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맑은 미친놈






“용사님이시죠!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뭐지, 이 심각한 상황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미친놈은, 온 옷에 붉은 페인트(라고 믿고 싶은 피)를 들이 붓고는 하하핫, 하며 웃는 이 미친놈은 대체 어느 나라 사이코냐?

그러니까, 이 상황이 되기까지, 우리는 두 시간을 거슬러가야 한다.

-

“해운님!”

“어, 쿠크다스.”

“어휴, 이제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가서 꼭 망토 두르고 계세요. 북부지방은 꽤나 쌀쌀한 편이라고요.”

흐응? 이녀석 봐라~

“걱정해 주는 거야?”

쿠크다스의 두 눈동자가 동그레졌다. 본인도 본인이 걱정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표정인데? 아, 괜히 물었다. 기분만 잡쳤네.

그래도..

정은 많이 들었다, 그렇지? 쿠크다스.

“그래봤자, 왔다갔다까지 합쳐서 9일만 기다리면 다시 볼 거잖아.”

“아, 예”

쿠크다스가 퉁명스레 웅얼거렸다. 으이구, 귀여운 녀석. 아직 어리군.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뭐.

“이렇게 된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예?”

“애교.”

“잘 꺼지세요, 해운님^^ 돌아오지 마요~”

이 새끼 봐라..?

쿠크다스는 흥얼거리면서 폴짝거리며 멀어져갔다. 아오, 저 뒤통수를 언젠간 세게 갈기고 말테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투덜거리며 황궁 입구까지 향했다. 새카만 말 한 마리가 앞에 대기 되어 있었다.

“여어, 우리 오랜만이지? 흑마.”

그렇다, 이 말은 마왕토벌 시적에 온갖 생고생 다 하면서 타고 다녔던 말이였다. 저 늠름한 자태는 아직 그대로구나!

흑마는 내가 다가가자 히이이잉, 하며 발굽을 바닥에 툭툭 두드렸다. 안본지 제법 됐는데도 주인을 기억하는 것이,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옳지, 옳지.”

솔로 쓰다듬자 고개를 치켜세우며 다시 히이이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똑똑한 녀석이야.

“용사님!”

흑마와 둘만의 애틋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사랑을 와장창 깨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수사 인원들이 말을 타고 등장해 있었다.

“이분이 용사님이시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역시 대단하세요!”

“초면이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사랑합니다!”

그렇게 초면에 미친 남자 수사관에게 고백을 받으면서 망할 하루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정말로.

그 수사관 행렬은 나를 중심에 두고 철두철미하게 내 동서남북을 지키는 기사들이 위치해 있었다. 솔직히 내가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맞겠지만, 지킨다고 자진하니, 나야 좋다.

그래서 가는 길에 고블린을 만나든 무슨 마물을 만나든, 어떤 산적들을 만나든 앞에 있던 기사 하나가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 기사는 정말 대단했다. 나는 마법사라서 검이라고는 쥐어본 적 없지만, 이 기사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기사들은 그냥 정말 호위인건지, 직업정신이 없는 건지, 그냥 내게 말을 붙이고 ‘그 위대하신 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 뿐으로 보였다.

한심한 새끼들. 이 형님의 매력이 아무리 넘친다고 해도 너무 아무생각이 없는 거 아냐?

콰작!

내 마법 화살이 바로 옆에서 날아든 마물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곧 뼈가 부러지는 뚜둑, 소리가 들리면서 옆에서 쫑알거리던 기사의 머리 위에 툭 떨어졌다.

마물의 검고 끈적거리는 피가 그의 얼굴에 줄줄 흘러내렸다. 크크, 오늘 샤워는 제법 힘들겠구나.

내가 혼자 키득거리는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희게 질려있었다.

“뭐야, 뭡니까?”

“히..히익..”

뭐야, 마물 잡는 거 처음 봐? 어이가 없는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는데 기사들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엥?”

왜? 잠깐만, 왜인데? 형님들, 내가 뭐 잘못했나요..?

“물러나십시오, 용사님.”

제일 앞에서 나를 지키던 기사가 나를 뒤로 물리었다. 뭔가, 했더니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기사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

“마물이 흡수되기 시작했어..!”

“어..엄마...!”

진심으로 한명의 기사가 부들거리며 엄마를 불렀다. 실제로 그 정도로 괴상하게 마물을 뒤집어 쓴 기사가 몸을 비틀었다.

“마물이 흡수된다고..?”

그놈의 엄마 타령보다는 다른 기사가 말한 흡수의 사실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흡수되기 전에 저 매개체를 지워야 하는데.

내가 마력을 움직이려고 마음먹고, 손을 들어올렸는데, 그보다 내 앞을 막아선 기사의 팔이 더 빨랐다.

기사가 마물이 질질 흘러내리며 흡수되기 시작하여 검게 물든 부분만 깔끔하게 베어냈다. 오우, 대단한걸?

덕분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기사 또한 다를바 없었다. 옷의 앞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젠장, 마물만 학살하다보니 붉은 피를 보진 못했는데. 순간적으로 비위가 상할 뻔 했다.

기사는 말에서 내려와 여전히 꿈틀대는 부분을 검으로 내리찍었다. 계속, 계속. 잔인한 장면이 연출 되었다.

이거 영화로 발매하면 15세 이상 관람가 겠는데? 싶을 정도로 피, 아니 실은 페인트라고 믿고 싶은 액체를 묻힌 선두의 기사가 나에게 몸을 돌렸다.

아, 잠시만요, 형님. 나 조금 무서웠어.

“용사님이시죠!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외로 해맑게 웃으며 기사가 인사했다. 분명히 사무적이고 딱딱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얘는 그냥 사이코인가보다. 어떻게 그렇게 피를 묻히고는 해맑을 수 있지?

“아, 응....아니 네.”

결국 나는 관대하게도 존댓말을 썼다. 아니, 실은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핫, 제 이름은 란슬롯 마테스, 제 1기사단의 수석 기사단원입니다.”

엇..? 란슬롯.. 마테스라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 그래!

검은 괴수의 기사, 란슬롯 마테스! 황궁의 제 1기사단장의 바로 직속 후배로, 단장 다음으로 제일 가는 검사였다.

젠장, 황태자 이 자식은 이런 무서운 놈을 왜 붙혀놓은거야! 서.. 설마 날 은근슬쩍 쓱싹하려고..!

“저 안 죽일거죠?”

“예..?”

“아뇨, 아닙니다. 빨리 갑시다.”

네, 그냥 못들은 척 해주시죠, 형님.. 나 진심으로 그쪽 무서워졌어요.

살생을 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무엇도 느끼지 않는 사람.

그렇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마물도, 마왕도 아니다. 상큼하게 웃음짓는, 이런 미친놈들이였다.




3
이번 화 신고 2020-02-09 19:38 | 조회 : 1,260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다...다들 댓...아니면 공감이라도.....흑ㄱ...(네 죄송합니다.. 관종이에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