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기차나 탑시다


“1박 2일이라고 했던 가요?”



새벽 6시, 짐을 모두 싸고 신발을 신었다.
아줌마는 아침 일찍 피곤하실 텐데 일어나셔서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더 늦어질 지도 몰라요.”


도련님은 날 힐끔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데이트 하는 날은 일단 계산 안했거든요.”
“엄머머…….”

“…….”



아……왜 부끄러움은 내 차지인 거야…….
난 얼른 현관문을 열고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그럼 다녀올 게요.”
“네~ 그래요.”






도련님은 부산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내일 그 대학교의 강당에서 3시간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부산으로 간다는 도련님을 따라 나섰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비워 놨던 집에도 찾아가 볼 생각이다.
그때 아저씨가 언제든 집을 찾아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해줬다면 아마 집은 3년 전 그대로일 것이다.


사실 좋은 기억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안 좋은 기억이 많지만, 유일하게 부모님과의 추억이 남아있고, 나의 대부분의 삶을 살아왔던 고향에 다시 가보고 싶다.

내일 있을 강연이 저녁 때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도련님이 강연을 할 수 있게 준비하고, 보조하기로 했다.






새벽 6시, 우리는 아침 일찍 부산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도련님 회사의 직원으로, 홍보팀에서 2명, 디자인팀에서 1명이 왔다. 우리까지 합해서 총 5명이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 중 한 분이 우리를 발견하고 도련님께 악수를 건넸다.
검은 단발 머리의 홍보 팀장님이다.
평소처럼 깔끔한 정장을 입고 계셨다.


“전 출장 가는데 기차 타는 사장님은 처음 봅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인사를 나눈 홍보팀의 최 사원님도 있었다. 이번 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했다고 한다.
살갑고 친화력이 좋아 홍보팀 내에서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내 생각에는 얼굴도 한몫 한 것 같다.


“그 대학에서 기차표를 보냈다네요.”
“근데 만나본 사장님이 백 사장님밖에 없을 거 아니에요?”


디자인팀에서 온 사람은 윤 대리님이다.
강연을 촬영하는데, 도련님과 홍보팀에서 굳이 고급인력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여, 디자인팀이 윤 대리님을 추천했다고 한다.
강연 때 쓰일 PPT도 대리님이 만드셨다고 한다.


“아니거든요.”


대리님과 최 사원님은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일 텐데, 벌써 십년지기 친구처럼 편해 보였다.




“차 타고 가도 상관은 없지만……다들 면허증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도련님은 보내준 기차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확인하며 말하셨다.


“그렇죠.”


대리님은 차 끌기가 무서워서 아예 면허를 딸 생각이 없으시다고 했다.
최 사원님은 군대와 대학 생활에 전념하다가 바로 취직 해버려서 면허장에 갈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아, 전 있습니다.”


팀장님은 살짝 손을 들어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부산까지 가야하는데 남자가 해야죠.”


하지만 도련님은 손사레를 쳤다.
그러자 팀장님은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어머……우리 남편에게도 못 들어본 소리를…….”
“에잇, 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리님이 슬쩍 물었다.




“사장님도 있으시지 않나요?”


대리님은 최근에 도련님이 운전면허증을 땄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딴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도련님은 윤 대리님을 보며 가만히 눈만 깜박이다가, 피식 웃었다.







“……다들 생명보험은 들으셨는지 모르겠네.”

“.......”



순간적으로 도련님이 모는 차를 탔다 가는 황천길 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조용히 기차표를 들고 승강장으로 갔다.

6
이번 화 신고 2017-03-23 23:59 | 조회 : 3,699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아직 그가 모는 차를 타본 건 강비서 뿐.... 심장이 매우 쫄깃했다고 한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