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작은 틈>

살랑이는 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태양이 우리를 밝혀주었으며, 강은 우리를 비추었다.
그리고 궛가에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심장소리.
루엔의 소리였다.
루엔을 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 다른 이의 몸에서 눈을 떴을 때는, 행복했다.
신이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내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려고 시도해 보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 할 정도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소중한 이들은 사라져 갔다.
똑같았다. 변하지 않았다.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처럼 사라졌다.
간혹 무언가 남기도 했지만 이미 소중한 이들은 곁에 없었다.
그런 시절을 못 견뎌 죽었던 시절.

나에게 누군가가 지나가든 물은 적이 있었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면 행복하겠지?]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지 않은 것 일 수도 있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

"영애"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엔의 품에서 떨어졌다.
"... 실례했습니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
"저 때문에.. 당황하셨지요."
"아닙니다. 저는 좋았습니다."
".... 예?"
당황하며 되묻자 루엔이 미소 지었다.
"저는 오늘 영애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마음은 아팠지만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
매번 생각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왜 하필 나인지. 좌절하고 절망했다.
'따라 웃어도 되는 걸까..?'
'그로 인해 행복해도 되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세웠다.
'짧아도 괜찮아..'
"루엔.."
"네"
그리고 살짝 웃어 보였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짧은 행복이라도 괜찮아'
".... 영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만약 소녀를.... 나를 두고 사라진다고 해도'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닙에요."
"저도 아닙니다."
루엔은 작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만 돌아갈까요. 영애?"
나는 루엔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으며 말했다.
"저는... 세르에요."
맞잡은 두 손.
"돌아갈까요. 세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어'
"돌아가요... 루엔
"네. 세르"

*

간단한 인사와 함께 루엔과 헤어진 지 어느덧 3일이 지났다.
그 일이 있고 이틀 동안은 비가 부슬부슬 왔고, 하루는 안전을 위해서 강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강가로 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간단한 디저트와 차를 챙겨서.
내 뒤를 따르는 시녀와 기사는 없었다.
'아.. 한 명 있지'
무심코 멈춰 섰다.
흔히 알려진 메이드복을 입고 간식거리 바구니를 들고 따라오는 아이.
오랜만에 강에 갈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강에 도착한 나는 쪼그려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강을 따라 간간히 나뭇잎들이 같이 흘러갔다.
"아가씨. 준비 다 됐어요."
강에 정신 팔려 있는 동안 시녀가 돗자리를 깔고 세팅을 해 놓았다.
몸을 일으켜 돗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 앉았다.
시녀가 따라주는 차를 받아 잠시 마시고 있자 신경 쓰였다.
"넌 안 앉아?"
"네. 아가씨"
"... 넨, 같이 먹자"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넨은 잠시 주춤거리다 주변을 살폈다.
"걱정 말고 이리 와서 앉아"
"네. 아가씨"
"말 놓고, 그러기로 했잖아"
사무적인 말투은 사라지고 당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런 표정 짖지 마"
이 몸에서 깨어나지 전부터 소녀와 친분이 깊었던 시녀였다. 소녀보다 3살 연상인 언니 넨.
"이 표정 은근 잘 먹혀"
"정말.. 어디서 그런 걸 배운 거야?"
넨은 돗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넨한테 배웠지"
"난 그런 거 가르친 적 없어"
"근데 난 보고 배워는 걸"
접시 위에 올려진 케익을 먹으며 살짝 웃어 보였다.
"... 정말, 그날부터 이상하게 다르네"
"...."
침묵하자 넨은 디저트를 한입 먹으며 말했다.
"뭐.. 나는 지금이 더 좋지만"
".... 왜?"
'모두에게 사랑 받던 소녀가 아니었나?'
"옛날의 너는 너무 순수했잖아.
매번 해실 해실. 그래서 난 지금이 더 좋아.
사람은 영악해져야 해!"
"봐봐. 넨한테 배우고 맞다니까"
넨은 잠시 멈취하다 웃으며 말했다.
"케이크 맛있다!"

그렇게 평화롭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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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4-19 02:06 | 조회 : 916 목록
작가의 말
꽃하늘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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