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그대의 길에 내가 있으니









검고 깊은 수렁텅이는 마치 잡아먹을 것만 같이 흉흉했다. 몸은 그대로 가라앉혀질 만큼이나 무거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무섭다,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은 공허함.

그 공허함이 무서울 뿐이였다.

[레이크, 이제 내가 맡기는 게 어때?]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탕으로 어린아이를 유혹하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상 아이는..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게 아닐까.

“....싫지는 않아-”

*

“...!”

“레이크!”

놀란 감정을 접어두고, 레온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너...”

레이크는, 아니 레이크 속에 깃든 신은 활짝 웃었다.

“안녕, 모두 나랑은 초면이지? 잘 부탁해”

“..당신 설마.”

레이크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고귀한 신의 증표, 푸른 눈동자. 아니, 사실 완전히 푸르다고 하기에는 일렀다.

조금이지만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레이크를 완전히 먹은 것은 아닌 모양이였다. 오히려 몸을 빌린 것과 비슷했다.

“반가워, 리안.”

“와, 정말 반갑네요. 는 개뿔, 레이크는 어딨어?”

레온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신은 나뭇잎이 나풀거리듯 가벼운 목소리로 웃었다. 냉랭해진 공기와 상관없이 웃음이 울렸다.

“레이크는 내 안에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날 죽일 수 없을테지.”

“..원하는 게 뭐죠?”

이번에는 리안이 입을 열었다.

‘저것’은 현재 완벽하지 않아. 신으로 보이지만 사실 레이크의 신력이 실체화한 것이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된 거라면 이야기가 맞아떨어져.

“내가 원하는 것은 힘의 완성이야.”

“역시. 아직 불안정하군요.”

“잠깐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리안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레온은 당황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러자 리안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마를 감쌌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그것보다 당신은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예정이죠?”

리안이 묻자, 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갛게 웃었다.

“그런 건 생각해본적 없는걸? 난 레이크이자, 레이크가 아닌 존재.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삶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 게다가 나 말고도 이 안에 깃든 것은 하나 더 있어.”

“..네?”

신력을 제외해서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고?

“바로 흑마력이지.”

“!..”

“그럴 수가..”

흑마력이란, 마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였다. 악마들이 사용하는 순수한 힘이 흑마력, 악마들을 억누르기 위해 신들이 인간들에게 나누어 배분한 것이 마력.

“신성하게 여겨지는 신력과 더럽게 여겨지는 흑마력은 완전히 대립할 수 밖에 없어. 그 대립이 간당간당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한 신의 개입으로 신력 쪽이 대폭 강해져 버린 거야.”

“에렌님..!”

레온이 주먹으로 손을 탁 치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에렌이.. 레이크에게 접촉했었어?”

“응. 그런데 별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상해.”

“하긴, 에렌이 레이크에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바보같이 착해 빠진 꼬맹이였으니까. 하지만 접촉한 신은 그 애 뿐이잖아?”

리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이, 다른 생각 말아. 레이크는 신의 힘이 조금이라도 닿게 되면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그 하얀 머리 여자애는 그저 기억을 훑어본 것 뿐이였고.”

“그걸 어떻게 알죠?”

“그거야 난 항상 이 애의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레이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어. 예를 들어 레오나르 카레벨, 너에 대한 신뢰 같은 것 말이야.”

레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만큼은 지키려고 애썼다. 겨우 극복해낸 이야기였다. 극복하고,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현재 너무나도 무력했다. 다른 신들에게 기대고, 정작 자신은 한 것이 없었다.

“레이크는, 나는 널 믿었어.”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 레이크와 같은 목소리였다. 소름이 돋으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만, 닥쳐요.”

레온의 심경 변화를 눈치챈 리안이 말을 막아섰다. 푸른 눈의 신은 잠시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당신, 이름은?”

“없어.”

“그럼 레이크- 이니까 케이르라고 부르죠. 케이르, 부디 레이크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알았어요?”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강압감에 듣기만 했던 레온조차 어깨가 떨렸다. 그러나 케이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으쓱하기만 했다.

“알았냐고요.”

다시 돌아오는 물음에, 케이르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글쎄-”

“너 이 자식”

욱하는 레온을 가로막은 리안이 공간에 손가락을 툭 가져다댔다. 순간적으로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멈추면서 호흡이 힘들어졌다.

레온이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찌푸리자, 그제야 리안이 다시 원활한 흐름을 구축해냈다.

“흐응? 이건 무슨 의미지?”

“협박이라는 겁니다, 세상 모르는 신님.”

“알려줘서 참 고마워. 나도 보답해도 될까?”

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뒤를 돌아 케이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펑~”







5
이번 화 신고 2020-04-30 15:56 | 조회 : 1,406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나는 분명 마감했어요. 그죠? 마감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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