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나도 몰라

미대 건물에서 많이 멀어졌다.

연우는 이연에게 물었다.

“……축제 보러 온 거야?”

“응, 내가 좋아하는 가수 온다고 해서 온 김에 너도 보려고 했지.”

이연은 공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고 연우는 이제 막 수업이 끝난 참인 것 같아, 잠깐 얼굴 보려고 전화를 걸면서 미대까지 왔다가 넷이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

“혼자?”

“아니, 남친이랑.”

“……아.”

연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조금 곤란해 보였다.

“걘 안 왔어.”

이연은 그를 보고 말했다.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이다.

“그래도. 어차피 집에 갈 참이었고.”

“오빠가 이상한 소리 해서 그래? 신경 쓰지 마. 내가 잔소리 했으니까 앞으론 안 그럴 거야.”

“아니야,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두 사람……너무 닮아서…….”

이연은 아, 하고 깨달은 것 같았다.

연은 그의 마음을 알겠는지 순순히 붙잡고 있던 연우의 손을 놓아주고 인사를 나눴다.

“……그래, 그럼. 집 잘 들어가고.”

“응.”

연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뒤돌았다.

그런데 앞에 아주 덩치가 크고 검은 무언가가 앞길을 막고 있었다.

“나랑 누구랑 닮아?”

“……!”

“솔직히 내가 백배는 더 잘생겼지.”

너무 보고싶다 보니 이젠 헛것이 다 보이나 보다.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왜 눈 앞에 서 있는 건지.

연우는 자신이 피곤한 것도 있어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옆으로 비껴 가려고 했다.

“야야, 어디가. 나잖아.”

민운은 그를 붙잡자, 심장이 덜컥 떨어졌다.

연우는 필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고, 그를 모른 척 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

“너 목소리 떨고 있는데.”

“…….”

목소리도 떨렸지만, 그보다 더 심하게 떨린 건 가슴이었다.

자신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니, 심장이고 뭐고 죄다 날뛰기 시작했다. 긴장되고,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연은 그새 아무 기척 없이 사라졌다.

연우는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이연이 사라진 것도, 그녀가 그를 불러 왔을 거란 것도

분명히 이연에게 들은 말로는 병원에서 입원해 있던 중, 강 비서 몰래 한번 도망쳐 나왔다가 들켜서 그 벌로 입원 기간을 더 늘렸다고 했다.

게다가 이젠 아예 옆에서 감시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떻게 나온 거지?

“보고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

“병문안도 한 번 안 오고, 너무한 거 아니야?”

“왜…….”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를 봤다.

이번엔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왜 자꾸 이래……?”

“뭐가?”

“내가 왜 병문안을 안 갔는지 몰라서 그래? 우리가 지금 예전 같은 줄 알아?”

“그럼 어떡해? 보고싶은데.”

가슴이 아프던지, 두근거리던지 제발 하나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일일이 모두 반응을 하느라 이리저리 요동치고 정신이 없다.

연우는 황급히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민운의 옆으로 비껴가 걸음을 재촉했다.

“…….”

민운은 말 없이 그의 뒤를 졸졸 쫓았다.

“……따라오지 마.”

“도망가지 않으면 되잖아?”

“싫어.”

“그래, 넌 네 마음대로 해. 나도 내 마음대로 너 쫓아다닐 거니까.”

연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축제 부스가 있는 곳과 많이 떨어져서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싫어서 일부러 자리를 옮긴 것 같았다.

민운이 따라올 것도 알았다.

피한다고 따라오지 않았을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연우는 힘겹게 다시 그를 봤다. 얼굴이 아주 울상이었다.

그는 정말 간곡하게 말했다.

“제발……네가 이러는 거 힘들어…….”

“나도 네가 이러는 거 힘들어.”

“…….”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뭐라고 말을 해야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을 지, 그만 포기하게 될 지 고민해보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도 단단히 각오하고 온 것 같아, 어지간한 말로는 대항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연우가 한참동안 말이 없자, 민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충분히 떨어져 지냈는데. 아직도 생각이 바뀌지 않은 거야?”

“……그래.”

“그래?”

“…….”

분명 대답했건만, 민운은 그 대답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대답을 듣기 위해 계속 되물었다.

“다시 생각해봐, 진짜로?”

“…….”

“정말?”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제 풀에 지쳐 돌아가지 않을까 잠시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는 거 아니잖아…….’

감정이란 게 참 이상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계속 붙잡아주는 게 너무 고맙다.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주는 것도, 아직도 그의 두 눈이 진심으로 향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전부 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싫어!’

“몰라!!!”

갑자기 정적을 깨고 연우가 소리치니, 민운은 깜짝 놀라 휘둥그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몰라! 나도 모른다고! 모르겠단 말이야!”

눈물이 뚝 떨어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직도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억울하다.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지.

왜 평범하지 못해서 이런 걸로 가슴이 아파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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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7-31 22:00 | 조회 : 1,920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롱타임노씨...//제가 진짜...이번년도 너무 바빠서...아마 다음화도 매우 늦게 올라올 것 같아요...기다리시는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연중은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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