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들은 문도 닫을 생각 않고 무작정 나에게 다가왔다. 방이 넓어서 다행이지 덩치 큰 남자들이 6명이나 있으니 방이 좁았음 큰일날 뻔했다.
그들 모두 다급하게 나에게 왔지만 막상 할 말은 없나보다. 아니, 할 말은 많은데 쉽사리 꺼내질 못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선택지가 있었다. 또 도망칠 것인지, 먼저 말을 할 것인지. 사실 도망치는 게 제일 쉽지만 제일 불편하고 두렵고 이들과 멀어지는 그런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털어놓는다 해도 반응은 분명 갈릴 것이다. 그래, 이 선택지는 도박을 해야 한다. 모 아니면 도일 거다. 수긍을 하는 반응일지, 날 미친놈 취급하거나 믿지 않을 반응일지.
후자일 것 같지만 같이 지내온 시간을 돌아보면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 전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안함 속에서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면서 각자 깊은 고민을 할 때, 하리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현아, 난, 아니 우리는 네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릴게."
모두 하리온의 말에 동의하는 것인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래서 난 이들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다. 겨우 저 말과 고개의 끄덕임, 얼굴로 이리 내게 믿음을 주다니. 정말 대단하다.
난 이들을 믿고 싶었다. 비록 소설 속이라지만 난 이들을 받아들인지 꽤 오래였던 것이다. 이걸 이렇게 늦게 깨닫다니, 나도 참 멍청하지.
결심했다.
다 털어놓기로.
"..말할게."
모두 내 말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사실 불안했다. 이들이 이 얘길 듣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할 지 무서웠다.
"대신 말 끊지 말고 그냥 들어줘. 그리고 거짓말, 아니니까 믿어줘.."
난 애써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속으로 큰 호흡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말했다.
"... 난 진짜 최시현이 아니야. 최시현 몸 속에 들어온 다른 사람이지. 무엇보다 여긴 나에게 소설 속이야. 그것도 내가 쓴 소설. 너희들은 흔히 말해 등장인물이었어. 개인의 성격과 특징이 다 정해지고, 스토리와 흘러가는 흐름도 내가 정한 소설의 등장인물 말이야."
모두의 얼굴 속엔 미묘하면서도 혼란이 가득했지만 난 아랑곳 않고 말했다.
"문도윤을 제외한 너희들, 하리온, 하리안, 김현, 한진우, 신도림은 소설의 남자주인공들이었고 윤예슬이 여자주인공이었어. 최시현은 너희 사이를 방해하는 악역이었고."
"그런데 난 전학 오기 전에 최시현에게로 빙의를 하게 됐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 그냥 잠이 들고 눈을 뜨니까 난 최시현의 몸이었고, 이 곳이었으니까."
"본래라면 너희들은 모두 윤예슬에게 사랑에 빠져. 문도윤은 윤예슬에게 흥미와 호의만 느낄 뿐, 사랑에 빠지진 않고. 하지만 그게 틀어졌어."
틀어진 원인은-
"작가인 내가 최시현에게 빙의하고, 여자주인공인 윤예슬에게 유제림이 빙의했기 때문이지."
""..!""
혼란 속에서 모두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난 유제림이 누구인지 설명했다. 이제부턴 유신우의 얘기도 하게 될 것이다.
"유제림은 내 친구.. 아니, 연인이었던 유신우의 이복 동생이야."
내 말의 파격은 무척 컸다. 이복 동생도 이복 동생이지만 아무래도 유신우가 나의 연인이었다는 것에 더 놀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