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붕6

집에 거의 도착하자 건물 벽에 기대 선 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을 빼고 총총 달려 형에게로 다가갔다.

“왜 나와 계세요?”

“…….”

형은 내 질문에 말없이 자신의 입에 문 담배를 까닥, 위에서 아래로 움직여 보였다. 담배 피러 잠시 나온 건가. 그러기에는 담배에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애초 간단한 차림으로 나온 탓에 내 수중에 라이터는 없었다. 내가 주머니를 뒤지는 것을 본 형이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나에게 휙, 라이터를 던졌다. 나는 내게 날아드는 라이터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내가 손에 안착한 라이터를 두 손으로 칙칙, 켜 형 앞에 내밀자 형이 살짝 고개를 숙여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후.”

곧, 형의 입에서 느릿하게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먼저 집에 들어 가기 위해 형을 봤다가, 형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가만히 멈춰섰다. 역시나, 담배 연기를 천천히 뱉어낸 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뭐 했어?”

“언제요?”

오늘 사무실 가서 뭐 했는지를 묻는 건가.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형이 시선을 밑으로 내리 깐 채 바닥에 꽁초를 던져 밟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금. 나가서 뭐 했냐고.”

“아, 누나 데려다주고 바로 왔어요.”

형의 표정이 뭔가 안 좋아 보였다. 나는 흘끔, 형이 바닥에 짓밟은 담배 꽁초를 바라보았다. 형의 발이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여자 마음에 들어?”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겠지?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형을 보았다. 천하의 이은우가 누나의 말대로 정말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친구를 몇 번을 갈아 치우더니 이번에 사귀는 누나는 정말로 마음에 들었나보다. 나는 형의 질문에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관심 없습니다. 전혀.”

“흐음…….”

형이 내게 바짝 다가서서 천천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내 얼굴은 지금 전혀 거짓말 하는 얼굴이 아닐 걸! 왜냐면 정말로 이성적으로 그 누나에게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한참을 내게 붙어서서 하나하나 뜯어 먹을 것처럼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긴장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여자 네 취향처럼 생기지 않았어?”

“제 취향이요?”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형이 어떻게 안다고…….

“키 작고, 귀엽게 생기고, 반응 잘 해주고.”

뭐, 형이 읊는 것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성격의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있다고, 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그런 성격의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다. 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관심없습니다.”

“하긴, 네가 설마 내 여자친구를 건드리진 않겠지.”

“네.”

형이 툭, 살짝 내 어깨를 치며 내게서 떨어졌다. 내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형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형의 낮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아버지랑은 뭐 했어?”

“그냥 학교 잘 다니고 있는 지 여쭤보셨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싸운 것 때문에 그런가.”

“아마도요……?”

“그 핸드폰은 뭔데?”

툭, 하고 형이 내 허벅지 부근을 치며 말했다. 형의 손등에 단단한 핸드폰이 툭, 하고 부딪쳐온다. 나는 당황하며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말했다.

“선물입니다.”

“뭔 선물을 너만 주고 나는 안 줘?”

“그냥, 형 학교 졸업하실 수 있게 잘 하라고…….”

“흐음.”

형이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는 것이 뭔가 불안하다.

“그럼 내가 계속 사고치면 그 핸드폰 압수 당하겠네?”

역시나,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나는 깜짝 놀라 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형!”

내가 투정부리듯 외치자 형이 큭큭, 거리며 웃는다.

“장난이야, 장난. 잘 다녀야지, 학교.”

형이 웃으며 내 머리를 헤집었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율아, 나 어떡해! 너가 말 좀 잘 해주면 안돼? 응?”

내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누나를 보며 나는 난감함에 뒷 머리를 매만졌다. 오늘 점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육볶음이라고 했는데, 유일하게 학교 생활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점심시간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누나, 진정하고 일단 식사를 하시는…….”

“지금 상황에 밥이 어떻게 넘어가!!”

저는 잘만 넘어가는데요……. 밥을 먹으러 갈 수 없게 된 상황에 되려 내가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데에는 소질이 없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세먼지로 덮여 근래 볼 수 없던 파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펼쳐져있었다. 그 푸른 빛에 나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나는 한 발자국 누나에게 다가가 누나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가 살짝 어깨에 팔을 두르자 눈물로 촉촉하게 젖은 동그란 눈이 나를 올려다 본다. 확실히 이렇게 작은 여자가 우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율아…….”

“누나 날도 이렇게 좋은데 계속 울고 있으면 어떡해요.”

반은 진심이 담긴 내 위로에 누나가 갑작스럽게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안겨왔다. 잠깐 놀라 두 눈이 커졌지만, 곧 나는 내게 안겨 온 누나의 등을 규칙적으로 두드려주었다.

“그래요, 그래.”

내 두드림에 누나의 훌쩍임도 점차적으로 잦아지는 것 같았을 때, 형이 건물 사이에서 나타났다. 나를 발견한 형의 눈이 단번에 왕창 찌푸려졌다. 나는 단번에 팟, 하고 누나의 등에서 두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누나가 훌쩍이던 것을 멈추고 왜그러냐는 듯 내 가슴팍에 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 이건…….”

내 말에 누나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형이 있었다. 형이 교복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형이 위로 고개를 한 번 까딱,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나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누나를 놓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형 앞에 불을 가져다댔다. 보스에게 하던 버릇이 학교에서도 나와버린 것이다. 아차, 싶었을 때에는 이미 누나는 저 쪽에 혼자 남아 있었다. 홀로 선 누나가 작고, 안쓰러워보였다. 형이 고개를 살짝 숙여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자, 나는 도로 주머니에 라이터를 집어 넣었다. 형이 가만히 눈을 내리 깔고 나를 바라보았다.

“헤어졌으니까…….”

“?”

갑자기 들려온 형의 목소리에 내가 무슨 뜻이냐는 듯 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형이 누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쟤랑.”

“네?”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더니 헤어졌다고? 물론, 형이 며칠 안가 여자친구를 갈아치우는 것이 하루이틀은 아니었지만. 나는 안쓰러운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은우야…….”

누나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애처롭게 형을 불렀다. 그러나 형은 이미 누나에게서 시선을 거둔지 오래였다.

“이제 잘 해줄 필요 없어.”

형이 나를 보고 말했다.

“아…….”

“알겠지?”

형이 싱긋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형의 웃음에 햇살이 비쳐 빛났다. 나는 형의 미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율아!”

누나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누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

형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나는 형의 뒤를 따랐다. 잠깐 흘끗, 돌아본 뒤에서 누나는 멍하게 혼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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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11 13:29 | 조회 : 1,32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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