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아무래도 기숙사 학교니까
집 가는 날이 정해져 있어
컨퍼런스 데이(conference day)
보통 컨퍼라고 부르지
그리고 난 저번 컨퍼 때
집에서 방치 당했어
엄마는 일이 바쁘고
동생은 가출
아빠는 수련회를 간다나
그 덕에 약 3주 만에 집에 가서 동생이랑 엄마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왔지
그리고 이번주에 또 집에 가는데
엄마가 또 바빠서
못 본다고 하더라고
이해해
이해해야지
나는 그 바쁨과 희생을 밟고 학교를 다니는데
내가 이해를 못하면 안 되지
전화를 걸면 빨리 끊기거나
지친 목소리에 꾸역꾸역 전화를 이어나가거나
엄마한테 가겠다고 하면 볼 수 없다는 소리나 듣게 된 건
내가 이 학비만 더럽게 비싼 학교에 들어온 탓이니까
그래서
애들은 다들 집에 가기를 고대하는 상황에서
나만 집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어
이제,
진절머리가 나
텅 빈 집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에도 집에 혼자 있었는데
이제 한달에 한 번이나 가는 집에서도 혼자 있네
지쳐
알아
원인에 내가 있다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도
이렇게 어리광 부리면 안 된다는 것도
아는데
아는데
왜 다음 말이 안 나오지
이해해야하는 걸 아는데
힘드네
이해심도 없지
이기적이고
멍청해
진절머리가 나는 건
내가 처한 상황일까
나일까
아무래도 상관 없을 지도 모르지
나는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황에 있을 거고
그에 체념하고 있고
내가 나를 경멸하는 건 언제나의 일인 걸
그러니까
내게 모든 일이 아무래도 상관 없어지기를
정말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