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울(1)

‘아아..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갉아먹고 죽음에 이르게 한 나를 보듬어 주신 아버지’

수 연의 뺨 위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눈과 입에서 검붉은 피를 쏟아내며 좌우로 흔들린다. 환수에게 목이 죄여 숨이 멎은 채로. 연은 발끝에서 부터 머리까지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아버지를 해한 환수에 대한 분노? 아니다. 순식간에 변종 환수 전담 부대를 일방적으로 학살한 그녀 앞의 환수 ‘령’으로 부터 오는 두려움이었다. 연의 동료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 차가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풀썩

옅은 반동과 함께 연의 아버지의 몸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껴안은 아버지의 굵고 단단했던 목은 비틀려져 연이 한 손으로 지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세지는 빗줄기에 생긴 물웅덩이 위로 썰려나간 연의 오른팔에서 흐르는 피가 섞여들었다. 흙탕물 속에 비친 넝마가 된 부녀를 바라보던 연은 얼어붙은 채로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ㅅ…신부..여”

환수로부터 낮고 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 연은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치켜 올렸다. 환수 ‘령’의 3개의 역안과 2개의 검붉은 눈알이 도르륵 소리를 내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령’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의.. 신부.. 약속을..”

어째서 일까. 환수가 말을 하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연은 흘러넘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억누르고 이성을 되찾았다. 수 연은 오른팔을 그대로 붙잡고 힘으로 뭉개서 지혈 시킨 후, 제 주인을 잃어 헐렁한 소매를 꽉 묶었다. ‘령’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그녀는 무전기 쪽으로 손을 옮겼다.

“아. 아. 대책 본부 들립니까? A조 연 변종 환수 ‘령’과 대치 상태입니다. 현재 본인 제외 A, B조 전원 행동불가. spot E로 전투 인원 지원 부탁드립니다. 추적 술식 전개 실행하겠습니다. 이상.”

무전을 내려 놓고 일어선 연 앞의 환수 령은 점차적으로 몸을 불려 어느새 집채만한 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시체를 뒤로하고 추적 술식을 전개했다. 그리고 연은 죽어가는 몸뚱이를 이끌고 ‘령’에게 돌진하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흐려지는 시야에도 흔들림 없이 직진했다. ’령’은 이와중에도 그에게 달려드는 수연을 계속 응시할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연은 곧바로 환수의 날카로운 갈기 하나를 붙잡고 술식을 이식하였다.

짤랑

청명한 소리를 내며 환수의 갈기에 묶인 금방울이 울렸다. 연이 죽음과 동시에 그녀의 남동생 수옥연에게로 ‘추적’ 능력이 계승될 것이다. 신체적으로 약한 아이라 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연이 그것이 최선책이었다. 연과 아버지가 없어지면 옥연을 지킬 수단이 필요했다. 만일 계승이 빠르게 이루어져, 추적 방울이 그대로라면, 환수 처리 기관 HEKC(Huansu Elimination for Korea Corporation) 측에서 옥연의 보호자를 자처할 것이다. 어차피 spot E 환수 사냥전이 ‘령’의 개입으로 완전히 실패로 들어간 시점에서 그들이 새로운 추적 계열 능력자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젠장.. 아무리 개떡같은 회사였어도 사내 식당 밥은 맛있었는데..’

연의 머릿 속에서 무의미한 생각들이 오갔다. 어차피 죽을 모양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헛웃음만 터져 나왔다. 연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 환수에게 총탄을 갈겼다. 아니나 다를까 총탄은 환수의 몸을 뚫는 듯 하더니 금새 검붉은 안개가 채워지듯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환수는 피가 엉켜 붙은 손톱을 휘둘러 수연을 날려버렸다. 건물의 벽에 충돌한 연은 온몸이 부서졌음 느꼈다. 환수의 손톱이 스쳐간 그녀의 목에서는 피가 울컥하고 처올랐다.

“씹…”

수연은 말을 있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환수 ‘령’은 다시 몸집을 줄여 사람과 같은 크기로 돌아왔다. 곧이어 연 위로 사람 형체의 그림자가 졌다. ‘령’은 그의 역안 하나를 뽑아내 그대로 연의 목의 상처 사이를 비집고 눈알을 집어 넣었다.

“깨어나면 나를 찾거라. 나의 이름은 ____.”

맑은, 아니 괴기스러운 한기가 스러져 있는 방울 소리를 울리며 ‘령’은 점차 멀어져 갔다.

—————————————————————————————————————————————————————————————————————————————

수 연의 무전을 받은 직후 환수 대책 본부에서 파견한 수사관들이 현장에서 도착해서 마주한건, 전날까지만 해도 훈련장에서 마주치며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던 이들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서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변종 환수는 떠나간 후에 남은 참담한 현장에 그 누구도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현장 종료 연락을 받고 도착한 수습팀과 의료팀도 마찬가지였다.

“우읍..”

곳곳에서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수습팀 대표 김기헌도 이런 참사는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인간이 환수에게 사냥을 당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들은 HEKO 최정예 수사관들이었다.

“…생체 반응을 다시 파악해봐 연화.”

수습팀 대원 조연화는 곧바로 능력을 발현시켜 탐색을 전개했다.

“김서진 상무님을 비롯하여 전원 심장 박동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하아.”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기헌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비집고 나왔다. 그는 짧은 애도를 표한후 의료팀을 물리고 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팀의 막내 서지혁이 그들을 지나, 모든 참사를 가로질러 앞을 향해 저벅 저벅 걸어 나갔다.

“이런..”

기헌과 연화는 눈이 풀린채로 걸어가는 지혁을 바라보며 그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확신했다. 지혁은 그대로 벽에 기대어 있는 수 연의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연.. 연..누나…”

“안돼..나를 두고 가지 마요..”

‘당신이 아닌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10년 외길 사랑의 끝이 이렇다니. 본부에 연이 무전을 하고 비상이 걸린 순간, 지혁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수 연의 죽음을 예감했었다. 무전기에서 울려 퍼지던 낮은 기계음 섞인 연의 죽어 가는 목소리에 지혁은 연에게로 곧바로 연락을 취했지만 ‘령’과 대치 중이었던 그녀가 받을 리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원들의 전원 사망 통보에도 지혁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부인했었다. 그러나 현장 수습을 위해 불려온 그가 마주한건 차갑게 식어있는 연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기헌과 조연화는 숙연해졌다. 서지혁의 수연을 향한 열렬한 사랑공세는 사내에서 꽤나 유명했다. 김기헌은 언제나 까이고 돌아오는 지혁을 데리고 놀리곤 했었다. 그도 그럴게 지혁이 처음 입사했을 때 기헌 만큼 의문을 품은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HEKO 회장이자 대표이사인 서민기의 손자 서지혁이 행정관련 업무가 아닌 자신의 팀으로 들어오자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더만, 알고보니 예전부터 이어져온 짝사랑 상대와 함께하기 위함이었다니. 늘 본인은 능력이 발현 되지 않아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고 툴툴대던 지혁이였다. 그런 그가 수연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기헌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팀장님. 심장 자가결정화가 진행되기 전에 시신을 수습해야 합니다.”

조연화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오래된 친우와 그녀의 아버지 김서진 상무의 시신 앞에 냉정하게 업무 판단을 내리는 본인이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심장이 결정화되어 분해되거나 터지면 추가적인 변종 환수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지혁에게 슬퍼할 순간을 조금 더 주고 싶었지만 기헌은 하는 수 없이 다른 팀원들에게 변종 환수 전담 부대 수 연 수사관의 시신을 수습하라 명했다. 그 순간,

파아아

수 연에게서부터 황금빛 빛줄기가 퍼져 나왔다. 아름답지만 기이할 정도로 부드럽고 섬뜩한 빛이 퍼짐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일시적으로 멈추고 빛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빛줄기는 점차 사그라들고, 희미한 기운만이 남아 잔존하게 되자, 연의 눈이 뜨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의 목의 상처 부위로부터 역안이 빛을 토해내며 열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든 이들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게 역안은 전형적인 변종 환수의 상징이며,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황금빛 역안을 가진 환수 ‘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개를 든 지혁의 짙은 녹색의 눈동자와 수연의 목에 박힌 눈알이 마주쳤다. 지혁은 황금빛 눈동자를 보며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한참 서로를 응시하다가 목의 역안은 이내 시야를 위로 올려 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은 적막이 흘렀다.

“ㅂ…알..”

수 연이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로 아는 얼굴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앞에 눈가가 붉은 지혁이 보였다.

“연 실장님!”

지혁의 외침에 빠르게 정신을 차린 기헌은 연화로 하여금 의료팀을 다시 부르라고 명했다. 예상치 못한 생존자의 등장에 현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응급처치 후 연은 들것에 옮겨져 차량으로 향했다. 몸 전체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연은 눈을 굴려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운반되고 있는 환수 전담 부대 수사관들의 시신과 그녀의 아버지였다.

“허얽..엌…어..얽..…”

숨이 넘어갈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연은 패닉에 빠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왔다.

‘미안해요. 미안해.’

아비의 죽음 앞에서 복수가 아닌 두려움에 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연의 흐느낌은 그녀를 태운 차량이 바퀴를 굴려 현장을 떠남으로서 점차 멀어져갔다.

----------------------------------------------------------------------------------------------------------------------------------------------------------
“사망자 환수 전담 부대 수 연을 제외한 A조 B조 전원입니다.”

조연화는 현장 수습이 완료되자 본부에 재보고를 하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의 소생과 그와 더불어 발생한 기이한 현상에 대하여.

“그래.. 연 실장이 다시 살아 났다는 건가..”

조현식 상무는 갑작스러운 이변에 이것이 희소식인지 비보인지 고민하였다. 연이 다시 살아난 것은 김서진 상무, 그러니까 연의 아버지의 친구로써 희소식이었지만, 환수 ‘령’의 눈알을 달고 살아난 그녀는 기관에서 반겨질리가 없었다.

“상무님. 하나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음. 말해 보게.”

“그.. 김서진 상무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모녀 둘에게서 이상현상이 발견되었다니. 조 상무는 한참을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을 이었다.

“정확히 어디가 이상하다는 건가?”

“죽은 것도 산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자세한건 이후에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조 상무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연화와의 통료 종료후 곧바로 상부로 연락을 돌렸다.

‘뭐가 되었든 절망스러운 상황 뿐이군.

----------------------------------------------------------------------------------------------------------------------------------------------------------

1
이번 화 신고 2020-03-17 18:53 | 조회 : 757 목록
작가의 말
지브로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