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얘기가 끝나버렸다.
이리 흐지부지하게 얘기가 끝나고 우린 순간적으로 사이가 서먹해졌다. 수학여행에서 학교까지 돌아오는 동안 우린 말 한마디조차 나누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 처음엔 역시 날 미친놈 취급하고 멀어지려는 걸까, 하고 잠시 좌절해했었지만 이내 그들이 보여주었던 진심 어린 행동들과 각자 깊게 생각하는 것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역시 걱정되고 눈치가 조금 보였다. 다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데..
버스에서 내려 학교에 도착하고 다들 차츰 떠나갈 때, 몇몇 빼곤 나와 남주들, 문도윤 밖에 없었다. 윤예슬은 어디 갔는지 안 보였다.
신도림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하현아, 넌 아직 우리에게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았지?"
"무슨..."
"유신우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
날카로웠다. 그래, 난 저 얘기만 쏙 빼놓고 말했다. 하지만 이 얘긴-
"그래, 그건 유제림이 먼저 알아야되겠지?"
어, 어떻게 알았지. 내 생각을 읽었,
"걱정 마, 네 생각은 안 읽었으니까!"
...?
"으, 응. 맞아, 그 얘긴 제림이가 있을 때, 아니면 제림이에게 먼저 해야지.."
잠시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은 후, 신도림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제림이가 어디있는지 아려나..?"
"도림이는 뭐든지 알지요! 음음... 걔 지금 이 근처 공원에 있는 것 같은데?"
신도림은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이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공원으로 향했다.
나와 유제림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했다.
사실 전에는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제림이가 더욱 절망할 게 분명하니까. 차라리 진실을 모르고 날 원망하며 아득바득 사는 게 좋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너무 안일했다. 내가 너무 어리석고 오만했다.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지만, 지금이라도 제림이에게 진실을 전해줘야겠다 결심하게 됐다.
고작 책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덕분에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듣고 나서 제림이가 날 죽이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원망하는 것 정도론 안 끝날테니까.
'하현아, 나 없다고, 쿨럭..! 죽으면 안 된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 피투성이가 된 신우가 눈물을 흘리며 웃는, 아주 슬프고 슬픈 기억. 그래, 이 말 때문에 차마 죽지도 못했다.
나쁜놈, 진짜...
정신없이 달려오니 벌써 공원에 도착했다. 숨을 잠시 고르다가 다시 유제림을 찾았다. 빠르게 공원을 훑자, 쉽게 유제림을 찾을 수 있었다.
"제림아!"
윤예슬의 모습을 한 유제림은 갑자기 들리는 자신의 진짜 이름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나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얼굴을 이상히 찌푸렸다.
마치 왜 날 찾아왔냐고 화를 내는 듯한.
하지만 난 아랑곳 않고 유제림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뭐? 갑자기 왜, 이제 와서.."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유제림. 이 정도 반응 쯤이야 얼마든지 예상하고 있었다.
"들어줘, 제림아."
간절하게 말했다. 제림이는 신우의 동생으로서 들을 필요가 있었고, 들을 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