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인어공주

정우의 말이 내게 위로가 되었는지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내 귓가에선 아까 외삼촌이 말했던 게 계속해서 맴돌았다.

내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건 행복한 환상이 깨진 것과 같은 것이라.
따뜻하고 튼튼한 집이 누군가의 손길하나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라.

그동안의 그 생활이 환상이라고. 거짓말이라고.

내게 확신을 주는 것 같아 너무나 허무했기에.

그랬기에, 난 날 위로해주는 정우라는 내 사람의 집도 무너질까 두려워 도망치는 거겠지.

“...정우야..미안해.....나 잠시만..혼자 있을래....”

그렇게 말하곤 난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정우의 손을 치운 뒤 빠르게 회사에서 내가 따로 부탁해 만든 방으로 가 문에 기대 주저앉아 울었다.

예전처럼 소리 없는 울음이 된 내 울음에 방안엔 조용한 적막만이 감싸 안았고, 난 그 적막함에 혼자라는 느낌에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끼곤 이내, 눈물을 그치며 멍하니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똑똑..

얼마나 있었을까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에도 난 눈 하나 깜빡 안한 채 말했다.

“..그냥 거기서 기다려줘. 아무 말도 하지 말고..아무 행동도 하지 말고..”

“...”

내 말에 방문에 기대는 듯 옷이 문과 쓸리는 소리가 들렸고, 난 나직이 말했다.

“.....내가 말야.. 엄마랑 형을 잃었다는 게 확실해 졌을 때...내 가족을 완전히 잃었다는 게 확실해 졌을 때 말야.....난..처음에 아무 생각도..아무느낌도 안 들더라.......그런 내가..이거 다음엔 뭐였는지 알아?”

난 잠시 숨을 고르다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앞 뒤..아무 생각 없이 죽이자... 그 사람을 죽이자.. 아니, 날 외면했던 모두를 죽이자....그 생각이..그 생각만이...내 머릿속을 지배하더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그 다음으론...모든 것을 놓아버렸어..이젠 내가 누군가 죽어.. 눈물이 흐르지 않게....내 마음 속에 있는....이미 너덜너덜 찢어진 천 조각이....앞으로 계속 계속 찢어져 완전히 불에 타버린 것처럼.. 사라지지 않게....”

태어나 처음 맛본 행복들이.

“그렇게 하려고..모든 걸 놓았었어. 근데......그 사람이 언젠가 꿈에 나와서 내게 속삭이더라.. 그렇게 놓고...또 놓아 아무도 날 잡지 못하게 하라고....그러면 자신은..나에게 아무 짓도 안하겠다고...외로워져야지 내가 안전하다고..내가 혼자여야지.....다른 사람이 안전하다고..”

동화 속 나오는 인어공주처럼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기에.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생전 처음으로.. 소원을 빌었어....내가 다 놓을 테니..내가 외로워 질 테니....다른 사람이 아니라...당신만은.....아버지만은......무슨 일이 있어도..내 곁에 있어달라고..”

그 물거품에 눈물을 흘리는 인어공주 속의 왕자처럼.

“...어이없지?.. 내 모든 걸 한 사람이 그 사람인데....난..그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랬으니.......하지만, 말야... 난...그 사람이 좋았어....내가 태어나..이름 한번 불러준 적이 없는....내가 태어나...단한번도...따뜻하게 대해준적이 없는......그 사람이...정말 좋았어..”

난 그저 목 놓아 눈물 밖에 흘릴 수 없었기에.

“그 사람이....엄마랑..형을 죽였을 때도...난...그 사람을 원망했지만.. 그 사람을 놓을 수가 없었어.......아무리 내가 악착같이...다른 사람을 놓아도...날 세뇌시키는 그 사람만은..내게 있으니까... 아무리 내게 독설 밖에 하지 않아도 난...그 말 조차......날 놓지 않아준다는...그런 말로 들렸으니까..”

눈물로 가득 찬 내 몸을 꼭 껴안은 채 누군가를 바라고 또 바랬었기에.

“...그리고 그 사람이 죽었을 때...난 내가 슬프다는 걸 알았어...이미 모든 사람을 죽였으면서도...그 사람이 죽자..엄마가...형이....죽었을 때보다....훨씬.....훨씬 더...슬프더라....”

난 날 사랑해 주었기 바라는 아버지의 소맷자락이라도 붙잡아 그의 시선을 바라고 또 바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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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25 20:59 | 조회 : 1,671 목록
작가의 말
시크블랙

.......후아...힘들다..5분만에 생각하고 있던 거 다 적었더니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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