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붕7

“요즘 천부장쪽 애들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같드만. 아, 아! 막내야, 살살혀라!”

“조심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아저씨의 상처에 하얀 가루를 뿌리며 아저씨가 늘어 놓는 푸념을 들어주고 있다. 내 거침없는 손길에 아저씨가 인상을 팍 쓴다. 하지만 하나도 무섭지는 않다. 화난 인상이 아닌 아파 죽겠다는 의미의 인상인 것을 아니까.

“병원 가보십시오.”

“됐다.”

대강 소독약을 들이 붓고 붕대를 감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내 치료가 만족스러운지 아저씨가 팡팡, 붕대 위를 두드렸다.

“그보다 율아.”

“예?”

구급약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 있던 아저씨가 꽤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가 돌아보자 아저씨들이 내 주위로 모여든다. 나는 서랍장을 열어 구급통을 넣으며 이상한 눈으로 아저씨들을 바라본다. 아저씨들이 재빠르게 주위를 살핀다. 그렇게까지 살피지 않아도 넓은 사무실에는 우리들 뿐이다.

“오늘 시간 좀 되냐?”

“아, 오늘 작업 있습니까?”

“쉿, 쉿!”

“?”

내 물음에 아저씨들이 호들갑을 떨며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이 왠만하면 밤에 너 데리고 다니지 말라 그러셨다.”

아저씨의 말에 나는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돌아봤다.

“왜 입니까?”

“요즘 네 성적이 떨어졌다고…….”

“…….”

“그……많이 떨어진 거냐?”

나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정말 공부를 해야만 하겠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실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우리 막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형님도 괜한 걱정이시라니깐!”

“괜찮것냐? 오늘 밤에.”

“으음.”

내가 망설이는 소리를 내자 아저씨들이 초조한 눈으로 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내가 간절한 것 같아 보였다. 결국, 나는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뭐,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면 되고!”

“역시! 우리 막내! 화끈혀!”

꺄르륵, 꺄르륵, 하며 아저씨들과 이때는 참 분위기가 좋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오랜만에 밤 외출이라고 들떠 있었다!



“근데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서쪽 건물 둘러 보러 갈라는데, 보다시피 철이가 저래서.”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감아준 붕대를 하고 텔레비전 앞에 팔자 좋게 앉아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혁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려 놓는다.

“오늘은 나랑 다녀줘라, 막내야?”

“당연합니다!”

“오구, 귀여운 것.”

혁 아저씨가 마구 내 머리를 헤집었다. 철 아저씨가 그를 보다 내 쪽으로 자켓 하나를 휙, 던졌다. 자켓은 풀석, 하고 내 몸위로 떨어졌다.

“고, 교복 위에 걸치라.”

“앗,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던진 검은 자켓은 교복 셔츠 위에 걸치고 거울 앞에서 휘휘, 몸을 둘러봤다. 그러나 어디로 보나 그냥 고등학생으로 보일 뿐, 아저씨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흠…….”

“뭘 고민하고 앉았냐, 얼라가 그래 봐야 얼라지.”

“아, 형님~”

내 애교섞인 투정에 아저씨들이 일제히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결국, 나는 고등학생 같은 모습을 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아저씨들의 뒤를 따랐다.

“형 뒤에만 있어라. 알겄지?”

“에이, 괜찮습니다.”

푹, 아저씨의 말에 답을 하며 걷다가 무언가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내 앞을 가로막은 물체의 정체를 찾았다.

“형?!”

올려다 본 시선에 들어온 형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의외의 등장인물에 앞서 가던 아저씨들도 놀란 얼굴을 하고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 도련님이 여긴 어쩐 일이답니까?”

“그냥, 지나가는 길에.”

여기를 지나갈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나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한 채로 형이 하는 행동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흠…….”

형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왜, 왜요?”

“너 어디가? 집에 안 와?”

“아, 저 잠시…….”

형이 불쑥, 다시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옆의 아저씨들을 힐끔거렸지만, 아저씨들을 하나같이 시선을 내게서 반대로 돌리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어딜 봐?”

형이 내 턱 끝을 잡아 돌리며 물었다. 나는 난감함에 진을 빼며 눈만 굴렸다.

“분명 아버지가 너 밤에 못 나가게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지금 나가려고 한 거야?”

형의 미소가 무섭게 씩, 빛났다. 나는 단번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아뇨.”

내가 입술을 꾹 말아쥐고 고개를 돌리자 형이 내 어깨 위에 팔을 걸친다.

“아니라고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크게 위로 들썩였다. 그리고 그는 나 뿐만이 아니였다. 주변에 서 있던 아저씨들의 어깨도 모두 하나같이 위로 치솟았다. 모두의 시선이 끼기긱, 하며 천천히 뒤로 돌아간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럴리가 없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소원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싸늘한 얼굴의 보스와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모두의 동작이 딱, 하고 멈췄다. 정말이다. 순식간에 복도 위는 누군가의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으로 물들고 말았다.

꿀꺽, 하고 내가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적막한 복도를 울렸다.

“다 들어 와.”

보스가 한 마디 뱉고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보스가 걷는 뚜벅, 뚜벅 소리만 복도를 규칙적으로 울렸다. 나는 이번에는 간절한 눈빛으로 내 어깨에 팔을 걸친 형을 돌아봤다. 그러나 형은 어깨를 위로 한 번 으쓱, 할 뿐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우리와 다르게 형은 태평한 얼굴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형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형…….”

내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형을 불렀다. 그러나 형은 사무실로 고개를 까딱한다.

“들어 가봐.”

“형, 제발 살려줘요.”

“흠.”

형이 씩, 입꼬리를 올리고 고민하는 소리를 낸다. 형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하다. 어쩔 수 없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어떡하겠는가.

“저 빼내 주시면 해달라고 하는 거 다 해드릴게요. 네?”

“다?”

형의 눈이 순간 빛났다. 나는 그를 놓치지 않고 세차게 고개를 위에서 아래로 끄덕였다.

“네, 다!”

“너 그거 위험한 발언이다?”

“…….”

의미심장한 형의 말에 순간 망설여졌으나,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정말 다 들어드릴게요.”

“좋아.”

형이 씩,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형이 나를 놓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조심스럽게 형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가 형의 뒤를 따라 쫄래쫄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스의 눈빛이 나에게 향한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고개를 푹 숙였음에도 나를 바라보는 보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뻘뻘거리며 두 손을 뒤로 모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 율이랑 같이 집 가기로 했는데 가봐도 됩니까?”

“……집?”

“예.”

“같이 가려고 온거였냐?”

“아니면 제가 여기까지 올 일이 뭐가 있습니까.”

형이 능청스럽게 씩,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쫄아서 뒷짐을 절대 풀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역시나 그 정도 농담에 속아 넘어갈 보스가 아니었다. 보스가 피식, 웃으며 유리잔을 들어 올려 안에 들은 술을 한 입 들이켰다.

“뭐, 그런 건 됐어.”

보스의 심드렁한 말에 모두의 몸이 다시 긴장으로 딱딱히 굳는다. 그 앞에서 형만 여유로운 모습이다. 형이 불쑥, 보스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나는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율이랑 공부하기로 해서요.”

형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

사무실 안에 침묵이 감돈다. 그리고 곧 보스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린다.

“서 율, 가 봐.”

“예?”

“내일 학교 가려면 빨리 자야 할 것 아냐.”

“가자, 서 율.”

“헙.”

나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고 보스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스의 손에는 흰 종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나는 보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보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내일 뵙겠습니다, 보스!”

“그래.”

보스가 귀찮다는 듯이 휘휘, 손짓을 한다. 형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당당한 걸음새로 문으로 향한다.

“너네는 오랜만에 나랑 시간 좀 보내자.”

뒤로 보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미안한 눈으로 뒤에 남겨진 아저씨들을 보았다. 아저씨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나는 형의 팔을 동아줄이라도 되는 냥 꼭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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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11 13:29 | 조회 : 1,50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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