녀 혼자만 친척집에 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악마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죽을 거라고. 그녀는 살지 못할 것이었다.

소녀는 결국 죽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살던 아파트의 옥상에 섰다.

"이걸 원했냐, 이 나쁜 놈!"

그리고 소녀는, 마지막으로 끔찍한 목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 목소리는,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 날. 소녀의 시체는 머리가 온통 으깨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차에 치여 죽일까? 아니면 압착기로 찍어 버릴까? 믹서로 갈아 버려? 칼로 찌를까? 총은 아니야. 너무 시끄러워. 그럼 뭘로 죽일까? 입을 찢어버리는 건 어떨까? 입을 찢다 보면 언젠가 가죽이 찢어져 나가겠지? 죽겠지? 그럼. 죽을 거야."

소년은 악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소한 몸집이다. 머리는 보이지 않고 허여멀건한 얼굴만이 비쳤다. 검은 색 때문에 움푹 파인 것 같은 눈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해골 같았다. 그래. 해골. 사탄의 모습이다. 낫은 어디 있지? 그 낫으로 내 목을 가져가야 하지 않는가.

"죽을 거야. 오, 가련하군. 왜 하필이면 그런 나쁜 짓을 한 거야. 아, 빌어먹을 하나님! 넌 죽을 거야. 하나님이 널 버리셨어! 넌 죽게 되어 있어. 끔찍하게 죽을 거야. 끔찍하게!"

소년은 대꾸하지 않았다. 무시하려 했지만 어려웠다. 악마는 돌을 집어던졌다. 그것은 그게 존재한다는 너무나도 대단한 증거였다. 그러나 어떻게? 이곳은 8층 높이의 아파트다. 이곳에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소년은 무슨 잘못을 했다. 그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수 없었다...

"잘못을 빌 사람은 없고... 왜 너 같은 게 와서 죗값을 받으라는 건지. 사과하기 전에는 죽기 싫은데."

악마는 갑자기 킬킬대기 시작했다.
"오. 오. 오호. 오. 사과, 사과, 사과. 에덴 동산에서 너희를 쫓아낸 바로 그 사과. 선,악. 사과. 사과라. 그럼 잘못이 없어지나? 킬. 킬킬. 넌 이미 잘못을 했어. 그 어떤 잘못도 돌이킬 수 없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잖은가. 그 중에서도. 오. 오호, 오. 죽어. 죽어서 사죄해. 천국에 잠깐 들여보내 주지. 킬. 킬킬킬. 하나님. 하나님! 그래. 그 빌어먹을 하나님은 너무 너희를 아끼셔서. 잘못했다고 빌면 그 빌어먹을 천국에 보내 줄 지 모르지! 히.히.히.히히히. 스스로 죽어. 그러면 내가 곧장 하나님께 데려다 주지. 힉. 힉. 이힉힉힉힉. 죄. 죄를 안다니.죄를 안다니. 킬킬킬..."

악마는 계속해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아이는 커터칼을 찾았다. 소년은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왼쪽 손목을 그었다.
작은 몸에 있는 피가 망설임 없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소년이 죽음 직전 마지막으로 악마를 쳐다보았을 때. 악마는 그와 약속한 적 따윈 없다는 듯.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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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23 22:34 | 조회 : 1,941 목록
작가의 말
제비교수

스릴러 물을 정확히 작정하고 글로 쓰는 건 처음이네요. 근데 너무 무섭네요... 역시 저는 사극물이나 심리를 다루는 게 더 나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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