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힘겹게 눈을 떴다.


눈커풀이 파르르 떨리고 입은 바싹 말라 수분을 갈구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자 찌릿하는 아찔한 느끼이 들었다. 예전에 전신마취를 한 후 풀렸을때와 퍽 비슷했다.


바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자 한참을 흐릿한 천장만 바라보았다. 분홍색 천장이었다. 내 방과는 다른색의 천장에 놀랐지만 인신매매라면 분명 콘크리트 천장을 마주했을거고 납치되었을 가능성은 사유가 없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몸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조금은 신경쓰일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지만 참지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침대 앉았다.


팔에는 링거가 맞혀있었고 내가 누워있었던 침대는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정확히는 이 방 전체가 분홍색이었다.


연분홍, 핫핑크, 스트로베리 블론드, 다크핑크 등 지금싸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분홍색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실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아,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분홍이 존재하구나.''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단순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새끼의 상이 눈에 맺혔다. 설마하는 마음에 링거가 맞혀있지 않은 손으로 눈을 비벼보았다.


"안녕, 우리 오랜만이지?"


헤실거리는 얼굴, 소름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 무려 고등학교부터 대학졸업까지 날 따라오던 개새끼 윤병현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머리로는 이미 이해가되었지만 혹시나 싶은 아주 자그마한 기대를 걸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자끄만 윤병현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뒤로 엉덩이를 밀었다.


대답없이 나를 바라보던 윤병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는 웃음소리에 녀석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보다 더 몸이 굳었다. 몹시 즐거워 어쩔줄을 몰라 주체하지 못해 나온 웃음이었다.


"아, 우리 재진이는 귀여워."


진심으로 하는 말인것 같았다. 놈이 내쪽으로 손을 뻗었고 나는 피하려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녀석은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벌레가 내 머리 위를 기어다닌다 해도 이렇게 역겨울 것 같진 않았다.


거부할 권한이 없어보이는 상황에 나는 놈이 내 머릴 다 쓰다듬을 때까지 잠자코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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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5 15:43 | 조회 : 5,062 목록
작가의 말
이오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잘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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