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9)

예상과 달리 놈은 내가 위협했던 면도날로 내 발목 뒷꿈치를 베고 물 속에 내 몸을 처박았다. 베인 살점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고 대리석으로 사방이 막힌 욕실에서 놈의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울렸다.



반항하면 반항할수록 격한 움직임에 반응해 환부가 더 벌어지고 그 사이로 다량의 혈액이 욕조 곳곳에 붉은 꽃 자국을 남겼다.



"재진아, 재진아."



노래부르는 듯 낭랑한 음성이 철벅거리는 물소리와 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자꾸만 놈의 손이 내 머릴 짖눌러 욕조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살려, 살려줘...... 아악!"



자존심을 버리고 살려달라 빌었음에도 무자비한 손길로 목을 잡아 물 속으로 밀어넣었다. 시야가 붉게 변했고 철분 특유의 비릿한 향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세상이 검게 변했다.





.....






"하......하으"



눈을 떴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인지하긴 어려웠다. 잘 떠지지 않은 뻑뻑한 눈을 억지로 뜨자 내 위에서 허릴 흔드는 놈이 보였다.



희뿌연한 시야가 불편했다. 기절한 탓도 있겠지만 가까이에 있는 놈의 몸도 그렇게 보이고 습하고 축축한 공기와 반질거리는 대리석이 살에 맞닿는걸 보니 욕실 문으로부터 두세발짝 떨어진 곳이었다.



놈의 어깨 위에 내 두 다리가 걸쳐있었고 끔찍한 고통에 신음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놈이 내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억!"



절로 고개가 돌아갔고 뺨에서 느껴지는 시큰거리는 고통에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놈을 바라보자 인상을 쓰고 땀에 젖은 머릴 쓸어넘기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하난 두려움에 굴복했고 다른 하난 치켜올라간 채였다.



"재진아, 후우...... 일어났어?"



억지로 웃음을 지은채 놈이 속살거렸다.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뺨이 너무 아팠고 면도날에 베인 발목 부근 근육을 움직이자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리사이에 자리잡은 놈의 것이,



"앗 하윽! 앙아, 우읍"



입을 벌리는 순간 격하게 내 몸을 쳐올렸기 때문이었다.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은 어느새 입가에서 터져나오는 신음을 가리기 막막했다.



"대답을, 해야지."



"아앙! 대답, 으을......아앙"



대답을 하려하자 다시 한 번 놈이 크게 쳐올렸다. 입밖으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입을 가렸다. 자꾸만 격해지는 삽입에 고갤 젖히고 정수리가 바닥에 쓸려 고통이 느껴졌으면서도 내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쩐지 이상했다. 막 깨어났을때도 어쩐지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지금은 그 고통마저 황홀하게 느껴졌다. 점점 더 몸이 무거워졌다.



내 둔부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삽입하는 속도를 조금 늦춘채 연결된 부위를 은밀하다 느낄만큼 집요하면서도 가볍게 어루만지는 손길은 또다른 흥분을 불러들였다.



"흐응, 아 거기 좋아"



창부처럼 요염하게 고갤 흔들었다. 작은아버지 밑에 깔려있던 여자가 생각난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주변이 흐릿하고, 그래 네 눈에 비친 나처럼 그 여자 눈도 이렇게 풀렸었지.



어쩐지 바짝마른 입술을 진득하게 축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들지 않을 위험한 생각.



입술을 혀로 훝었다. 놈은 허릿짓을 하는 와중에도 멍하니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놈의 눈동자에 담긴 내가 어쩐지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뭐랄까 가만히있는 내가 낯설었다.



"우리 자기가 이제서야 얌전해질 생각을 했네. 잘했어."



메마른 입술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에 놓였다. 어쩐지 그 메마른 입술과 맞닿고 싶었다.



"이리와"



내 생각을 읽은걸까.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날 향해 고갤 숙였다. 입이 벌어졌고 서로의 것이 난잡하게 엉켰다. 아래와 마찬가지로.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또렷한 LED 전등빛이 어쩐지 새벽녘 하늘 사이로 드러나는 햇쌀보다 더 성스러워보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래에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삽입할때와 또 다른 고통이 느껴졌다. 그저 멍하니 흔들리는 LED 불빛만을 눈으로 좇았다.



"섰네."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어린 아이와 같은 악마의 만족스러운 그르렁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듣기 좋은 목소리네. 누구꺼더라. 아, 네 목소리였지.



그런데, 왜 LED가 흔들리지. 내가 흔들리는 건가 LED가 흔들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목덜미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갤들은 네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둥글게 휘었다. 기분 좋아? 나도 좋은데 지금 너무 이상해. 어지러워.




LED가 점점 내게로 다가왔다. 황홀감에 어린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리자 너도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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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6-24 23:55 | 조회 : 4,024 목록
작가의 말
이오타

SM 버전하고 약물 버전 두 개가 있습니다. 약물은 수위가 약해서 그런지 글이 너무 많이 막혔어요... 이런 약물 쓰느라 벌써 2개 정도 말아 피웠네요... 신음 쓰는게 너무 어려워서 SM은 거의 비명소리입니다. 내일 올라올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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