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탈출했다(1)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부엉이의 울음소리에 아이는 눈을 떴다.
차디찬 감옥의 감촉은 적응될 때도 되었건만 자정과 새벽의 찬 공기 때문에 매일 잠을 설쳤다.
아이는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눈에서 코로, 코에서 입으로 차차 손이 내려갔다.
다행히 손에서 묻어 나오는 건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뿐이었다.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구석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낡은 침대조차 없는 방에서 차디찬 돌 바닥에 앉으니 서늘한 기운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아이는 잠시 몸을 떨었으나, 이내 관심사를 돌렸다.
아이에겐 평생을 함께 살았던 한기(寒氣)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끔찍했던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물이 되어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었던 지난 삶이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해지고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괜찮아…… 떠올리지 말자.

아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에 열중했다.
앞으로 5년.
그 후에 아이는 자신을 찾아온 그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만큼 더 중요한 문제가 한가지 있었다.

‘아버지……분명 그 인간이 아버지라고 했어.’

아마 자신은 평생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부모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렇지만 그 그리움을 풀어낼 방도가 없어 잠에서 깨면 눈물로 지새우기 일수였다.
아이는 눈을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돌렸다.
저 지하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를 직접 본 건 총 6번이나,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는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지하에 내려갔는데, 1년에 단 한번뿐이었다.
움직일 수 없게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과 구속 구를 채운 그는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관리조차 받지 못한 머리카락은 제 빛을 잃었고, 옷은 세월 속에 헤져있었다.
더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텅 빈 눈동자의 그였으나, 그런 그도 갈갈이 날뛰는 때가 있었다.
아이가 그의 앞에서 가혹한 실험과 고문을 받을 때, 그를 묶은 쇠사슬이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정말 그가 내 아버지일까…?’

아이는 부모를 그리워하면서도 원망했다.
사무치게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왜 자신을 이곳에 버렸는지 알 수 없어서 원망했다.
자신을 이 생지옥으로 보낼 정도로 증오스러웠던 게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도 두 손 두 발을 다 써도 다 꼽을 수 없었다.
만날 수만 있다면,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왜 자신을 버렸냐며 탓하고 욕하고, 그 가슴에 못을 박고 싶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면?
이 분리수거도 못할 쓰레기 같은 인간들 때문에 억지로 헤어진 것이라면?
그 인간이 말한 대로 저 지하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라면, 아이는 결코 용서치 못할 것이다.

‘지옥에서라도 되돌려 줄 테다. 내가 겪었던 고통에 수 백배! 아니 수 천 배로!’

아이는 오늘 이 곳을 빠져 나갈 생각이었다.
가능하다면, 아버지라는 사람도 함께.
아이는 주위를 살피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어스웜(Earthworm). 실피드(Sylphid).”

그러자 바닥과 창문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올라 온 것은 흙으로 빚어진 인형 모양새인 어스웜이었고, 창문에서 날아 들어온 것은 옅은 푸른 빛을 자랑하는 오목눈이, 실피드였다.
어스웜과 실피드는 아이의 작은 손바닥 위에 나란히 올라왔다.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가능해?”

어스웜은 잠시 고민하는 듯 고뇌의 신음을 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실피드는 자신만만했다.

“물론이지, 아가야. 나만 믿어라!”

실피드는 날개를 펴고 아이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뒤, 생각을 마친 어스웜이 움직였다.

“내 힘으로 이곳을 빠져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아이야, 만약 나간다면 어디로 갈 생각이냐?”

그 물음에 아이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막상 나갈 수 있다고 하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는 지난 삶 15년과 현재 10년을 갇혀 살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친분이 없었다. 그러자, 실피드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그리 고민해? 코델리아에게 데리고 가면 되잖아.”

아이는 실피드가 말하는 자가 누군지 알 수 없어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어스웜은 “진심인가, 실피드?” 라며 되물었다.
실피드는 명랑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물론. 코델리아라면, 너도 나도 안심이잖아.”

그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는지 어스웜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꾸나, 아이야.”

“잠깐만. 저 지하에 아버지가 있어. 같이 나가고 싶어.”

“아버지라고?”

어스윔과 실피드가 반문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니, 지하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미약해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아이야, 그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간다 한들……”

“잠깐, 어스웜. 이 느낌…이 힘…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어스웜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실피드를 쳐다 보았다.
그렇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이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그 남자는 두고 가자. 놈들이 올 것이다.”

아이는 서둘러 어스웜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아라, 아이야.”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훅 꺼지는 느낌과 함께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 떠도 된다, 아이야.”

아이는 눈을 떴다.
감옥의 자그마한 창문이 아닌 세계를 두 눈에 비쳐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아이는 밤하늘 가득 수 놓은 은하수와 별들을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처럼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아이야, 저길 봐.”

실피드의 부름에 아쉬움을 싣고 고개를 돌린 아이는 다 스러져 가는 탑을 보았다.

“여긴…어디야?”

“주인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들어가 보려무나.”

주인님? 아까 언급했던 ‘코델리아’ 라는 분을 말하나?

아이는 실피드와 어스웜의 뒤를 따라 탑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던 외관과는 달리, 안은 예상 외로 깔끔한 편이었다.
오늘 청소한 것처럼 작은 먼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스웜과 실피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니 문이 보였다.

“아이야, 문을 열어 봐.”

아이는 문 고리를 돌렸다.
어쩐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모든 게 아이에겐 처음이었다.
저 문 너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설렘의 양 극의 감정을 느꼈다.
문을 열고 아이의 눈에 비친 건 밤하늘 색 머리칼과 아이와 닮은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젊은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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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01 13:00 | 조회 : 832 목록
작가의 말
루나삐

은 남자 아이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로맨스는 중반부부터 차근차근 나올 예정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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