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능력 있어

‘아……미치겠다.’

하루 종일 새벽에 꾼 꿈만 생각났다.

그는 그 꿈 덕분에 꼭두새벽에 깨선 그 뒤로 다시 잠 들지도 못했다.

수업 시간 내내 피곤했고 자꾸만 자신에게 키스해주던 민운의 모습만 떠올라서 집중도 안됐다.

“형, 오늘 하루 종일 멍하니 있던데, 아직 몸 상태 별로에요?”

“아니……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

“다크서클도 심해 보이는데…….”

정말 길었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미대 건물을 나오던 참이었다.

연우는 어제 하루 푹 쉬어서 오늘은 조금 놀아도 상태가 괜찮을 것 같아 윤우와 현이 같이 놀자는 걸 수락했지만, 이대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오늘 같이 못 놀 것 같아.”

“헐, 그 정도에요? 오늘부터 축제인데 조금도 못 놀아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 가서 자고 싶어.”

연우가 다니는 대학은 오늘부터 3일 동안 축제를 연다.

대학 건물을 나와 거리를 조금 걸으니, 축제 현장이 한창 뜨거웠다.

대학교 정문부터 도서관까지 쭉 앞으로 이어진 큰 도로에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부스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어두운 저녁에 각 부스에서 환하게 빛나는 불빛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꽤 그럴싸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 아쉽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미안해, 내일 놀자.”

윤우가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다.

연우는 그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지만, 그런 꿈까지 꾸고서 술 마시면 무의식 중에 민운에게 전화를 할지, 애들에게 무슨 추태를 부릴지 어떻게 알아…….'

“뭐해? 한가하냐?”

그때, 미대 안에서 어떤 남자가 성큼성큼 셋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같은 과 동기이자, 3학년 과대이다.

“왜?”

“같이 중어중문학과에서 하는 주점 가자고.”

그는 짜장면이나 짬뽕 같은 게 아닌 실제 중국인들이 먹는 음식이 안주로 나온다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우는 중국 음식에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축제가 시작할 때부터 축구 동아리에서 파는 전을 먹고 싶다고 했었다.

“우린 축구 동아리 주점 갈 거야.”

“애들이 너희 데려오래. 벌써 4명 모였어.”

“싫어, 남자 8명이 자리 좁아 터져서 어떻게 먹어.”

“여자애 4명이거든?”

“그것도 싫어. 현이한테 자꾸 집적거린단 말이야.”

윤우는 현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

과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토가 쏠려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였다.

“아이씨, 니가 얘 여친이냐? 마음에 들면 관심 좀 가질 수도 있지!”

“아무튼 싫어.”

“아오, 아주 사귄다고 광고를 하지 그래, 어? 아주 그냥 맨날 붙어 다니니 다들 의심도 안 하겠네.”

그는 현이 연우 다음으로 보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윤우가 손을 잡든 팔짱을 끼든 무념무상으로 보였다. 표정에 단 1mm의 변화도 없었다.

이런 애가 어떻게 저렇게 시끄럽고 귀찮고 말 많은 애와 싸우지도 않고 잘 지내는 건지 참 불가사의할 뿐이다.

아무튼 윤우는 정말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고, 현도 다른 애들보단 윤우와 노는 것을 택할 테니, 과대는 이제 연우를 보고 물었다.

“형은요?”

“……나도 딱히 생각이 없어서, 미안해.”

연우도 조심히 거절했다.

연우는 원래 이런 자리에 참석한 적이 얼마 없으니 계속 같이 놀자고 꼬실 생각은 없었지만, 과대는 무의식적으로 윤우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연우에게 다시 농담 던지듯 물었다.

“설마 형도 저 놈이 가지 말라고 해서 매번 빠지는 거 아니죠? 집적거리는 거 싫다고?”

“아니, 난 아니야…….”

연우가 하하, 웃으며 말하는 순간에 윤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맞아! 형한테도 집적거리지 말라고 해!”

“야, 닥쳐. 양다리 걸치냐?”

윤우는 이번엔 연우를 붙잡고 말했다.

“형, 가면 애인이 싫어해요!”

“아니……어차피 안 갈 거고…….”

왠지 그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러든 저러든 연우는 그저 집에만 가고 싶었다.

“야, 형 여친 없는 거 다 알거든? 괜히 분위기 조장하지 마.”

“누가 여친이 없대?”

연우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와 왼쪽 어깨 위에 차가운 게 닿은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여자의 모습에 네 사람 모두 당황했다.

“누구……?”

“엥?”

여자는 연우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이번엔 팔짱을 꼈다.

살랑이는 바람에 긴 갈색머리가 찰랑거렸고, 남색 원피스도 하늘거렸다.

“이연……?”

“나처럼 예쁜 여친을 두고 어딜 가……?”

이연은 연우를 째려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길 찾아왔는 지는 모르겠지만, 윤우는 일단 이연에게 조금 거짓을 섞어 일러바쳤다.

“누나! 얘가 자꾸 형 꼬셔서 여자애들 4명이나 있는 주점 데려가려고 해요!”

“어머, 난 그런 거 절대 허락 안 해주는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연우는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해봤다.

이연에게서 부재중 전화 2통과 어디 있냐는 문자 3개가 와 있었다.

“미안하지만 연우는 내가 데려갈 게요, 괜찮죠?”

“아, 잠시만! 연아, 나……!”

이연은 연우의 팔을 꽉 잡고 무섭게 끌고 갔다.

과대는 두 사람이 점점 멀어져서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때, 윤우에게 살짝 물었다.

“......저 분이 형 여친이야?”

“응.”

윤우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말했다.

과대는 아주 잠깐 봤을 뿐이었지만, 이연의 외모가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와, 그래서 애들이 아무리 대시해도 꿈쩍도 안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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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0 16:37 | 조회 : 1,615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사실 동기들 사이에서 연우 별명이 착해서 부처님 또는 여러 의미로 돌부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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