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다

"1022-4, 여기로"

"예."

"방이 옮겨졌다. 이제부터 3호실을 쓰도록"

"예"



고분고분 말을 따른 노예 1022-4는 작은 짐과 함께 호실 문으로 들어섰다.

퍼벅, 하는 소리와 핏물이 낭자한 3호실을 보며 든 생각은 그저, 닥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은 곧 깨졌다.


"일어나, 병X새꺄. 신참 들어왔다. 여어, 신참"

차분한 발걸음으로 방장 앞에 선 노예 1022-4는 그제서야 맞고 있던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흐윽..사..살려주..세요.."


바들바들 떨며 처분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축 쳐져 있는 그의 모습에 지끈- 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는 방장앞에 서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차렷 자제를 취했다.


"어디 아픈가보군, 신참"


낄낄 거리는 방장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괜, 찮습니다"

"뭐 그러면야. 자, 신고식을 치뤄야지?"

"어떤?"

"간단해. 이자식 한대 치면 돼."

"그거 너무 쉬운 거 아닌가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노예 1022-4는 손을 들었다.


"아..제발.."

'아..버지.."





누군가 겹쳐보이는 탓에 쉽게 손을 움직이지 못하겠다. 노예 1022-4는 올리던 손을 다시 관자놀이에 올려놓고 꾹꾹 눌렀다.


"아, 뭐야. 불쌍해보이기라도 한건가?"


"설마요. 그저 빈혈기가 있어서 손에 힘이 안 실릴까봐요. 다음에 힘 꽉꽉해서 채우면 안될까요?"

"변명같은데"

"뭐 신고식이라면 당장 때리죠. 지금 필요한건 가십거리가 아닌가요? 큰 재미를 위해서라면야"



쏟아져나오는 말에 자기자신도 놀랄만큼,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다.


"어디, 내 손 한번 쳐 봐라"

"어떻게, 감히.."

"허락해주지."




노예 1022-4는 손바닥을 펴보이는 방장에게 힘을 풀고 때렸다.


"주먹이 약하군."

"검술을 익힌터라."

"좋다. 너는 내가 봐주도록 하지."



방장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다시 한번, 그가 구하러 얼른 오기를'







또다시 그는 이름 모를 그 남자를 기다렸다.

"뭐야! 뭔 흙먼지가!"

"잠깐잠깐, 다들 진정하라고"


지켜보던 용병들이 우왕좌왕하는터라 더욱 흙먼지가 거세졌다. 같이 구경나와있던 바텐더가 겨우 흥분한 용병들을 뜯어말렸다.


용병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강한자의 등장 예감에 다들 들뜬 것이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서야, 그들은 널부러져있는 수브를 볼 수 있었다.


"수브의...완패로군.,"

"완패는 아닙니다"

"그럼?"

"옷자락이 조금 찢겨나갔더군요. 역시 경험과 관록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요.."



씁쓸하게 웃는 그를 보던 용병들은 벙쪄있다가 잠시 뒤 큰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다!!!!!!"


사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바로 의뢰를 받고 싶다라.."

"A등급인데, 없습니까?"

"없을리가. 용병길드는 일이 끊길 때가 없지. 특히, 요즘처럼 혼란스러울 때는 말이야"

"완전 평화로워 보이는 데 말이죠"

"물론 모든게 물밑에서 이루어지지. 처음이니, 쉬운 임무를 주겠네. 자네는 이곳이 처음이라고 하였던가?"

"예. 태어날 때부터 산에서 자랐다가 스승님을 얻어 알음알음 검술을 배웠습니다. 사샤는 제 소꿉친구구요"

"사샤와는.."

"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찾으러 다니는 모양이로군"

"남자인건.."

"사샤같은 미인을 앞에 두고 한사람만 바라보다니, 그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칭찬이 과히십니..악!"

"거기까지"

"사샤, 아픕니다!"

"칭찬은 겸손히 듣겠습니다. 임무란게 뭐죠?"

"아아, 사람 찾는 거다. 신전에서 활동하는 사제 두명이 실종되었다."

"어디서요?"

"당연히 신전에서지"

"예?"

"신전뒤에는 넓게 펼쳐진 숲이있지. 거기 놀러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언제요?"

"어제 들어온거다"

"그런데 왜 아무도..."

"쯧.. 신전이랑은 사이가 별로야. 우리 특성상 나대는 애들을 싫어해서"


급속도로 굳어지는 길마(길드 마스터)의 표정에 대충 사정을 짐작한 사엘은, 그저 하겠습니다. 하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왔다.



방 창문에는 굽이진 산맥이 앞에 펼쳐져 있는데다가, 바로 밑에 연무장이 보여 사엘은 늘 창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운이는 뭐하고 있을까..."



깨끗하디 깨끗한 하늘은 여기가 지구가 아님을 확실하게 얘기해주고 있었다. 옛날 옷차림과 처음보는, 검소하지만 2층, 3층으로 쌓아진 건물들은 여기가 한국이 아님 역시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사엘은 태연했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건 다운의 행방.




"뭐가 그렇게 걱정이지?"

달칵거리는 소리와함께 사샤가 들어왔다.


"아..사샤..."

"질문에는 답 안해주나?"

"그 역시 잘 해낼것을 알아요.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사랑이 식지 않을까 하는거죠"

"대체 왜 그런 고민을 하는거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잖아요. 저한테 다운은 그런 존재예요. 날 떠나면 어쩌지, 불안하게, 의기소침하게,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유일한 존재이죠."


사엘은 피식 웃었다. 웃음기를 띤 입가가 꽤나 행복해보였다.



"아, 사샤. 같이 로브(발목까지오는 모자 달린망토. 주로 얼굴을 가릴 때 쓰인다) 사러갈래요?"

"난 사양하지. 돈은 있나?"

"몇 실버 정도요"

"그 정도면 충분히 사겠군"

"사샤는 은근 인간사회에 대해 잘 아네요"

"얼른 다녀오기나 해라"

"네네"





손을 휘휘 저으며 사샤는 그렇게 사엘을 쫓아냈다. 그리고 사엘이 앉아있던 자리에 똑같이 앉았다.





" 어째서 그와 닮은거야..잊은 거라 생각했는데.."





쓸쓸한 사샤의 말이 방 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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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01 22:09 | 조회 : 1,597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꽤나 사연 많은 사샤, 입니다! 요즘에는 9시 50분만 돼도 설레서 콩닥콩닥 한답니다>_< 삽화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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