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전자

뜨거운 햇볕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눈을 뜨면 금방이라도 긴 머릴 가지런히 정리한 동생이 문을 열고 나를 부를 것 같았다.

짙은 올리브색 커튼 사이로 새하얀 빛이 스며들었고 땀이 눈가에 떨어졌다. 잔뜩 식은 땀은 눈가가 시리다 못해 뜯어내고 싶을만큼 큰 고통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땀을 훔치고 싶었지만 손목을 감싼 무언가 때문에 어려웠다. 한 네번째 땀방울이 내 눈가로 떨어졌을때 등뒤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놈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재진아, 좋은 아침."


귓가에 옅은 숨이 닿았다. 온몸이 쪼그라들듯한 이유모를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ㅍ......켁"


팔을 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잔뜩 쉬어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 내 머릿속을 한 차레 관통하고 지나갔다.


이렇게나 많은 감정들을 겪어본건 처음이었다. 수치스러움, 공포, 슬픔, 두려움, 민망함, 분노, 좌절, 우울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재진아, 괜찮아? 어제 좀 무리해서 그럴거야."


놈은 내 어깰 두드리며 물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놈이 가고 혼자 남게 되자 내가 있는 이 방을 살펴볼 수 있다.


한 쪽 벽면엔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그 옆에 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있었다. 창문은 조금 열려있는 상태였고 바람이 불때마다 무거운 올리브색 침실커튼이 일렁였다. 침대는 하얀색 바탕에 나무가 수놓인 것으로 세트였다.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하던 어제의 방과는 달리 짙은 녹색계열과 하얀색으로 꾸며진 이 방은 옅은 우디와 머스크향이 났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했다.


문 밖에서 끼익거리는 나무판자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낑낑거리며 문쪽을 응시하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놈은 기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진아, 보리차 괜찮지?"


놈은 들고 온 쟁반을 침대 옆 무언가 위에 올려두었다. 내 등 뒤에 위치해 묶인 상태에선 확인하기 힘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답대신 고갤 끄덕였다.


물을 따르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귓가를 때렸다. 어젯밤에 느꼈던 공포가 기괴하게도 오늘은 몸집을 더 불린채 나를 삼키려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끝을 이불 안으로 숨기는 방법 외엔 다른 것이 없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내 목뒤로 닿았고 나는 놀라 잘게 몸을 떨었다.


"놀랐지?"


놈은 실없이 웃었다. 몸을 조금 일으키자 갓 태어난 신경세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개자식.


나는 인상을 쓰고 놈이 건넨 컵을 잡았다.


"놔."


"싫어."


무슨 속셈일지 걱정이 되었다. 어린 아이의 치기 어린 행동이 놈이 하면 피바람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문득 머릿속으로 정신병리학에서 다소 위함하다라고 지정한 것들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날 시에 잦거나 긴 담화를 통해 정신적으로 이득을 볼 생각은 되도록 하지말라는 말이 생각났다.


유전적으로 그런 유형의 인간들은 저절로 기피하게 되어있다나 뭐라나. 어찌되었든 배운 것은 활용해야한다.


컵을 놓고 놈에게서 등을 돌렸다.


저런 놈들이 원하는건 관심이라고 말하며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무시'라고 말하던 교양 심리학개론 강사가 생각났다.


놈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기름칠이 잘 되었는지 소음없이 차분히 닫힌 문 덕분에 가라앉은 공기가 이곳에 생명체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속삭여주었다.


놈이 나가자 가파르게 올라가던 심박수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항상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으로 시작해 정신과 의사들과 범죄심리학자, 뇌과학자를 열심히 욕하던 강사분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몸을 다시 일으켜 방안을 둘러보았다. 놈이 나갔다고 해서 긴장을 풀 생각은 없기에 정말로 앉아서 눈으로만 둘러보았다.


분홍색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방과는 달리 짙은 올리브색 커튼과 잘어울리는 초크 색이나 옅은 갈색빛이 방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오래된 고목을 연상시키는 짙은 나무 문이 인상적이었다.


놈이 나간 방향으로 보아 이미테이션 도어는 아닌 것 같았다. 침대 바로 옆에 위치한 창문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창문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있었기에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다.


팔을 뻗으니 겨드랑이 아래쪽과 귀 바로 밑이 아팠다. 편도선이 부운 것 같다.


두꺼운 침실커튼을 열자 새하얀 창문이 드러났다. 창문을 열자 새하얀 백색 전구가 뒤에 있는 그림이 드러났다.


절로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생각했다. 개새끼를 죽이고 탈출할까 아님 내 몸만 빠져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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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6-16 19:48 | 조회 : 3,674 목록
작가의 말
이오타

코로나가 빼았은 제 성적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퇴학을 면하기 위해 시험에 몰두하느라 늦었습니다. 아, 수위 부분은 열어두었습니다. 폭스툰은 더 이상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참고로 공과 수의 이름은 개인적인 악감정이있는 지인들(오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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