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

'죽고싶다. 죽여줘. 이렇게 살거면 살기 싫어.'
서늘한 칼이 손목에 닿았고 모순적이게도 내 손목은 뜨거워졌다. 종이 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선들이 생겼고 붉은 피로 이어졌다. 6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사실 이날의 기억은 거의 나질 않는다. 그저 4학년 때 가정통신문을 제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학교에 가지 못 할 정도로 구타당했던 것, 1학년때 자신의 부주의를 나에게 넘기며 욕설을 퍼부었던 것의 연장선이었겠지. 어쨌든간 그 날은 내게 너무 힘들었던 날이었으며, 처음으로 자해를 시작한 날이었다. 그렇게 난 중학생이 되었다.
긴 셔츠로 손목을 가렸다. 팔찌와 머리끈으로 상처를 가렸다. 웃음으로 그림자를 숨겼다. 그렇게 초반을 보냈고 평범하게 친구도 사귀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그사이 상처는 더 늘어있었다. 더는 긴팔로 손목을 가릴수 없었기에 더는 머리끈으로 가릴수 없었기에 내 손목엔 팔찌들이 자리했다. 그렇게 나는 내 상처를 숨겼고 나를 숨겼다. 그리고 나 자신도 점점 그 가면을 진짜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상처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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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04 00:42 | 조회 : 947 목록
작가의 말
Eve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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