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울(2)

"젠장!"

수연이 왼팔을 벽에 치며 외쳤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손 놓고 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게다가 이제 한팔을 잃었다. 그녀는 더 이상 환수 소각 담당 수사관으로 활동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복수 또한 할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남은건 비어있는 오른 소매와 목에 기이하게 돋아난 눈알이었다. 끔찍하다. '령' 그놈과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초반에 연은 눈동자를 파내려고 했었다.

"날 말리지마!"

막 깨어난 그녀는 한 팔이 없다는 것, 이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도 세상에 없다는 것으로 인한 쇼크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증오스러운 눈동자를 볼때 마다 아버지의 목을 잡고 흔들던 그 환수의 눈동자가 떠올라 깨어진 유리로 긁어내려 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수습팀의 지혁과 기헌이 그녀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수연은 진짜로 눈알을 파낼 것이다.

"연 실장님! 우선 검사를 합시다! 환수 령에 대한 조사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기헌의 한 마디가 그녀의 정신을 붙들게 하였다. 그렇다. 적어도 복수를 하고 나서 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 수연은 복귀를 서두르기 위해 회복에 힘쓰고 있었다. 지혁은 그런 그녀를 만나러 매일 같이 찾아왔다. 말이 업무 수행이었지, 실상은 수연의 상태를 걱정한 지혁이 그녀를 확인하러 들르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장정 서너명이 달려들어도 거뜬히 넘겼을 수연이 지혁과 기헌만으로 제압되었다. 부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로 사용하는 오른팔이 잘려 나간 것이 원인으로서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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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사회에서는 수연의 처우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수연의 신체 검사 결과 그녀의 목에 자라난 눈알은 환수의 것이 맞다. 그 외의 것은 차차 검사해야 겠지만 환수를 사냥하는 자의 신체 일부가 환수의 것이라는 것은 회사에서도, 세간에서도 좋게 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때 운을 뗀건 다름아닌 선민기 회장이었다.

"그 수사관, 쓸만한가?"

다른 이사들간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환수 소각 부분에 있어 주 전력이라고 볼 수 있는 A팀과 B팀이 사라진 시점에서, 뛰어난 신체 능력 및 추적 능력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하던 수연은 쓸만한 수준이 아닌, 필요한 인력이었다. 다만 그건 그녀가 부상을 당하기 직전의 얘기. 현재의 그녀는 외팔이었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수사관으로 두냐 마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구석에서 기지현 이사가 말을 꺼냈다.

"현재로서는 그녀에게 이식되어 있는 눈동자가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그녀는 완벽하게 훈련된 수사관이라는 점에서 필요한 인물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녀는 지금 행방이 묘연한 환수 ‘령’에 대한 추적이 가능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부정확한 상황에서 황급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 이후 천천히 결정 하는 것 어떱니까?"

돌려말한 것이었지만 괜한 탁상공론을 하며 시간 낭비 할것 보다 차라리 실용적인 방안을 찾아보자는 이야기였다. 이후 별볼일 없는 논의와 형식적인 인사후 회의 해산 되었다.

"왠일로 바로 내치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기지현 이사가 앞서 나가고 있는 선민기 회장을 붙들었다.

"흠. 무엇을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군."

"수연 수사관 관련해서 말입니다. 지혁이랑 관련있어서 인가요?"

"이미 확신하고 있으면서 굳이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지현 이사는 당혹스러웠다. 저 냉혈안이 자기 손주를 챙긴걸 본 적이 없을 터인데 무슨 일로 심경에 변화가 생긴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인 지혁은 제 아비와 다르게 한 사람만 몇년간 바라보고 있고, 그걸 당사자를 제외한 회사 사람 다 알게 티내고 있었지만 선민기 회장이 그걸 어떻게 안건지 의문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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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독하게 짝사랑만 하는 그 지혁군은 현재 상무실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연을 쫓느라 바빴다.

"연 실장님! 잠시만..헥.."

뒤에 쫓아오는 지혁을 무시하고 연은 상무실 문을 열었다.

"조 상무님! 강제 휴직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상무실 내부에서는 조연화와 조현식 상무가 다과를 함께하고 있었다.

"..하...저 또라이.."

조연화가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모녀 간에 대화를 해보자 했더니 대뜸 휴직하고 있어야 할 인간이 쳐들어 오니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연 실장. 내가 분명 자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업무 투입이 가능합니다!"

조 상무는 곧바로 뒤에 온 지혁에게로 눈을 돌렸다. 대충 면목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상황을 판단했다.

"연. 상부에서는 아직 네 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어. 그 동안 되도록이면 조용히 있는게 네 신변에 좋을 거야."

연화는 목소리를 다듬고 말했다.

"지금 아무것도 안하면 제가 제 자신을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조 상무는 수연을 바라보며 골똘히 고민하였다. 어쩜 이리도 제 아비랑 똑 같은지. 그걸 잘 알기에 조 상무는 곤란하였다. 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 그러나 수연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 그러나 휴식을 해보적이 거의 없는 수연에게 그건 무의미 할 것이며, 지금 그녀가 머릿 속을 비집고 앉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일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알 고 있었다.

"환수 소각 신입 팀을 꾸릴 것이다. 너는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훈련을 맡거라."

"아버지!"

조연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부상자에게 혈기 넘치는 신입들을 담당하게 하다니. 말도 안되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부착된 환수의 눈알은 신입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들게 할 수 있었다.

"할수 있지 연아?"

"넵!"

연은 안심했다. 드디어 조 상무님 입에서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불렸으니, 그가 연으로 하여금 퇴직을 하도록 권할 일은 없어졌다. 짜증이 잔뜩 올라 아버지에게 잔뜩 쏘아 붙이고 있는 연화와 불쌍한 조현식 상무를 뒤로하고 수연과 지혁은 나왔다. 그래. 차라리 그녀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선지혁! 이제 슬슬 업무로 복귀해라!"

수습팀 팀장 김기헌이 선지혁을 붙잡았다.

"팀장님. 아 제발ㅜ"

"안돼. 많이 봐줬어. 연 실장님. 연구팀 측에서 검사를 위해 찾아 가시길 부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바로 연구실로 직행하는 연의 뒤를 보고 지혁은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 한번도 안돌아 봐주고 가는지.

'어쩔 수 없지... 부서를 이동하자..!'

대충 꿍꿍이가 있는 얼굴을 한 부하직원을 끌고 기헌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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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 연구실로 도착하자 그녀를 맞이 한건 연구팀 대표 최요한 이었다. 그는 그녀를 이끌고 검사 대신 차를 권했다.

"...무슨 할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연의 물음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흔들어댔다.

"사실.. 이건 상부에서 비밀로 하고 있긴 한데.. 그.. 김서진 상무님은 운구 되지 않고 아직 연구실 내부에 있습니다."

바스락

연이 쥐고 있던 찻잔이 낙옆이 으스러지듯 부서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병실에 있는 동안 운구 작업은 끝났고 이미 묘지에 묻히신걸로 연락을 받은 걸로 압니다!"

그렇다. 수연이 병실에서 회복 하기만 해도 족히 3주는 걸렸다. 그간 수습 작업이 끝나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아니면 이 미친 연구원들이 순직한 아버님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던가. 그 생각이 들자 마자 수연은 곧바로 최요한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켘..헠..케헼.컼...잠..잠깐.."

"..."

연은 곧바로 그를 내팽겨 쳤다. 그리고 최요한은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김성진 상무님은 지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맥박이 멈추고 생명활동이 모두 중단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연화 씨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채셨는지 능력 발현을 통해 살펴 보니까 말 그대로 중단만 되었을 뿐이랍니다."

연은 들으면서 머릿 속이 혼란해졌다. 조연화는 왜 내게 그걸 말 안한 것이며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는 또 무슨 소리인 것인가?

"그러니까.. 아마 환수의 능력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정확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정체되어 있어요. 부패나 별도의 것이 진행 되지도 않고 체내 수분과 체온 등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까? 아버지를 다시 보게 해주세요."

연의 눈시울이 붉혀졌다. 최요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그녀가 동요하는 것을 보고 상부에서 금지한 내용을 더 말했다가는 일이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양심 찔러서 말했다가 난리 나겠구먼..'

"상무님은 제 권한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도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연은 최요한의 반응을 살폈다. 어불성설이었다. 애초에 연구팀 최고 권위자가 접근할 수 조차 없으면 더 심각해지는 문제인 것 이었다. 더 케내 봤자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고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연은 분노로 온 몸이 떨려왔다. 이걸 내게 숨긴 채로 걱정하는 척한 조연화와 조현식 상무를 당장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녀에게 숨긴건 그녀가 알아서는 좋은 사실이 아니여서 였을 것이란 것. 너무 급작스러운 사실이 밀어닥쳐 멀미할 것 같았다. 어지롭고도 혼란스러운 그녀의 머릿 속에 선지혁이 떠올랐다.

'상부에서 은폐하려는 사실 정도면,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거 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뵈러 갈 수는 없어. 그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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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20 03:45 | 조회 : 90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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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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