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학교폭력 피해자... 트라우마가 심함..."
정신과 의사가 된 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보고 싶어서였다.
비상한 두뇌와 달리 피폐해진 감정은 나를 타락으로 몰고갔다.
"이름은.... 지 우연..."
끄적 거리며 써내려간 새로운 환자.
"현재 나이 17세...고1이겠네"
환자와 의사, 그게 둘의 첫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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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고 여린 아이, 그게 내 첫 인상이었지 아마. 여느 환자처럼 우울하고 피폐해보였던 그는,
"저....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왜지, 기뻐해줘야 하는데 더러운 이 기분은.
"저... 저번에 말한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어요!"
수줍게 웃으며 그는 나의 심장을 부숴놓았다.
"너는, 벌을 받아야 해"
산산이 조각난 내 심장은 되돌리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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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그 미소가 일그러졌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나는 그를 좋아했던 건가"
"선생님!"
그가 달려온다.
왜, 내가 걔보다 널 일찍 봤는데 나는 너랑 맺어지지 못했지?
가슴 속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라-?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냥"
널, 부수고 싶어졌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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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이선이라... "
날라리가 우연이한테 반해서 개과천선. 우연이를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해준 거 역시 윤 이선.
" 왜 이 사실을 숨겼지?"
먼 훗날, 아니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나는 이선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우연이가 더 상처 받을까봐요!"
맑게웃는 그 얼굴을 깨트려 놔야지.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비상한 머리는, 내게 휼륭한 작전을 물어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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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나는 타락에 젖어 뭐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너를 떠돈다.
그 타락은 내게 행복이자 불행.
"사랑해, 지 우연"
그러나 널 사랑하지 않아, 지 우연.
"그러니까, 난 너를...."
부셔보고 싶었을 뿐이야.