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라

2099년 10월 17일.
"......저희 회사에서 성공해 냈습니다. 2100년 1월 1일부터 저희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상용화를 시킬 것입니다.
네? 왜 하필 2100년이냐고요?
아,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몇 분 계시는군요.
아시는 대로 저희는 이미 작년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완성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러 상용화를 유보시켰죠.
왜냐고요?
'뭐 저런 이유가 다 있나'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그냥 저희의 결과물이 22세기를 여는 발명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22세기 첫날에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저거 미친놈 아니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벌써 몇 분 계시는군요. 하긴, 이 발명을 미리 상용화시켰으면 이미 들어왔을 금액이 얼마였겠습니까? 그래도 이해해 주시길. 미친놈이 아니었으면 이런 발명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 "


...


2115년 2월 4일.

"유라야! 여기야 여기!"

나는 유라가 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두 손을 들고 위로 크게 저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유라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손을 흔들었다.

야... 누구 여자 친구인지 정말 너무 예쁘네.

거기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검은색 머리칼은 주위를 하얗게 물들인 반짝거리는 눈과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어느새 나에게로 다가온 유라에게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유라의 손을 슬쩍 잡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래도 이제 사귀는 사이인데...

그 때 유라가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갑작스럽게 나를 자신의 몸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어..."

이상하게도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덥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왜 열이 나는 것 같지?

"풋. 훈아, 나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갑작스럽게 뽀뽀해 오던 남자는 어디 갔어?"

"어, 그.. 그땐..."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나는 정신줄을 반쯤 놨었던 것 같다. 내가 맨 정신으로 그런 짓을 벌였을 리가.

"귀여워."

유라가 지나가듯이 한 말에 나는 더욱더 얼굴이 빨개졌다.

하,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체질로 태어났을까? 분명히 고백했을 때도 얼굴색이 빼박 홍당무 였을 거야.

"그래서 훈아, 이제 어디 갈 거야? 우리 공식적으로는 첫 데이트인데 당연히 좋은 코스로 잡아 놨겠지?"

"그야 물론이지. 같이 가보고 싶은 장소는 많은데 시간은 별로 없어서 고르기 힘들었다고."

..

그렇게 처음으로 간 장소는 영화관이었다. 그것도 19금 공포영화!
사실 내가 그렇게 공포영화를 잘 보는 건 아니었지만, 유라가 무섭다고 내 손을 꽉 잡아주고 내 쪽으로 기대주는 그런 장면을 조금은 기대하고 그런 일을 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선택을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아아악! ...이..이제 안나오..? ! 아악!"

평소에는 아주 가끔씩 15금 공포영화만 보다가 이렇게 19금 공포영화를 보는데 진짜, 너무너무 무서웠다.



"도대체 이런걸 사람들이 왜 보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

"이 영화를 고른 건 훈이 너잖아? 이렇게 무서운 것 못 보면서 공포영화를 고른 거야?"

유라의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정신이 확 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태를 파악했을 때 나는 이미 유라의 왼팔을 내 두 팔로 껴안고 있었고 얼굴은 그녀의 어깨에 파묻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를 파악하자 나는 곧바로 유라의 팔을 놓고 차렸 자세로 몸을 세웠다.

아... 젠장... 내가 마음속으로라도 욕 같은 거 잘 쓰는 사람이 아닌데... 욕이 계속 나온다. 젠장, 젠장, 젠장...

이제 어떻하지? 유라가 나를 뭘로 볼까, 흑흑.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푸하하하하, 훈아. 너 진짜 왜 이렇게 귀엽니?"

어? 좋게 봐주네?


..


쏴아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는 중이었다.

"야, 이것 좀 봐. 안드로이드인데?"

여기서 안드로이드라면 유라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저놈들은 누구지?

"어, 진짜네? 목에 일련번호가 있잖아? 이 비싼 게 왜 이런 작은 영화관에 와 있냐."

뭔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야겠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음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거 진짜 신기하다. 촉감이 사람 피부랑 똑같아."

"하지마세요."

"에이, 로봇이면서 너무 그러지 마. 그냥 신기해서 만져 본거야. 우리 같은 서민이 이런 비싼 로봇을 만져 볼 기회가 있어야 말이지?"

재빨리 화장실 밖으로 나가서 보자 어떤 남자 한명이 유라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유라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쉽게 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사람에게 벗어날 만한 힘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 사람을 밀어서 넘어뜨리든지 걷어 차든지 해야 하는데 로봇의 제 3법칙이 그녀를 반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야, 너도 와서 한번만 만져봐. 정말 신기하다니까?"

"야 그러다가 주인이라도 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 뭐 어때.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냥 로봇 표면좀 만져본거잖아?"

화가 났다. 그거 말고는 지금 이 기분을 설명할 다른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 하시죠. 유라는 댁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로봇이 아닙니다."

"야, 야. 주인 왔다!"

"응? 주인?"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주먹이 그 남자의 얼굴을 강하게 후렸다.

퍽!

"아악! 뭐,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그리고 그 남자는 맞은 자리에 다시 한 번 주먹을 맞았다.

퍽.

같은 자리를 두 번이나 얻어맞은 남자는 쉽게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자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댁의 물건을 마음대로 건드린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 말에 화가 났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던 것 같다. 유라를 물건 취급하는 말에. 유라도 사람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왜 물건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유라가 왜 물건입니까? 생각도 할 수 있고 감정을 느끼고 표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몸은 기계여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줘야 될 것 아닙니까?”

“하... 저 미친. 하는 말 들어보니까 저 안드로이드를 각별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말이 돼? 인공지능이니 뭐니 해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 아냐? 그게 고도로 발달된 심심이랑 다른 게 뭐가 있어?”

유라의 손목을 잡고 있었던 남자가 코피가 나려고 하는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있는 상태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나를 자극했다.

니들이 뭘 알아? 안드로이드이드가 생산 된지 15년이 되가는 동안 니들이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아본 적 있어? 힘들 때에는 위로해 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오히려 너희들보다 더 인간적일 존재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그때 유라의 손이 슬며시 내 손등에 올라왔다.

"이제 됐어. 그만 나가자. 그래도 우리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인데 이렇게 망치면 안 되잖아?"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흥분 했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진정되고 있을 무렵 남자가 악을 썼다.

"나가기는 뭘 나가? 사람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말이야. 내가 감방에 넣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숨을 잠시 고른 뒤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해보세요."

나를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나긋하고도 서늘한 목소리였다. 손가락 마디마디 걸쳐 있는 따스한 온기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0
이번 화 신고 2019-01-30 00:13 | 조회 : 1,448 목록
작가의 말
nic95032082

어쩌다보니 심심이는 2115년까지 있는걸로ㅋ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